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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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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소년들의 강슛!

등록 2005-06-14 00:00 수정 2020-05-02 04:24

파주 새싹구장에서 피말리는 경쟁 펼치는 ‘미래의 박주영’들
‘당장 이기는 법’ 대신 ‘기본기’ 훈련하며 정신 무장까지

▣ 글=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슛!”
규동(심규동·13·동북중1)이가 날린 슛이 골키퍼 근표(이근표·13·통진중2)의 손에 맞고 튕겨나오자, 경기장 안팎에 몰려든 취재진들의 탄성이 교차했다. “골키퍼를 봐가면서 움직이란 말야!” 공격수들을 조련하는 송경섭(33) 코치의 고함 소리가 절로 높아졌다. “잘했어!” 이에 질세라 골문 뒤쪽에서는 김범수(38) 골키퍼 코치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6월7일 오후 3시30분 경기 파주 축구 국가대표 훈련원 ‘새싹구장’. 6월14일부터 시작되는 2005년 세계 유소년 축구대회(13살 이하)에 참가하기 위해 뽑힌 21명의 축구 유소년 국가대표 선수의 거친 숨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미래의 박주영’을 꿈꾸는 2천여명의 중학교 1학년 또래 가운데 뽑힌 정예들이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우리나라 대표팀은 두 팀. 파주 훈련원에 모여 구슬땀을 흘리는 13살 이하 국가대표 유소년 대표팀과 서울 용강중학교 1학년 학생들로 구성된 차범근축구교실 대표 등이다. 이들은 울버햄튼(잉글랜드), FC포르투(포르투갈), 갈라타사라이(터키) 등 세계 명문클럽의 유소년팀과 일본, 아일랜드, 멕시코, 파라과이, 폴란드의 13살 유소년대표팀 등 14개 나라의 14개 팀과 우승기를 놓고 6일 동안 대격돌을 벌이게 된다. 축구 전문가들의 관심은 한국 팀의 우승 여부보다 제2, 제3의 박주영이 탄생할지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천명에서 발탁… 새싹구장의 거친 숨소리

이들이 ‘미래의 박주영’으로 거듭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송경섭 코치는 “정답은 없다”며 웃었다. 축구 선수로 살아가는 동안 치열한 경쟁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는 현실이 있을 뿐이다. 새싹구장의 잔디를 밟고 있는 선수들은 이미 피를 말리는 경쟁을 몇 차례 뚫고 살아남은 ‘선택받은 소수’들인지도 모른다.

대한축구협회의 유소년 축구 육성사업은 참담한 실패로 끝난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됐다. 한국팀은 멕시코전(1-3)과 네덜란드전(0-5)에 거푸 패하면서 차범근 대표팀 감독을 현장에서 경질하는 초강수를 뒀다. 그렇지만 프랑스에서 일어난 비극의 원인을 차범근 개인에게서 찾을 수는 없을 터였다. 문제로 지적된 것은 해방 이후 50년 넘게 이어진 엘리트 중심의 학원 스포츠였다. 단기적 성과를 내야 하는 학원 스포츠가 선수 개개인의 창의성을 갉아먹는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후 축구협회를 중심으로 유럽과 일본 같은 클럽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기득권을 쥐고 있는 학원쪽의 반발로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클럽 시스템으로의 진화에는 실패했지만, 이전의 주먹구구식 선수 육성 시스템에서 탈피하고 체계적인 선수 관리가 시작된 것은 큰 성과로 꼽힌다. 2000년부터 축구협회는 전국에 흩어진 2천여명의 13살 축구 선수들 가운데 120명을 뽑아 특별 관리에 들어갔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협회 전체 예산 가운데 유소년쪽 투자 비율이 10%를 넘는다”며 “한쪽에서는 과잉 투자 논란이 일기도 한다”고 말했다.

