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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명예부터 복원해보라

등록 2005-05-17 00:00 수정 2020-05-02 04:24

김현옥-구자춘 계보 잇는 ‘불도저 이명박’의 청계천 복원사업, 그 영욕의 3년이 남긴 것은…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해방 이후 60년 서울시 역사에서 ‘불도저’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시장은 딱 3명뿐이다. 첫 번째는 ‘원조 불도저’로 알려진 김현옥 시장(1966~1970), 두 번째는 구자춘 시장(1974~1978), 세 번째가 이명박 시장(2002~2006 예정)이다. 앞선 두 사람은 모두 군인 출신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끌던 개발독재 시기에 서울시를 호령하며 서울 도시계획의 큰 틀을 잡았다. 김현옥 시장은 시내 곳곳에 수백개의 지하도와 육교를 만들었고, 여의도·한강 개발의 첫 삽을 떴다. 구자춘 시장은 도심~여의도·영등포~잠실·강남을 잇는 ‘3핵도시론’을 뼈대로 ‘강남특별시’를 개발했다. 지하철 2호선을 순환선으로 구상한 것도 그다.

처음엔 아낌없는 지지 박수를 보냈지만…

취임 뒤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이명박 시장이 벌인 일도 이에 못지않다. 그는 지난 40년 동안 서울에서 자행된 환경파괴와 도시 막개발을 반성하자는 뜻의 ‘청계천 복원사업’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시장에 당선됐다. 시장 자리에 오른 지 6개월이 못 돼 그는 서울의 모습을 혁명적으로 뒤바꿀 △강북 뉴타운 개발 △서울광장 조성 △버스체계 개편 등 어마어마한 정책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아마도 그의 불행은 앞선 두 ‘불도저’ 시장보다 30년 늦게 시장 자리에 올랐다는 점일 것이다. 그는 청계천 복원에 대한 시민들의 뜨거운 지지를 사업 시행에 반영할 줄 모르는 개발독재 시기의 총아였다. 청계천 복원사업에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던 시민단체들은 이 시장의 행보를 의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이명박 시장은 종종 “열심히 일하는 사람 칭찬은 안 해주고 왜 이렇게 딴죽을 거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상명하복이 철저한 건설회사 문화에 익숙한 그의 눈에는 주변의 비판이 불필요한 ‘딴죽’처럼 보였을 것이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의 말대로 이 시장의 모순은 “청계천 복원사업 같은 과거를 반성하자는 의미의 사업을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는 데” 있었다.

서울시가 2003년 7월1일로 청계천 복원공사 시작일을 못박았을 때 전문가들이 걱정했던 것은 네 가지였다. 첫 번째는 교통, 두 번째는 청계천 상인들의 반발, 세 번째는 청계천 바닥에 묻혀 있을지 모르는 문화재, 네 번째는 개천 복원으로 본격화할 재개발 ‘잡음’이었다. 어느 하나 만만하게 다룰 사안이 아니었지만 서울시는 일단 공사를 시작해놓고 보자는 태도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문화연대 등 7개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올바른 청계천 복원을 위한 연대회의’는 2003년 5월22일 청계천 복원공사 연기를 주장하는 시민 대토론회를 열었지만, 서울시의 뜻을 꺾진 못했다.

처음으로 서울시의 발목을 잡은 것은 ‘교통’이었다. 경실련 등을 중심으로 “하루 평균 16만8천대의 차량이 오가는 청계고가를 없애면서, 제대로 된 교통대책을 만들지 않는다”는 지적이 터져나왔다.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을 위해서는 ‘나홀로 자가용’을 줄여야 한다”는 명분으로 맞섰다. ‘자율교통요일제’ 등의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도심 자가용 통행량을 줄이려 애썼다. 이 때문인지 교통 문제는 예상보다 심각하지 않았다. 교통대책을 총괄한 <중앙일보> 기자 출신 음성직 교통정책보좌관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문화재가 발목을 잡다

