<font color="darkblue">성별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정신장애의 징후들
남자는 ADHD 경향 짙고, 여자는 특히 15~18살에 우울증 많아</font>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사는 김주훈(45)씨는 주 5일제가 반갑지 않다. 그동안 격주로 토요일을 쉬면서도 남들처럼 주말 여행 한번 하지 못했다. 이제 매주 토요일을 쉬게 됐지만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없다. 도무지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딸 때문이다. 지난해 초등학교 6학에 다니던 딸에게 심한 꾸지람을 한 뒤로 딸아이는 아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두살 터울의 첫째 사내녀석을 키울 때하곤 전혀 다르다”고 김씨는 말한다. “때로는 학교 생활은 제대로 하는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학교 담임 교사가 “자기 표현이 부족할 뿐 별다른 문제는 없는 듯하다”고 해서 다행으로 여겼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 딸의 정신건강은 김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태로웠다. 김씨가 주말의 ‘방콕’에 안타까워하는 동안, 딸은 정신과 진료를 받았고 사설 인지치료상담소를 정기적으로 다녔다. 약물치료가 필요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대인관계를 회피하는 경향이 문제였던 것이다. 한 지붕 아래에서 가족 구성원이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탓에 날마다 냉기가 감돌아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정을 모르는 김씨는 “딸 자식 키우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할 뿐이다. 김씨의 부인은 중3 아들 뒷바라지도 소홀히 할 수 없기에 상담치료를 받게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전국 중·고생 6500여명 검사하니…
이렇게 성별이 다른 자녀를 키우는 가정의 부모들은 뜻밖의 문제에 부닥치곤 한다. 여중생 딸이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부터 한마디 말을 건네는 게 조심스럽다면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다 말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딸아이가 밖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히는 사례도 흔하다. 누구에게든 다가서기 어려운 자신을 챙겨주는 또래 집단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체로 공격성·반항 행동·비행 등을 포함한 외현화 행동 문제는 남학생에게서 많은데, 우울·불안·위축 등의 내재화 문제를 겪는 여학생들이 청소년 비행에 나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정신질환 유병률에서 남녀의 분포는 대체로 유사하다. 그런데 우울증의 경우 11살 이전에는 유의미한 성차가 없다가 13~15살에 성차가 나타나기 시작해 15~18살에 여자 청소년의 발병률이 급증한다. 성비의 차이가 적게는 2:1, 많게는 3:1까지 나타난다. 이에 견줘 남자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표본에 따라 3배에서 6배까지 차이를 보였다. 이런 사실은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하은혜 교수팀이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신경정신과 의료진과 함께 지난해 전국 중·고생 6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기 정서 및 행동문제의 성차’에 관한 조사에서 밝혀졌다.
그렇다면 청소년기에 성차가 출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까지 분명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몇 가지 추론할 수 있는 근거는 제시되고 있다. 남녀 청소년들이 자존감, 인지행동 대처양식 등의 심리사회적 요인들이 작용하며 호르몬 방출과 생리 같은 생물학적 요인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여자 청소년들이 우울과 불안에 쉽게 노출된다. 숙명여대 하은혜 교수는 “여자 청소년은 스트레스 상황을 쉽게 떨쳐내지 못하고 자존감이 약하고 대인관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강하다. 게다가 성역할이 사회화되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학습되기에 정서적으로 취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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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는 심리생물학적 인성 모델에 기초한 기질 성격 검사인 TCI(The Temperament and Charater Lnventory)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자극에 대해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정서적 반응 성향을 보여주는 기질은 자극 추구·위험 회피·사회적 민감성·인내력 등으로, 개인이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에 따른 개인차와 관련된 성격은 자율성·연대감·자기초월 등으로 구분된다. 지난해 (주)마음사랑 JTCI연구소는 한국판 <청소년용 TCI>(Junior-TCI)를 출판하면서 국내 규준을 만들기 위해 12~18살의 청소년 2천여명을 대상으로 자료를 모았다. 이때 ‘사회적 민감성’ 항목에서만 성차가 나타났다.
물론 사회적 민감성 자체가 정신건강의 위해 요소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만일 여자 청소년이 특정 행동으로 대인관계에서 칭찬 같은 긍정적 반응을 유도했다면 계속 같은 모습을 많이 보이려 한다. 이것은 정신건강에 이롭게 작용할 수 있다. 문제는 처벌 같은 부정적 반응이 나타나면 행동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데 있다. 마음사랑 JTCI연구소의 임상심리전문가 이주영씨는 “여자 청소년들이 남자들에 비해 사회적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보상 단서에 훨씬 더 민감하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여학생들이 정서적 감수성이 높아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뇌의 구조적 차이 등 기질적인 원인에서 비롯된다.”
