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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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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북핵 살떨린다

등록 2005-05-11 00:00 수정 2020-05-03 04:24

벼랑 끝 몰린 북한이 핵물질 3차이전하면 어쩌나, 미국의 제한적 군사행동 가해지면 어쩌나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요즘은 자면서 악몽을 꾸다가 벌떡 일어나곤 합니다. 벼랑 끝을 걷다가 발을 헛디뎌 천길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꿈 같은 거죠.”

북핵 문제를 전담하는 외교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최근의 북핵 상황이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아침에 신문만 쳐다봐도 가슴이 떨리는 경험을 부쩍 자주 한다고 하소연한다. 지금 북핵 문제는 낙관론보다 비관론이 훨씬 힘을 얻고 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도 5월4일 정례회견에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외교적 해결 과정이 중대 국면을 맞고 있다”고 처음으로 외교적 노력이 소진되고 있음을 인정했다. 그는 특히 “중국과 미국 등 관련국들 사이의 여러 협의 결과와 일부 언론의 북한 핵실험 가능성 보도 등을 종합해볼 때 6자회담 전망이 밝지 않다”며 “정부도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적어도 정부는 그간 겉으로는 낙관쪽에 무게를 실어왔다.

이제 정부는 해외주둔 미군의 움직임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드러내놓고 얘기하지는 못하지만 이라크 사태 등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미국 군사정책의 미세한 변화에도 눈길을 떼지 않고 있다. 북한이 핵 실험까지 강행할 경우 미국의 군사적 행동을 저지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이 감지된다. 미국이 상정하는 북핵 사태와 관련된 극단적 시나리오는 북한 핵물질이 테러리스트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럴 가능성만 엿보여도 미국의 제한적인 군사적 행동이 가해질지 모른다는 게 정부 시각이다.

뻣뻣한 미국, 사실상 협상 포기했나

조지프 디트러니 미국 국무부 대북협상특사는 5월3일 워싱턴의 한 세미나에서 북한이 핵물질을 제3국이나 테러단체에 넘기려 한다면 악몽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워싱턴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셀리그 해리슨 연구원이 지난달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은 그에게 테러조직에 핵무기를 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악몽의 시나리오는 핵물질이나 무기가 테러조직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라며 “그것은 가공할 만한 일이고 국제사회는 이에 대해 강력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미국이 핵물질 등의 제3자 이전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 해리슨 연구원은 북한 방문 뒤 북쪽은 그동안 핵물질을 제3국이나 제3자에게 이전하지 않고 순전히 자체 방위를 위해 이용할 것이라고 밝혀왔으나 이제부터는 핵물질의 제3국 또는 제3자 이전 여부도 협상 의제에 포함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이 내심 정해놓은 ‘레드라인’을 잘 알고 있는 북한이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핵물질의 제3자 이전까지 밀어붙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미국 부시 행정부가 북한 지도부를 계속 자극하면서 의도적으로 상황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간다면 일촉즉발의 사태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최근 미국의 행태는 사실상 북한과 협상을 포기한 듯하다. 정부 관계자들은 미국의 뻣뻣한 자세가 결국 북한의 핵 보유를 앞당기리라 내다보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부시 행정부가 대북 정책을 누그러뜨릴 가능성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만큼이나 어려워 보인다”면서 “결국 충돌 직전까지 가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부시 행정부 내 실세 강경파들은 연일 북한 지도부를 겨냥한 막말을 퍼붓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폭군’ ‘위험한 사람’으로 깎아내렸고, 앤드루 카드 백악관 비서실장은 5월1일 텔레비전 대담프로에 잇따라 나와 “북한은 깡패(Bullies) 같은 행동을 하면 다른 나라들이 우러러봐줄 줄 알지만 (김정일은) 별로 건설적인 지도자가 아니다”며 “김정일은 약속 준수 면에서 볼 때 우리가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고, 북한 주민들에게는 좋은 지도자가 아니며, 매우 잔인하다”고 말했다.

중동 정세가 불안정할 수록 좋다?