두 번째 위기는 청계천 주변 상인과 노점상들의 반발이었다. 당시 상인 문제를 총괄했던 최동윤 청계천 복원총괄담당관 등이 청계천 바닥을 1년 넘게 고 다닌 뒤 정리한 통계자료를 보면, 2003년 현재 청계천 시장에는 6만2783개 점포에 21만3462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었다. 부양 가족까지 포함하면 청계천 상권에 100만명 안팎이 밥줄을 걸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무리한 공사는 결국 사고를 불렀다. 공사 시작 10개월이 지난 2004년 4월28일 서울 중구 청계천 4가의 한 공구상가 안에서 주인 이아무개(52·서울 송파구 잠실동)씨가 가게 천장에 줄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서에 “서울특별시 시장님, 천개천(청계천) 상인을 도우소서”라고 적었다. 그는 장사가 안 돼 거의 매일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고 한다. 상인들은 공사로 생긴 직접적인 영업손실 보상을 요구했지만, 서울시는 송파구 문정·장지동에 물류·유통단지에 2만3천평 규모의 상가단지를 만들어 특별분양하겠다는 대안으로 맞섰다. 노점상들에게는 채찍과 당근 전법을 구사했다. 방침에 따르는 노점상들에게는 동대문 운동장에 풍물시장을 개설해 장사할 권리를 주었지만, 저항세력에게는 ‘철퇴’가 내려졌다. 돈 계산이 빠른 장사꾼들은 떡고물을 쥔 서울시 앞에 납작 엎드렸다. 서울시는 다시 한번 큰 고비를 넘겼다.

해를 넘겨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복원사업의 발목을 잡은 것은 문화재였다. 2003년 10월부터 청계천 복원공사 구간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이던 중앙문화재연구원은 청계천 옛 돌다리인 모전교(종로구 서린동 갑을빌딩 앞) 양쪽의 호안석축(좌안 100m, 우안 22m), 오간수문(청계6가 네거리)의 홍예 기초석, 수표교 주변의 호안석축(좌안 30여m)과 다리 증축 흔적을 보여주는 기초석 등 각종 문화재를 캐냈다. 2004년 2월19일 청계천 발굴 현장을 방문한 이만열 국사편찬위원장, 조광 고려대 교수(사학) 등은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했다.

“문화재를 제대로 복원하라”며 시민단체들이 들고 일어섰다. 귀를 막고 공사를 강행하던 서울시는 2004년 3월5일 이명박 서울시장과 양윤재 청계천복원본부장이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되는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야 문화재 출토지점의 공사를 멈췄다. 1년이 지난 3월25일 문화재위원회는 광통교 터, 수표교 터, 오간수문 터 등 3곳을 국가사적(461호)으로 지정했지만, 2010년 복원을 목표로 기본설계 작업이 진행 중인 수표교를 뺀 나머지 문화재의 원형·원위치 복원은 사실상 물건너갔다. 애초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살아숨쉬는 청계천 복원을 꿈꿨던 소설가 박경리 선생, 이희덕 연세대 명예교수(사학) 등은 땅을 쳤다. 서울시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려고 만든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 1기 위원 26명은 2004년 9월15일 “청계천을 망치는 이 시장을 막지 못했다”며 집단 사퇴했다. 복원사업은 시민이 빠진 시장의 반쪽짜리 공사가 됐다.

그리고 터질 것이 터졌다. 청계천 복원사업을 진두지휘했던 양윤재 행정제2부시장이 청계천 주변 재개발 업자 길아무개(36)씨 등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5월8일 검찰에 구속됐다. 건설업계에서는 복원공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청계천 주변 재개발로 수조원대의 개발이익이 예상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떠돌았다. 2002년 8월1일 도시건축네트워크가 낸 성명서에는 “서울시가 청계천을 고층·고밀도로 재개발하려는 구상을 하고 있다”며 “청계천 복원과 주변 지역 재개발을 연결해 접근하는 방식을 철회해야 한다”고 쓰여 있다. 수십년 동안 건설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명박 서울시장이 이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서울시는 불똥이 이명박 시장에게 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수조원대 개발이익 몰랐을 리 없다"

청계천 복원사업에 처음부터 참여했던 서울시 한 간부는 “이번 사건이 사실로 확인되면, 청계천뿐 아니라 이 시장이 받을 정치적 타격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틀렸다. 이미 시장이 받은 정치적 타격은 계산이 불가능하다.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는 이 시장의 자서전 제목처럼, 그는 여전히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고 있을까. 청계천 복원공사의 가장 큰 시련을 온 국민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비리로 얼룩진 흙탕물이 흐르는 청계천을 보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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