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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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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아르 후세인의 도전

등록 2005-05-04 00:00 수정 2020-05-03 04:24

방글라데시 학생운동가 출신인 국내 최초 이주노동자 노조위원장…노동3권 인정받기 위한 힘겨운 싸움부터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5월1일 노동절 구호이지만, 최근 한 노동조합이 이 슬로건을 노조 깃발에 내걸었다. 국가와 인종을 넘어 ‘노동자는 하나다’를 선언하고 나선 곳은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필리핀·방글라데시·네팔·인도네시아 등 각국에서 온 이주노동자 100여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명동성당 천막농성 기획의 당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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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1987년부터다. 당시 첫 이주노동자는 서울 강남에서 일하던 필리핀 출신 가정부들이었다. 그 뒤 18년. 이주노동자들이 이제 독자적인 노동조합을 결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초대 위원장으로 선출된 아노아르 후세인(34·방글라데시) 위원장은 “지금까지의 이주노동자 투쟁의 역사를 이어받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은 갑자기 생겨난 것도 아니고, 나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또 누군가 거저 가져다준 것도 아니다.

지난 1994년 1월, 산재를 당한 뒤 피해보상조차 받지 못한 미등록(불법 체류) 이주노동자 10여명은 경실련 강당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불법 체류자 몸이라서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채 눈물만 삼켜왔던 그들이 집단 행동을 감행한 첫 사건이었다. 당시 농성은 한국인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데 그쳤다.

이주노동자 노조의 전신은 ‘서울경인지역 평등노조(위원장 임미령) 이주노동자지부’. 평등노조는 2001년 국내 최초로 이주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였다. 서울 성수·남양주·의정부 등에 분회도 만들었다. 아노아르는 최근까지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 지부장을 지냈다. 강제추방 중단과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를 요구하며 2003년 11월부터 1년간 명동성당에서 천막농성을 벌인 것도 아노아르의 기획이었다. 그는 농성단 대표였다. 그리고 지난 4월25일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가 해산하고 독자적인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 건설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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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출범한 이주노동자 노조의 앞날에 기다리고 있는 건 ‘인정투쟁’이다. 조합원 상당수가 미등록 신분이라서 노동조합 합법화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당분간 ‘법외 노조’로서, 불법 체류자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노동3권을 인정받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노아르는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몸을 내던지며 죽거나 사슬로 몸을 묶고 싸워왔는데, 한없이 서글픈 이국 땅에서의 노동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민주화되고 인권국가라고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공장 현장에 가보면 이주노동자에 대한 폭행과 차별이 횡행해요. 현장에 직접 가보세요. 10년 전과 똑같아요.” 정부의 강제추방 정책이 오히려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라는 태풍을 몰고 온 것일까. 그는 “우리가 노조를 만들고 싶어서 만든 것이 아니다. 한국이 이렇게 만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노아르는 방글라데시에서 대학교를 마치고 1996년 5월 한국에 왔다. 석달짜리 입국비자로 들어왔다가 공장을 전전하다 ‘뜻하지 않게’ 노동운동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그도 35만여명의 다른 이주노동자들처럼 돈 많이 벌어 고국에 되돌아가겠다는 ‘코리안 드림’을 품고 온 가난한 나라의 평범한 청년 중 한명이었다. 그러나 돈 벌겠다는 생각은 차츰 이루지 못할 꿈이 되고 있다. 대신 그의 명함에는 민주노총 로고가 선명하다. 4월26일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방글라데시에 계신 부모님은 한국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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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부터 공장 일을 그만두고 평등노조에서 일했기 때문에 지금은 내가 노동운동하는 것을 고향의 가족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래서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신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상황이 나를 이렇게 몰아가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인데….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에 올 때 혼자였나.

1996년 방글라데시에서 친구 10여명과 함께 한국에 왔다. 그동안 다들 돌아갔고 나 혼자만 남았다.

대학에서는 뭘 전공했나.

정치공학을 배웠다. 학생운동도 했다. 방글라데시에 각 정당마다 학생위원회가 있는데, 내가 지역 대표자 역할을 한 적도 있다. 물론 이주노동자 노조 만들려고 내가 한국에 온 건 절대 아니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 여러 공장에서 일할 때 동료들이 폭행당하고도 한국말을 제대로 못해서 아무 말 못하고 참고 우는 것을 너무나 많이 봤다. 고민 많이 했다. 차별받고 설움받으면서 그냥 참고 일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말을 꽤 잘하는 편인데.

