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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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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자라서 싸다 싸?

등록 2005-06-14 00:00 수정 2020-05-02 04:24

‘개똥녀’를 향해 인정사정 없이 진행된 디지털 인민재판
남성적 가치로 도배된 인터넷 공간의 감시가 무섭다

▣ 권김현영/ 한국성폭력상담소

2005년 6월 첫쨋주 인터넷 검색어 1위는 ‘개똥녀’ 사건이었다. ‘개똥녀’ 사건이란 지하철에서 똥을 싼 개의 주인이 주변인들에게 사과도 하지 않고 똥도 치우지 않고 내렸고, 그이가 내리고 난 뒤 한 할아버지가 개똥을 치운 사건이다. 이 상황의 전말을 담은 동영상이 떠돌자 일부 누리꾼들은 늘 그랬듯이 재빨리 신상정보를 캐내 사진을 공개하고 미니홈피를 습격했다.

이들은 사과도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할아버지가 똥을 치우게 하다니 이런 막돼먹은 일이 있냐고 목청을 높였다. 장유유서 정신의 실종에 대해 개탄하는 사람부터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 대한 욕설 등이 가감 없이 올라왔다. <국정브리핑>(6월9일치)에는 “애완견 사육 앞서 공중도덕심 키워야”라는 글이 올라왔고, 여러 언론에 ‘개똥녀’를 비판하는 논조의 기사가 실렸다. 다행히 <한국일보>(6월8일치)를 비롯한 몇몇 언론에서 “개똥녀 마녀사냥, 혐오스럽다”는 글을 실으면서 디지털 인민재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함께 나오고 있다.

똥을 치운 게 젊은 여자였다면…

이 사태들을 보면서 이런 발칙한 생각이 잠시 들었다. 만약에 똥을 치우지 않고 내린 것이 젊은 여자가 아니라 나이 든 할아버지였다면, 그리고 똥을 치운 것이 젊은 여자였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아마도 젊은 여자에 대한 칭찬이 나왔을망정 할아버지에 대한 인민재판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지하철에서 자주 고등학생에게 욕설을 하면서 자리를 양보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할아버지들을 본다. 또 지하철에서 앞에 있는 여고생의 엉덩이에 슬쩍 손을 올리고 모르는 척하는 중년의 회사원들을 본다. 이렇게나 엽기적인 일들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런 동영상은 뜨지 않는 걸까? ‘지하철 여고생 성추행’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은 뉴스가 아니라 성인 사이트에서 발견된다. 이 동영상을 보는 이들은 성추행범에게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성추행범의 입장에서 가해의 쾌락을 즐긴다. 성추행범의 개인정보를 캐내고 인민재판이 이루어지기는커녕 이들에게도 인권이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기까지 한다. 여성과 남성에 대한 이중적 성규범은 여전히 어찌나 강력한지….

여성의 인권은 구타당하고 강간당하고 착취당하는 최악의 상태를 전시해야 공감을 얻는다. 이에 반해 남성의 인권은 잠재적인 피해 가능성과 인간으로서의 명예훼손에 대한 우려만을 이야기해도 공감을 얻는다.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학대는 그들의 약한 위치 때문에 분노를 얻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쾌락을 자극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정말 불편해하는 장면은 권력자의 눈물과 상처이다. 중산층 백인 가족이 무너져내리는 과정이, 빈곤한 흑인 가족의 이야기보다 더 공감을 얻는다. 취약한 집단의 취약성은 그 자체로 정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들이 겪는 폭력에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다. 지난 6월2일 ‘장병기본권 확립을 위한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나선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은 사견을 전제로, 모병제로 전환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며 모병제가 되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만 군대를 지원해 가게 되므로, 안보 문제가 일반인의 관심에서 벗어나게 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가난하고 힘없는 자의 고통에 대해 ‘일반인’들이 관심 없어 한다는 전제는 이 시대의 정서를 정확히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더 무섭다.

개똥녀의 무례함에 분노? 쯧쯧쯧…

한나라당의 성범죄자 전자감시제도가 가해자 인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있을 때,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겉으로는 그 제도가 결국 국가에 의한 감시를 더욱 가속화하는 전자감시 사회로 나아갈 것이라며 우아하게 우려를 표명했으나, 속으로는 내내 찜찜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나의 일상에서 감시에 대한 공포는 국가에 의한 감시보다는 남성적 가치로 도배되어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여성 연예인을 비롯해 수많은 여성의 몸이 전시되고 평가되고 훼손되는 과정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물론 ‘개똥녀’ 사건은 애인이 누드사진을 올린 사이버 성폭력 사건이라거나, 파티에서 외국인과 술 한잔 했다고 직장생활에까지 위협을 겪은 잉글리쉬 스펙트럼 외국인 강사 사건이라거나, 혹은 포르노적 욕망을 충족시킨 떨녀·딸녀같이 여성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건은 아니었다. 혹자는 ‘개똥녀’의 무례함이 이런 사태를 먼저 불렀다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이 공격에 동참한 이들에게 묻고 싶다. ‘개똥녀’의 사적, 공적 자아를 파괴하면서 느낀 것은 무엇이었냐고. 분노나 정의감? 이런 감정은 자기 요구의 실현을 부정당하거나 저지되어 생겨나는 것인데, 누리꾼들이 그동안 여성에 대해 자기 요구의 실현을 부정당한 적이 있었던가? ‘개똥녀’ 사건은 “감히 어린 여자가 사람도 아니고 개를 우선시하며 나이 많은 남성을 무시하다니 뜨거운 맛 좀 보라”며 남성사회의 동맹과 힘을 과시한 소규모 전투였다. 여성이 취약한 집단이기 때문에 더 쉬운 표적으로 지목되고, 여성의 무례함에 대한 대중적 공감을 쉽게 이끌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이길 것이 뻔했던, 너무도 지독하게 가학적인.