1년 동안 평가가 끝난 뒤 아이들이 14살이 되면 관리 대상은 60명으로 줄어든다. 15살에는 다시 10명이 줄어든 50명. 이 가운데 17살 이하 대표팀에 인계되는 명단은 고작 30명에 불과하다. 지난 6월6일 대회 참가를 위해 소집된 선수는 21명이지만, 축구장에 설 수 있는 사람은 16명에 불과하다. 송 코치는 “탈락 소식이 전해지면 몇명 어린 선수들은 울며 짐을 싼다”며 “축구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육체적인 기량뿐 아니라 정신적인 성숙함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피드의 동천이? 테크닉의 홍석이?

코치진이 추천하는 한국 축구의 대들보에는 누가 있을까. 공격수 가운데는 동천(임동천·13·원삼중)이가 으뜸으로 꼽힌다. 그는 차범근-최순호-황선홍-최용수로 내려오는 한국 대형 공격수의 계보를 이을 수 있는 재목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중학교 1학년인데도 173cm, 66kg의 당당한 체격이 또래들을 압도한다. 유연성과 스피드는 좋지만 파워와 적극성이 떨어지는 게 단점이다.

홍석(최홍석·13·개원중)이는 대표팀 최고의 테크니션이다. 전방 공격수 밑에서 재빠르게 공격에 가담하는 ‘섀도 스트라이커’나 게임 메이커로 나서 공격수들에게 공을 배급한다. 송 코치는 “어느 쪽 발로 공을 받고 차야 하는지 알아내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장점을 소개했다. 그렇지만 홍석이의 체격은 또래들보다 목 하나는 작은 143cm·38kg. 치수가 작은 유니폼을 별도로 제작해 입어야 한다. 홍석이를 대표팀에 합류시켜야 하는지를 놓고 코치진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렸다. “지금 당장 좋은 성적을 내려면 뽑지 말아야 하지만,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결단을 내렸죠. 유소년 축구는 미래에 대한 투자거든요.” 송 코치가 말했다. 홍석이는 “앞으로 열심히 운동해 박지성 형 같은 중앙 미드필더가 되고 싶다”며 뙤약볕에 검게 익은 얼굴을 무너뜨리며 웃었다.

규동이는 최전방 공격수와 오른쪽 미드필더를 오가는 공격수다. 성인 대표팀으로 치면 경기 스타일이 차두리와 비슷하다. 빠른 스피드로 적진을 헤집는 능력은 탁월하지만, 세밀한 볼 처리는 조금 미숙한 편이다. 규동이의 가장 큰 장점은 또래들에 견줘 투지와 승부욕이 좋다는 점. “어느 정도냐면요, 지난 4월 일본 유소년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0-2로 지고 있었거든요. 반칙을 선언한 심판에게 항의하다가 빨간 카드를 받았다니까요.” 대표팀 매니저 차영일씨가 말했다. 그날 받은 빨간 카드는 규동이가 태어나서 처음 받은 ‘퇴장’ 명령이었다. 규동이는 “일본애들에게 진다고 생각하니까 화나서 살짝 밀었는데, 반칙을 불었다”며 “다음부터는 화나도 꾹 참고 경기에만 열중하겠다”고 말했다.

이동녁(13·동북중2)과 양현탁(13·현대중2)은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의 뒤를 이을 수비의 재목들이다. 둘 다 상대 공격수를 압도할 만큰 큰 키를 자랑한다. 덩치가 큰 만큼 몸싸움도 잘하고 성격도 차분하다. 동녁이는 “홍석이처럼 몸집이 작고 빠른 선수들이 가장 부담스럽다”며 “그렇지만 다른 애들과 공중에서 붙어서는 져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성인팀 경기 보듯 하면 안된다"

‘미래의 박주영’들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뭘까. 코치진들은 당장 이길 수 있는 기량보다 번뜩이는 재능을 보이는 가능성을 더 높게 평가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공을 받고, 안 뺏기고,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기본기 훈련의 반복이다. “모든 재능은 기본기에서 나오거든요.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제 나이에 배워야 할 것을 못 배우고 넘어가면 큰 선수가 될 수 없어요. 학교에서는 이기는 경기만 가르치기 때문에 이를 소홀히 하는 게 사실입니다.” 송 코치가 말했다.