한국에서 인권과 노동권을 대접받으려면 한국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람들과 함께 텔레비전 보면서 열심히 배웠다. 한국말을 못하면 공장에서 폭행과 차별이 일어나도 아무런 항의도 못하게 된다.

왜 독자적인 이주노동자 노조를 만들게 됐나.

이주노동자들이 산업재해를 당해 손가락이 잘려도 한국 정부나 공장 사장들 누구도 신경 안 쓴다.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고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할 권리를 싸워서 얻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의 노말헥산 중독이 언론에 많이 보도됐지만, 공장에선 성폭력 문제도 심각하다. 문제 제기가 안 됐을 뿐이다. 해도 안 되니까 투쟁을 하고 노조를 결성한 것이다.

더 이상 인간사냥당하고 싶지 않다

노동조합이 내걸고 있는 요구는.

강제추방 단속 중단,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산업연수생제도 철폐, 노동허가제 실시 등이다. 곧 민주노총과 함께 노동허가제 입법 쟁취 싸움을 시작할 것이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사업주에게 고용허가를 내주고 이주노동자는 해당 사업주에게 고용되는 조건 아래 취업하는 것으로 취업 사업장이 제한된다. 반면 노동허가제는 이주노동자에게 국내 취업 허가와 입국사증을 내주면 그 기간 동안 자유롭게 사업장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다.) 고용허가제에서는 시키는 대로 일해야 한다. 지금도 하루 12∼13시간씩 일하면서 64만원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 불법 체류자라고 해서 마음대로 일 시켜먹고 있다.

정부가 1998년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산재보상법과 근로기준법 조항을 적용받도록 했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개선된 것 아닌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현실은 아니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모른다. 탄압은 더 심해졌다. 불법 체류자로 숨어 일하는 탓에 임금체불·산업재해·폭행 등에 시달려왔다. 불법 체류자를 쓴 사실이 적발될까봐 사장들이 산재 처리를 기피하는 것도 여전하다. 퇴직금을 받는 이주노동자도 극소수다. 모두 우리 신분이 불법 체류자이기 때문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자녀에게도 학교 전·입학을 허용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합법 체류 증명서를 떼오지 않으면 안 받아준다. 이것이 현실이다. 야만적인 이주노동자 단속·추방이 계속되고 있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동지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더 이상 인간사냥 당하고 싶지 않다.

현재 100여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했는데, 다른 이주노동자들도 노조를 적극 지지하고 가입 의사를 보이고 있는가.

1994년 명동성당 농성 때는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는 슬로건 아래 이주노동자 인권을 요구했는데, 대여섯명만 모였다. 그러나 지금은 노동권을 보장하라는 집회에 수백명이 모일 정도로 강하게 결집하고 있다. 강제추방으로 어려운 시기인데도 수백명이 모인다. 지난 1월부터 각 지역별 대표자들이 지역조직을 만들어 조직화를 열심히 하고 있다. 앞으로 노조를 전국적 규모로 키울 것이다.

노동허가제 등 제도개선투쟁에 주력

정부가 노동조합 인정을 하지 않는다면.

노동부에 곧 노조설립허가 신청서를 제출할 것이다. 정부가 불법 체류자 조합원을 이유로 법적 노조로 인정하지 않을 경우 강력한 투쟁을 할 것이다. 내가 잡혀가거나 강제추방된다고 해도 노동조합이 깨지는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은 더 힘차게 투쟁할 것이다. 억눌려오면서 그만큼 이주노동자들의 의식도 성장했다. 동지들을 믿는다. 그동안 여러 투쟁을 해오면서 이주노동자들 스스로 해나갈 수 있는 경험과 역량을 갖췄다.

각 나라의 노동자들이 다 모였는데, 단결이 잘되는가.

각국의 문화나 행사는 다르지만, 노동자의 권리나 원하는 건 똑같다. 언어소통에서 조직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뭉치는 데 별 어려움은 없다. 옛날에는 바깥에(거리에) 나가지 못하고 회사에서 일만 했다. 남들 밥먹을 때 사장이 라면만 줬는데도 참았다. 그런데 얼마 전 조합원들을 모아놓고 권리를 스스로 찾자고 이야기할 때 모두들 울먹였다. 우리는 자살하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 절대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건설현장에서 한국의 노동조합이 파업을 할 때 이주노동자들이 파업 대체인력으로 들어가 현장 관리자들과 함께 일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이 경우 한국의 노동조합이 볼 때 이주노동자들은 골칫거리다. 파업해봤자 힘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주노동자들의 지위가 향상되지 않는 한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도 나아지기 힘들 것이다. 함께 연대해 싸울 일이 많을 것이다. 노동자는 하나다. 지지와 연대를 부탁한다.