‘개똥남’될지도 몰라!

디카와 폰카와 인터넷으로 인해 공포에 떠는 어느 남성동성애자의 사연

언젠가 내 사진을 내가 받게 될까? 가끔 공포에 떨어. 나, 게이(남성 동성애자)인데, 채팅을 하다가 사진 교환을 하거든. 얼굴을 알아야 만나든 말든 할 거 아냐. 물론 몸 사진도 교환하지. 그런데 가끔 매너 꽝인 애들이 있어. 자기 사진이라고 속이고 남의 사진을 보내는 애들 말이야. 그런 애들이야 화끈한 만남에는 관심이 없는 거지. 자기 얼굴 안 되니까, 남의 사진 모으는 데 취미 붙인 애들이란 말이지. 혹시 알아, 내 사진이 돌고 돌아서 내게 올지. 뭐, 그럴 리야 없다고? 당신 날카로워. 맞아, 그럴 리야 없지. 예쁘지도 않은 내 사진을 누가 자기 사진이라고 보내겠어? 정말 다행이야…. 그런데, 너도 마찬가지 아냐?
참, 영악한 애들 많아. 사진 교환을 하기로 했는데, 당근 메일 교환할 줄 알았지. 근데 메일 주소 대신 사이트 주소를 알려주는 것 아니겠어? 어리둥절했지. 들어가보라는 거야. 사진 있다고. 어라? 사진이 있더군. 사진만 올려놓는 프로필 사이트였던 거야. 물론 사진에 마우스를 대고 오른쪽 클릭해봤지. 다운되나 안 되나. 어라? 다운 메뉴가 안 뜨네? 뭔가 크게 손해보는 장사 같았어. 내 사진은 보냈는데, 네 사진은 안 온 거지. 순간 나는 커밍아웃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떠는 약자가 된 거야. 혹시 네가 내 사진을 공개하면, 나도 네 사진을 띄워버린다는 ‘맞불작전’의 공포가 커밍아웃의 골육상쟁을 막는 보호막 아니겠어? 근데 나만 약자가 됐으니, 정말 떨떠름하더군…. 그렇다고 너의 면상을 보기는 봤으니, 네 사진도 내놓으라고 악쓰기도 그렇잖아? 물론 전대협, 한총련의 전통대로 모범은 전파돼야 해. 한총련 정신으로 나도 그 사이트에 가입했지. 어라? 어느새 나도 가해자가 될지 모를 위치네?
그래도 우리 안의 적은 괜찮아. 바깥의 적이 더 무섭지. 카메라는 우리의 적이야. 내 친구들 카메라 무쟈게 싫어해. 혹시 게이바에 가본 적 있어? 어디든 벽에 카메라를 그려놓고 엑스표를 쳐놓았을걸. 사진촬영 금지라고. 특히 휴대폰 카메라가 주적이야. 그게 생기면서 카메라 공포증이 퀴어 커뮤니티를 위협하고 있어. 이건 호모 포비아 못지않아, 매우 위협적이야. 어느 날 게이바에서 몸을 흔드는 모습이 인터넷에 올라온다고 상상해봐? 끝장이지. 제발, 게이바에 놀러오는 언니들, 부디 카메라폰 들고 설치지 좀 말아줘. 살 떨려, 무서워 죽겠어.
자기 정보를 자기가 통제할 수 없다는 건 참 미칠 노릇이야. 어느 날 인터넷에 호모 리스트가 올라오지 않을까. 이런 악몽이 언제 현실이 될지 모르잖아? 나 몰래, 아니 나만 몰래 내 사진이, 동영상이 ‘꼴사나운 호모’의 제목을 달고 돌아다니지 않을까. 가끔 가슴이 턱 막혀. 개똥녀 마녀사냥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아. 유명해질 기회도 없겠지만, 유명해지는 것도 무서워. 얼마 전 포털사이트에 뜬 어떤 기사에 어떤 꼬리말이 달린지 알아? “XXX 게이섹퀴.” 진위를 떠나 무서운 일이지. 그래서 호모인 나는 당신이 무서워. 당신도 내가 무섭다고? 그래, 우리는 모두 형제야. 우리 시대의 빅브러더들! 오~ 서로를 테러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디카를 든 부시여! 인터넷을 누비는 알카에다여!
떨남/ 조선 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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