에브랄도 실바(48·브라질) 유소년 대표팀 감독은 “이 팀은 조금씩 발전해나간다”며 “이미 기량이 절정에 다다른 성인팀 경기를 보듯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사실 어릴 때는 지는 게 가장 많이 배우는 겁니다. 아이들이 패배를 통해 자신의 문제점을 깨닫고 더 좋은 선수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어른들의 바람이 아닐까요.”



“카푸도 17번 떨어졌다"




유소년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과 목표를 세우는 능력



에브랄도 실바(48·브라질) 13살 이하 유소년팀 감독은 “유소년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과 목표를 세우는 능력”이라며 “박주영과 같은 좋은 유소년 선수가 배출돼 한국 축구가 발전해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어린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습득력이 빠르고 지적해주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선수들이 좋다. 잘못하는 부분을 고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축구는 반복적인 동작을 거듭해야 하는 운동이다. 지도자의 역할은 그를 통해 더 나은 경기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4년 동안 한국에 있으면서 여러 선수들의 특징과 기량을 파악했다. 배천석, 곽정술, 윤종일 같은 선수들이 유망주다.
아이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 놓여 있는 것 같다.
물론이다. 지금은 AC밀란에 있는 카푸가 기억에 남는다. 카푸는 어릴 때 클럽 입단 시험에서 17번을 떨어졌다. 그렇지만 좌절하지 않았고, 월드컵에 4번이나 나가 2번 우승하고 1번 준우승하는 선수가 됐다. 목표를 세워서 끝까지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
박주영을 어떻게 평가하나.
고등학교 1학년 때 브라질에 축구 유학을 가 급성장한 것 같다. 그때 반복 훈련으로 좋은 기술들을 많이 배웠다. 주변의 기대가 몰리면 부담감으로 성장이 멈출 수 있다. 선수는 늘 모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훈련하는 모습을 보니 지금 상황에 충분히 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훌륭한 선수다.
대회 목표는.
배우는 과정이니까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 최대한의 경기력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겠다.




‘클럽 시스템’도 있다

차범근 축구교실 등 학교 등록제 극복하며 계속

학원을 중심으로 한 엘리트 축구 교육이 완성된 우리나라에서도 유럽식 클럽 축구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어져왔다. 첫 시도는 차범근 수원 삼성 감독이 1990년에 선보인 ‘차범근 축구교실’이었다. 6살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축구를 하고 싶은 아이들은 서울 4곳, 경기 부천과 과천 등에 각각 1곳씩 마련된 센터에 등록해 축구를 배울 수 있다.
그렇지만 학교에 등록된 선수에게만 대회 참가 자격을 주는 제도 탓에 유럽이나 일본같이 클럽 축구를 발전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구용수 ‘차범근 축구교실’ 사무국장은 “어쩔 수 없이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클럽에 소속된 선수들의 진학을 책임지는 학교 연계 시스템을 확보해야 했다”고 말했다. 축구교실 선수들은 신용산초등학교-용강중학교-여의도 고등학교로 진학해 축구를 배울 수 있다. 올 7월에는 수원대 축구팀을 창단해 대학까지 연계 시스템을 완성할 예정이다. 6월14일 개막하는 2005년 세계 유소년 축구대회에 참가하는 축구교실 대표는 용강중학교 1학년 선수들이다.
이 밖에 허정무 감독이 2001년 만든 용인 축구센터팀과 서현옥 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이 올 4월 경기도 안성에 만든 ‘서현옥 유소년 축구교실’이 눈길을 끈다. 허 감독의 용인 축구센터팀은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클럽으로, 근처 원삼중학교, 백암중학교, 백암종합고등학교 등으로 전학을 와야 입단이 가능하다. 서 전 위원은 “8∼15살 선수 76명을 뽑아 평일에는 공부를 하고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오전 시간을 쪼개 꿈나무 축구 선수를 조기 발굴하는 형태”라고 클럽 개설 취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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