감성 반응하는 전두엽 피질 크기 달라
이런 사실은 살아 있는 개체의 뇌를 관찰할 수 있는 양전자방출단층촬영기(PET)나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등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뇌 성장의 척도로 여겨지는 뇌량 부위의 신경섬유는 미엘린(myelin)의 영향을 받아 세포간 신호 전달을 원활하게 한다. 미엘린은 12살 무렵까지 신경섬유를 확실하게 둘러싸면서 뇌의 성장을 이룬 뒤, 사춘기 이후에는 미약하게 활동한다. 뇌의 성차가 사춘기 이후에 확연히 드러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따르면 다양한 고차원적 인지 기능을 관장하는 전두엽 피질의 크기가 여자 청소년에게서 크게 나타난다. 이 부위는 감성적 반응에 관여하는 대뇌 변연피질에 있다.
어쨌던 청소년기에 성별에 따른 뇌의 차이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로 인해 정신건강에도 성차가 확연해진다는 게 신경생물학자들의 견해다. 캐나다 퀘벡주에 있는 맥길대학의 머코 딕식 교수팀은 PET 연구 결과 남성들이 여성보다 세로토닌을 52%나 많이 생산했다고 한다. 여자 청소년들이 우울증에 쉽게 노출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의 우울증 치료제는 세로토닌의 농도를 높여주는 구실을 한다.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은 약물을 갈망하게 만드는 도파민 분비를 증가시키기도 한다. 이로 인해 여자 청소년들이 한번 약물에 빠지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섬세한 성차 연구 시작해야
지금까지 밝혀진 뇌의 성차만으로 남녀에 따른 정신질환 예방 치료법을 찾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우울증에 노출되기 쉬운 여자 청소년들에 대한 나름의 대책은 세워볼 만하다. 그동안 여자 청소년들의 우울이나 불안 등 정서적 불안정성에 따른 경미한 공격성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전통적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심심찮게 여자 청소년의 폭력이나 비행 등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기도 한다. 여자 청소년의 공격적 문제 행동 역시 정서적 장애와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 이제라도 문제 행동의 성차에 대한 장기 종단 연구를 시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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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 진단 믿어도 되나</font>
최근 정신장애 관련 신약이 쏟아지고 있다. 항우울제만 해도 세로토닌이나 도파민, 에피네프린 등의 농도를 상승시켜 감정을 조절하도록 하고 있다. 우울증은 일상적인 업무나 학습을 하는 데 서술적인 기억을 손상시킨다. 만일 우울증이 있는 청소년들이 치료를 늦추면 학업을 이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정신분열병을 약물로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약물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하지만 정신장애가 있는 소아 청소년들이 20분 안팎의 진단으로 약물 처방을 받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 정신장애 진단이 신뢰할 만한 수준에 있는지 의문이다. 최근 출간된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로렌 슬레이터 지음·조증열 옮김·에코의서재 펴냄)는 진단의 오류를 신랄하게 보여준다. 1970년대 초반 미국의 무명 심리학자였던 데이비드 로젠한은 자신을 포함해 8명의 가짜 정신병 환자를 모집했다. 당시 가짜 환자들은 진정제를 삼키지 않고 혀 밑에 감춰두는 요령을 익힌 뒤 병원을 찾아가 거짓 증상을 호소했다.
그리고 한달이 지났을 때 단 한명을 빼고 모두 정신분열병 진단을 받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진을 받고 약물을 투여받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있다. 로렌한이 “정신의학은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다”고 선언할 만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실험 사실에 흥분한 정신병원이 도전장을 내밀면서 벌어졌다. 병원쪽에서 ‘가짜 환자’ 구별 게임을 제안한 것이다. 이들은 3개월이 지났을 때 병원쪽은 41명의 가짜 환자가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로젠한은 가짜 환자를 정신병원에 보낸 일이 없었다.
30여년 전에 벌어진 일이 지금도 재현되고 있을까.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동안 뇌를 진단하는 신경영상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게 사실이다.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의 삼차원 지도를 찍으면 정신분열병을 앓는 청소년의 대뇌피질의 회백질이 크게 줄어드는 식이다. 게다가 유전적 요인이 정신분열병이자 자폐증을 유발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울증·조울병·불안증 등은 객관적 의학 검사로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정신과 의사들은 증상 체크리스트를 이용해 정신장애를 진단한다.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약물 쇼핑에 가까운 치료를 받으며 약물을 수시로 바꾸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설령 진단이 제대로 이뤄졌다 해도 약물로 뇌를 제대로 제어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다만 스트레스의 작용에 대한 연구가 일정한 성과를 거두면서 이를 제어하는 치료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스트레스 연구에 따르면 불안과 우울도 서로 연결돼 있어서 하나의 치료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지금 정신장애 환자들이 복용하는 치료약은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많은 정신질환 병·의원에서는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을 병행하고 명상·최면 요법 등도 도입한다. 게다가 전자기를 이용해 뇌 회로를 활성화해 우울증을 완화하고 인지능력을 향상시키는 뇌자극 요법도 관심을 끌고 있다. 예컨대 전기경련요법(ECT·Electroconvulsive Therapy)은 환자의 두피에 전극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전신 발작을 유도해 우울증과 조증·불안증 등을 줄이고, 경피신경전기자극(TENS·Transcutaneous electrical nerve stimulation)은 펄스 자기장으로 뇌 표면을 자극해 우울증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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