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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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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사상은 총련의 ‘멍에’

등록 2005-06-02 00:00 수정 2020-05-03 04:24

결성 50돌에 가장 큰 시련을 맞은 재일동포 조직
“이미 찍혀서 두려울 게 없다”는 두 사람의 쾌도난담

▣ 도쿄· 오사카=사회· 정리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총련 조직은 가끔 북한 체제와 비교될 정도로 철옹성 같다. 조직에 대한 비판은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총련을 바라보는 동포 사회의 시선은 예전 같지 않다. 일본 사회의 합리주의를 이미 몸으로 익힌 젊은 세대들은 총련의 북한 체제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 거추장스러운 ‘허례허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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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2일 오전 일본 오사카 야에노사토의 한 카페에서 재일동포 사회의 현장을 누비는 백승보(39·총련 히가시오사카지부 고사카 분회장)씨와 홍경의(47·재일본조선인인권협회 긴키지방본부 지부장)씨가 만나 총련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쾌도난담’을 벌였다.

두 사람은 총련의 풀뿌리 조직과 동포의 인권을 책임지는 일꾼으로서, 그리고 자식을 총련 계열 조선인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로서, 총련에 대한 거침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이미 총련에 찍혀서 두려울 게 없다”는 두 사람은 “우리의 대담을 실으면 <한겨레21>은 앞으로 총련 취재를 못할 것”이라며 농담을 던졌다.

"납치 문제 사과한 뒤 찍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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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자기 소개를 해달라.

홍경의(이하 홍) 나를 기른 부모는 총련입니다. 조선인 학교를 다닌 적은 없지만, 오사카 간사이대학의 총련계 민족서클에서 활동하며 재일 조선인 운동에 눈을 떴어요. 대학 졸업 뒤 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1989년부터 도쿄의 총련 중앙본부에서 일하며 사회국 부장까지 맡았고요. 주로 강제 징집, 종군 위안부 등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다뤘지요. 그러다가 1999년 중앙본부를 나와 총련 산하 단체인 재일본 조선인인권협회 긴키지방본부의 지부장으로 새 출발을 했습니다.

백승보(이하 백) 고교까지 조선인 학교를 다녔고, 대학에선 총련 산하단체인 ‘유학생동맹’에서 활동했습니다. 낮에는 토목설계를 하고 밤에는 총련 분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히가시오사카 지부 고사카 분회에서 20여명의 회원들을 이끌고 있죠. 학습회·강연회 등 각종 행사를 준비하고, 분회원들과 식사를 하면서 지역 네트워크를 꾸리는 게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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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둘 다 총련에서 찍힌 사람들이라고요?

중앙본부에서 10년 일하면서, 관료주의와 사상적 경직성을 체험했습니다. 이래 가지고는 총련이 망할 것 같았어요. 그러던 중 지난해 ‘21세기 총련의 개혁과 재생을 위한 제언’이라는 비판글을 써서 인터넷에 올렸죠. 나와 달리 백 분회장은 <산케이신문> 1면에 나면서 유명하게 찍힌 사람이에요.

일본 우익 언론이 그 사건을 이용한 거죠. 2002년 고이즈미 총리가 방북했을 때 북조선이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했잖아요. 8명을 납치했다고. 당시 동포 사회는 배신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그동안 총련은 그런 일 없었다고, 일본의 허위 선전이라고 그랬으니깐.

북조선이 납치 사실을 인정한 뒤에도 총련은 “우리는 공화국을 대변할 수 없는 단체”라면서 사과하기는커녕 책임 회피하는 데 바빴죠. 여하튼 그즈음 ‘다카츠키 무궁화회’라는 시민단체에서 조선인·일본인 공동으로 ‘일본인 납치 진상 요구’ 집회를 열었는데, 그 자리에서 백 분회장이 사과를 했어요. 납치 문제에 대해 총련 회원으로서 책임을 느낀다고, 그리고 일본도 식민 지배 책임이 있으니 같이 반성하고 미래를 향한 연대를 하자고. 양심을 가지고 순수하게 한 행동이었어요, 총련이 딴청 피우고 있을 때.

사회 분회장은 해임 안 됐어요?

그렇진 않았어요. 분회원들이 모여서 제가 해임되면 꼭 막아내겠다고 그랬죠.

민족교육이 있어 존엄은 지켰으나…

사회 현장에서 총련 50년 역사를 평가한다면요?

