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아직 살아있다면>의 작가 반레가 그 하루…자몽만한 크기에 종이처럼 얇던 동지의 심장이여
▣ 반레(Van Le)/ 소설가·영화감독
깡마르고, 땟국에 절어 시커멓고, 병약한 병사들이 동부지역과 인접지구의 지도로 덮인 책상을 둘러싸고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그 지도에는 다섯 방면에서 옥죄어 들어가 사이공을 빈틈없이 포위하는 붉은 화살표가 가득 칠해져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히타치(Hitachi) 라디오에서 해방라디오방송국의 음악 프로그램이 흐르다가 갑자기 중간에서 툭 끊겼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감동으로 떨렸다. “동지와 친구 여러분, 저희 특별 시사방송을 경청해주십시오. …친애하는 동지와 친구 여러분, 오늘 1975년 4월30일 11시30분, 드디어 해방군의 보병과 탱크가 대통령궁을 점령했고, 우리 군대와 인민들의 태풍과도 같은 봉기와 공격력 앞에 즈엉반민 대통령과 그의 내각이 무조건 항복을 해왔습니다.”
적들의 저항, 복수극을 부르다
그 뉴스를 들으며 나는 전신에 소름이 오스스 돋아날 정도로 전율했다. 온몸의 피가 급류가 되어 내달리고, 천둥 치는 소리를 들을 때처럼 순간순간 가슴이 떨려왔다. 바로 그 시각, 전쟁의 시곗바늘은 영원히 멈춘 것이다.
1966년 중반의 어느 날, 전쟁의 ‘초청장’을 받아든 순간부터 우리 모두는 이 영광스러운 날이 언젠가는 꼭 올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막상 그것이 찾아오자, 갑작스럽게만 느껴졌다. 이것으로 1만일의 인류 역사상 가장 길고도 잔혹했던 전쟁이 끝났다. 이 순간 우리 베트남 민족은 비로소 행군의 발걸음을 멈출 수 있었다. 우리는 몇분 동안이나 깊은 침묵 속에서 감격스럽고도 황홀한 뉴스의 한마디 한마디를 음미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아 볼이 움푹 파인 수척한 얼굴 위로 흘러넘쳤다.
“우리가 승리했다!” 아마도 르응유옌항이 그렇게 외쳤을 것이다. 그의 외침을 시작으로 동부지역 정치국 소속 K300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쇠약한 간부와 전사들은 모두 벌떡 일어나 어깨에 어깨를 걸고, 아이들처럼 발을 동동 굴렀다. 펄쩍펄쩍 뛰면서 고함을 지르고 울음을 터뜨렸다. 마음 놓고 흐느껴 울었다. 지금 이 전승의 소식을 듣고 오랜 세월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온 후방에서는, 우리 마을에서는, 내 어머니는 얼마나 감격스러워하고 있을까. 그때, 나는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가 땅에 엎드려 어머니에게 이 한마디만을 전하고 싶었다. “어머니, 저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정녕 이 한마디가 이 혼란의 시기에 병사가 부모에게 바치는 가장 가치 있는 말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얼마나 많은 어머니가 그 말을 들을 것이며, 또 얼마나 많은 어머니가 결코 그 말을 들을 수 없게 된 것일까?
어느 숲에선가 총소리가 울려왔다. 이어서 수많은 일제사격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동부지역 지휘부 근거지에 있는 숲에서 마치 전투라도 일어난 듯 총소리가 흘러넘쳤다. 르응유옌항도 선반 위에 놓인 AK소총을 집어들어, 실탄을 장전한 뒤 하늘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쏴라! 오늘의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쏘자. 조국을 되찾기 위해 죽어간 우리 친구들에게 고하기 위해 쏘자. 수십년을 끌어온 전쟁과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쏘자….
총소리가 점점 잦아들고, 너에게 전승 소식을 알리기 위해 나는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다리를 끌며 황토 언덕을 넘었다. 그날 오후 동부의 하늘은 어쩌면 그리도 푸르렀을까. 시리고 아프도록, 숨이 턱 막혀올 정도로 푸르렀다. 첫비가 내린 뒤 숲의 나무들에 새싹이 돋고 있었다. 땅과 하늘에 무엇인가 분명한 변화가 일고 있었다.
나는 길을 걸으며 전승 소식을 듣고 기뻐서 환하게 웃을 네 얼굴을 떠올리려 애를 썼다. 그러나 내가 틀렸다. 너는 잠시 차갑게 굳은 몸으로 서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나를 밀치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집 안으로 들어가 혼자 울었다. 나는 놀라서 너를 바라만 보았다. 네게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할 수 없었다.