이주노동자를 쓰고 있는 수많은 중소 영세사업장을 다 돌아다니면서 노조활동을 하기란 힘들 텐데.

문제가 터지는 사업장은 어디든지 가서 집회도 하고 싸움도 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노동허가제 쟁취 등 법과 제도를 고치는 싸움에 주력할 생각이다. 나를 포함해 대다수 이주노동자들은 좋은 젊은 시절을 한국에서 차별과 설움 속에 보냈다. 이제 우리들의 삶을 위해서라도 이주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아야 한다.



미안하다, 연대한다

[한국 노동조합 관계자들의 격려]



민주노총 신승철 부위원장: 일반 대중에게는 국내 실업 문제와 알 수 없는 국수주의라는 묘한 대중적 정서가 있다. 그러나 인권과 노동권 보장에서 예외는 없다. 한국의 노동자들도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인 이주노동자 노동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결성은 자신들의 자연발생적인 조직화라서 더욱 의미가 크다. 앞으로 고용허가제 폐지, 추방 단속 중단, 노동허가제 입법화 등을 위해 공동투쟁할 것이다.
한국노총 정길오 홍보선전본부장: 이주노동자 노조를 생소하게 생각하는 국내 노동자들도 있겠지만, 앞으로 조합원 교육 때 이들도 노동3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겠다. 언제든 노동권 보장을 위해 이주노동자들과 연대할 것이다. 이주노동자 노조의 출범을 적극 환영하며, 우리도 이주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위해 내부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김성희 소장: 이주노동자들은 중소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데, 비정규직이나 다름없다. 가장 열악한 노동 조건에 있는 노동자들인데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운동하는 쪽에서 아직 여력이 없어 이주노동자 노동권 문제를 충분히 제기하지 못했다. 이주노동자 노동조합도 비정규직 싸움과 같은 맥락에서 사회적 약자의 문제다. 비정규직 문제로서 앞으로 같이 연대하겠다.




태업 · 단체협상으로 싹 틔워

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의 가나가와 시티유니온(지역일반노조)과 홍콩의 현지노동자노조 외에는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활동이 적은 편이다. 도쿄 근처 가와사키에 있는 가나가와 시티유니온에는 일본에 불법 체류 중인 한국인 이주노동자 200여명이 주요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있다. 물론 다른 국가의 이주노동자도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있다. 이 노조는 1984년 가나가와 지역분회로 조직됐다가 1991년 시티유니온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한국 이주노동자들은 1992년부터 국가별 공동체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필리핀·네팔·버마·방글라데시 등 국가별 이주노동자 공동체들이 국내 노동조합들과 자매결연을 맺기도 했다. 이주노동자 공동체들은 1998년에 이주노동자 전국 조직화를 시도한다. 당시 경기도 대성리에서 각 국가별 대표자들이 모여 ‘한국이주노동자기구’를 결성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내부 이해관계가 엇갈려 전국 조직화는 실패하고 말았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안산지역에서 간혹 태업이 벌어지기도 했다. 단위사업장 안에 이주노동자들만 20∼30명씩 일하는 회사들이 늘었고, 반장 등 중간관리자로 고용되는 이주노동자도 생겼다. 이주노동자들만 근무하는 중소기업에서는 장기 임금체불, 폭행 등에 대해 이주노동자들이 사장을 상대로 집단 항의하는 형태로 태업을 벌이거나 단체협상을 벌이는 사례들도 나타났다. 비록 노동조합 깃발은 없었지만 이주노동자 노조의 맹아적 형태가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2001년 5월 민주노총 소속 ‘서울경인지역 평등노조’가 이주노동자를 주축으로 하는 이주노동자 지부를 만들면서 한국 이주노동자들도 노조 조합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국내 이주노동자들에게는 현행법상 아무런 제한 없이 노동관계법이 전면적으로 적용된다. 단지 출입국관리법으로 제한받는 노동자일 뿐이다. 우리나라 노동조합법은 “조합원은 어떠한 경우에도 인종·종교·성별·정당 또는 신분에 의해 차별대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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