미국은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길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한을 고립·봉쇄해 체제 전환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속셈이다. 데이비드 고든 미 국가정보위원회(NIC) 위원장은 5월3일 “북한은 김정일이 권좌에 있는 한 변함없이 매우 우려스러운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 교체의 의도를 대놓고 밝힌 셈이다. 폴라 도브리안스키 미 국무부 차관은 5월5일 하원 국제관계위에 출석해 북한 등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잊지 않고 투쟁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10월 북한인권법 발효와 동시에 자리가 생긴 미국 행정부의 대북인권특사에 백악관의 고위 정책보좌관이었던 제이 레프코비츠(43)를 앉힐 작정이다. 부시 행정부 내 대표적인 신보수주의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미국은 북한을 더욱 자극해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게 만들어 중국, 러시아 등 친북 성향의 주변국들로부터 고립시키는 전략을 구사하는 듯하다. 지금은 북핵 문제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상정해도 중국과 러시아의 비협조로 효과적인 대북 제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부시 행정부가 이를 모를 리 없다. 북한의 불법성과 위험성을 국제사회에 크게 부각시켜 중국이나 러시아의 적극적인 제재 참여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제재에 대한 묵인이라도 이끌어내려는 게 부시 행정부의 계산이다. 이는 결국 부시 행정부의 지속적인 ‘북한 때리기와 골지르기’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따라서 정부는 북한이 미국의 노련한 심리전에 휘말려 강경일변도로 맞대응하는 무리수를 둘 가능성을 가장 경계한다.

정부는 미국의 군사력이 한반도에 집중되는 국제적 환경이 조성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정부가 미군의 움직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북한 못지않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불신감이 작용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북핵 문제의 평화적·외교적 해결을 강조하고 있으나, 이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쉽지 않은 게 요즘의 한-미 관계다. 사실 북한의 ‘핵 보유 불용’이라는 정책 목표만 공유했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 수단에 대한 두 나라의 견해 차이는 좁히기 힘들 정도다. 그러니 정부로서는 안심할 수 없다.

특히 이라크 사태나 이란 핵 변수는 중요한 관찰 포인트다. 이라크 사태가 안정돼 현지 주둔 미군을 줄이고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는 말만 나와도 정부 관련 인사들은 바짝 긴장한다. 이라크 등 중동의 지속적인 불안정이 상대적으로 한반도의 안정에 도움이 되는 서글픈 현실에 처해 있는 셈이다. 미 국방부는 이라크 점령 이후 다른 분쟁지역에서의 미군 작전 능력이 크게 제약돼 있음을 시인했다. 리처드 마이어스 미 합참의장은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에 대한 대규모 병력 투입으로 그 밖의 지역에서 주요 전투작전이 축소되거나, 미군과 외국 민간인의 더 많은 희생이 따르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담긴 ‘2005년 위험평가’라는 비밀보고서를 미 의회에 제출했다. 인력과 장비의 압박으로 미 국방부가 과거 예측한 만큼 신속하게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능력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란사태 변수… 막연한 낙관론에 실낱 희망

이란 사태도 주요 변수로 꼽힌다. 이란은 핵무기 제조에 사용될 수도 있는 우라늄 농축시설을 제거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일축하고 있다. 유엔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평가회의 이틀째 회의가 열린 5월3일에도 카말 카라지 이란 외무장관은 “이란은 우라늄 농축을 비롯해 모든 합법적인 핵기술을 추구하겠다는 결의에 차 있다”고 밝혔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연합(EU) 3국은 지난해 11월 이란과 모든 핵 관련 활동을 중단하는 대신 이란의 핵 개발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기로 합의했으나, 그 같은 협상이 지지부진한 데 불만을 터뜨려온 이란은 지난주 말 중단했던 핵활동의 일부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적어도 미국 군부가 북한 핵 문제에만 집중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으로 북-미간 충돌 시점을 지연하는 미봉책일 뿐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정부나 민간의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제 북-미의 위기가 꼭짓점에 다가갈수록 오히려 협상의 물꼬를 트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낙관론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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