그래도 총련은 피땀을 흘려 민족교육을 지켰어요. 나는 유치원부터 고교까지 조선인 학교를 다녀 자연스레 받아들여 몰랐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민족교육의 중요성을 알겠더라고요. 민족교육이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존엄’을 가지고 살 수 있었던 거예요.

맞습니다. 과거 식민지 국가에서 조직을 유지해가며 조선말을 쓰는 120개의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건 놀라운 사실입니다. 총련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조직이에요.

사회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하나요? 조선인 학교에 보내나요? 아버지가 총련에서 찍힌 사람이라는데, 아이들이 ‘왕따’는 안 당하나요?

(웃음) 그렇지 않아요. 조선인 학교는 현명하고 건전한 교원들이 많아요. 백 분회장과 내 아이들은 조선인 학교를 다닙니다. 우리말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죠. 게다가 조선인 학교에선 일본 학교처럼 집단 따돌림이나 선생님을 때리는 것과 같은 ‘학교 붕괴’ 현상이 없어요. 물론 방과 후 이뤄지는 소년단에서는 북조선식 사상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김일성 신화’를 가르치죠. 하지만 그게 아이들에게 먹히겠습니까? 고교 2학년인 딸이 엄마한테 그럽디다. “7월 김일성 추도식 때 추도사 읽는 친구가 불쌍했다”고… 구태의연한 유일사상을 접하는 아이들 태도가 그렇습니다. 그냥 어쩔 수 없이 하는 겁니다. 교사들도 학생들도. 고리타분한 ‘의무’처럼.

그런 것 때문에 우리말 교육을 하고 싶어도 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말로는 누구나 다닐 수 있는 학교라곤 하지만, 과연 그런가요? 김일성의 생일(4월15일)과 김정일의 생일(2월16일)에 쉬는 학교인데….

교원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학교가 태반이에요. 학교 시설은 또 어떻고요. 예전에 북조선에서 조선인 학교에 장학금을 보냈는데, 이젠 남조선이 지원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북과 남의 ‘네이티브 스피커’가 와서 아이들을 가르쳤으면 좋겠습니다. 저번에는 한국 정부의 한 인사가 조선인 학교 지원 의사를 타진했어요. 그런데 총련은 싫어합니다. 동포들이 원하는 일인데 총련이 되레 막고 있어요.

총련은 사업 방식을 수정해야 합니다. 총련 활동가와 일반 동포들의 의식 차이가 큰 게 문제예요.

총련 활동가들은 지도자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의식

을 갖추고 사상학습을 해야 합니다. 동포들과 하루하루 만나가며 조선말도 가르치고 결혼식 사회도 봐주면서 전방위로 뛰지만, 김일성 사상은 그들의 ‘멍에’예요, 일반 동포들과 구분되는…. 여기서 활동가들이 일반 동포들과 괴리되는 겁니다.

동포들의 의식은 달라지는데 총련 조직이 따라가질 못하는 거죠. 홍 지부장이 쓴 ‘제언’도 총련 조직을 파괴할 만한 것도 아니고, 북조선을 비난하는 내용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총련은 제언 내용에 대해선 가타부타 않고 “일본 언론에 이용됐다, 반총련 책동이다”면서 비난만 했죠.

사회 그렇게 비판하면서 왜 총련에서 일하나요?

그럼에도 총련은 있어야 하니까요. 재일동포 커뮤니티로서요. 총련의 역할이 바로 그겁니다. 그러니까 더욱더 총련이 동포들의 커뮤니티를 가꾸고 그 속에서 일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총련은 북조선만 바라보고 있어요. 한국에 대해선 여전히 적대적이고요.

총련 일꾼들이 ‘공무원’이 돼간다

총련 집행부(의장·부의장 등 의장단과 사무국장)가 총련이 김일성·김정일의 조직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총련이 ‘수령님의 혁명유산’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회 여러분 생각과 비슷한 사람들이 많은데, 왜 총련이 바뀌질 않는 거죠?

총련 일꾼들부터 변해야 해요. 할 말은 하고. 근데 일꾼들이 말을 못하고 있다는 거죠.

2002년에 상근 새세대 일꾼 30여명이 총련 집행부에 의견서를 제출했어요. 민족교율을 좀더 실용적으로 개혁하고, 동포들이 주인공으로 되는 내부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죠. 그래서 집행부와 젊은 활동가와의 대화 마당을 제안했는데 일언반구도 없이 무시당했습니다. 되레 감사위원회에서 ‘배후 조정자’를 밝혀야 한다며 조사했다고요. 이런데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총련 조직에 퍼져 있는 관료주의와 보신주의도 문제예요. 비판적인 의견을 내면 뻔히 당할 것을 알기 때문에 일꾼들이 알아서 실속을 차리는 겁니다. 월급이 보장되는 한 남아 있자는 생각 때문에요. 박봉으로 생활하기 힘들 정도이지만, 일본 사회에 나가봤자 경제 불황 때문에 딱히 할 일도 없고…. 총련 일꾼들이 공무원이 돼가고 있어요. 제가 총련 중앙본부에서 일할 때 보니, 조선대(총련이 운영하는 대학교) 출신들이 꽉 잡고 있더군요. 그렇게 집단을 형성하면서 기득권 집단이 된 거예요.

사회 총련을 바꿀 방법이 있나요?

(한숨을 쉬며) 안 보여요, 안 보여.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조직이란 게 원래 변하기 힘들잖아요. 하지만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게 아니라 자신부터 바꾸도록 해야 합니다. 총련에는 훌륭한 역사가 있어요.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동포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해요.

물론 변화의 조짐은 있습니다. 조선인 학교의 교과과정에서 정치적인 부분이 많이 사라졌어요. 하지만 동포들이 100걸음 갈 때, 총련은 1걸음 가거나 아니면 뒷걸음질하는 수준이에요. 그래선 안 돼요. 사람의 수명이 80살이에요. 총련이 30년을 더 살려면 빨리 구조적 전환을 해야 합니다. 국가를 위한 조직이 아니라 동포를 위한 조직으로요.



긴키의 반란은 계속된다

총련의 문제점 지적했다가 자격 박탈당한 사고지부, 활동은 계속

총련의 전체대회는 3년에 한 차례씩 열린다. 전국의 대의원이 모여 주요 사업 방침을 결정하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지난해 열린 제20차 전체대회를 앞두고 오사카 지역의 젊은 현장 일꾼들 중심으로 불만이 표면화됐다. 도화선은 홍경의씨가 2월17일 인터넷에 올린 ‘21세기 총련의 개혁과 재생을 위한 제언’이라는 글이었다.
그는 “1974년 김일성주의가 총련에서 공개화되면서 재일 조선인운동이 상대적인 독자성을 상실했다”며 “상부기관에로의 지나친 권한 집중과 상의하달식의 조직 운영, 정책이나 인사 등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불투명성” 등을 총련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특히 “총련은 재일동포들의 권익 옹호단체, 해외동포 단체, 민단 단체이지 결코 국가 행정기관의 출장소가 아니다”며 ‘성역’이었던 북한 정권을 겨냥하기도 했다.
홍씨의 ‘제언’은 일선의 총련 지부 일꾼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지지 표명은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이뤄졌지만, 총련 중앙본부는 색출을 감행했다. 그 와중에 교토의 한 상근 일꾼은 전체대회 대의원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어 총련 중앙은 홍씨의 재일 조선인인권협회 긴키 지방본부 지부장 직위도 박탈했다. 하지만 긴키 지방본부 회원들은 2월27일 긴급 회의를 소집해 “총련 중앙이 규약상 인권협회 지부장을 해임할 권한이 없다”며 “해임 결정은 무효”라고 반발했다. 총련의 하부조직이 중앙본부를 이처럼 집단적으로 ‘무시’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3월13일 총련의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반총련 제언 놀음의 검은 배후, 국정원 요원과 연결된 홍경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홍씨와 긴키 본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 신문은 “홍씨가 내외 원수들의 앞잡이가 되어, 제20차 전체대회를 앞둔 이 시기에 ‘제언’을 내놓음으로써 동포 사회에 혼란을 조성하며 동포들을 공화국과 총련에서 떼내려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홍씨가 국가정보원이 파견한 박아무개 참사와 선물을 교환하는 등 한국 정보기관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며 ‘국정원 공작설’도 제기했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제20차 총련 전체대회에서는 도쿄의 한 대의원이 퇴장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중앙본부의 보고와 박수로 동의하는 형식적인 추인 과정에서 이의 제기를 하려다 실패한 것이다. 홍씨의 ‘제언’ 파문으로 전체대회 이전부터 대의원들 사이에서 “총련 중앙이 ‘입단속’에 나섰다”고 회자되던 터였다.
현재 2004년 ‘긴키 반란사건’의 주인공인 조선인인권협회 긴키 지방본부는 총련의 유일한 ‘사고 지구’이자 ‘해방구’로 남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홍씨는 “150여명의 회원들이 여전히 회비를 내고 있어 활동에 어려움이 없다”며 “총련이 간섭하지 않으니까 되레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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