너의 집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얼마 동안을 서 있었을까, 네가 다시 나타났다. 네 인생에 처음으로, 군대의 엄중한 규율을 깨고 그 모든 담장을 넘어 너는 두 팔을 벌려 나를 네 가슴에 묻었다. 나는 비탄에 잠긴 네 눈동자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네 두 눈 속에는 기쁨 말고도 알 수 없는 깊은 슬픔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 그 슬픔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설명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이 미래에 펼쳐질 네 인생의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감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했을 뿐이다.
르응반루이가 사이공에서 막 돌아왔다. 그는 내게 군용 담배를 던져준 다음, 따끈따끈한 전선 소식들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가 전하기를, 사이공 병사들이 사방으로 달아나면서 버리고 간 총과 탄약, 군장들이 13번 도로를 따라 지천으로 널려 있다고 했다. 그들은 칠칠치 못한 차림과 잔약한 표정으로 여기저기 무리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해방군의 깃발을 꽂은 차량을 보고 어떤 녀석은 꾸벅 절을 하고, 어떤 녀석은 헤벌쭉 웃고, 또 어떤 녀석은 손을 흔들었다. 한창 신나서 얘기하던 그가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내게 6대대의 정치위원 찌에우민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난 3월 벤깟 전선에서 민을 만나 함께 술을 마셨다고 말했다. 루이가 민의 전사를 알렸다. 민은 오늘 오후 1시, 즈엉반민 대통령이 사이공 병사들에게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호소한 직후에 희생됐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
“라이케 지역에서 적의 1개 중대를 포위하고 있던 민의 대대는 사이공의 항복 소식을 전해듣게 됐다네.” 루이가 말했다. 그러나 적군들은 여전히 미친듯이 저항했다. 민으로서는 총을 발사해 적군 모두를 전멸시키라고 명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정치위원인 민은 단 한 사람이라도 더 희생되는 것을 막고 싶었다. 잠시 생각한 뒤, 민은 참호에서 뛰쳐나와 확성기를 손에 들고 적군에게 저항을 멈추라고 호소했다. 불행하게도, 바로 그때 저쪽에서 날아온 총알들이 잇달아 그의 몸에 박혔다. 이 사고는 민의 대대 전사들을 광분케 했다. 그들은 적군들을 향해 인정사정없이 총탄을 퍼부었다. 루이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그 대대의 복수극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행동임이 분명하지. 쓸데없는 짓이었어. 하지만 어쩌겠어. 전쟁에는 늘 그런 말도 안 되는 어리석은 일들이 존재하지 않은가.” 나는 민의 희생 소식을 듣고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날 밤, 평화의 첫날 밤, 더 이상 폭격도 없고 적들의 삼엄한 감시도 없는데, 나는 먹을 수도 잠들 수도 없었다. 혼백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구름 위를 떠돌았다. 눈만 감으면 죽은 전우들이 살아왔다. 나는 부이따가 그리웠다. 나의 절친한 친구인 그는 헌신적인 정치위원이며, 우리 중대의 모범이었다. 우리 중대가 식량 부족에 시달리며 극도로 어려웠던 때, 그는 늘 얼마 되지도 않는 자기 정량을 전우들에게 양보했다. 그러다 마침내 기력이 다해 죽었다. 우리는 그의 주검을 지고 마을에 있는 보건소로 갔다. 보건소장과 의사가 그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을 결정했다. 메스가 그의 배에 긴 선을 그었을 때, 나는 선홍빛 용액이 배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피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그 다음에 사람들은 그의 심장을 꺼냈다. 크기가 자몽만 하고, 심근이 종잇장처럼 얇은 그의 심장이 알루미늄 쟁반에 는적는적 웅크리고 있었다. 부이따는 텅빈 뱃속에 풀을 가득 채우고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는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죽었다.
나는 또 네가 그립다. 피와 화염으로 물들었던 신묘년 봄의 내 사랑. 너는 다리를 다쳤고, 난리통에 의사를 찾을 수 없어 억울하게 죽어갔다. 내가 갔을 때, 네 몸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흰자위만 가득한 눈은 하늘을 노려보고 있었다. 소대장 반이 네가 새벽에 죽었다고 말했다. 나는 알코올로 네 몸이 다시 부드러워지도록 온 관절을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너를 묻으러 가기 전, 나는 네게 우리의 잘못이라고, 너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우리를 용서하라고 한없이 중얼거렸다. 우리를 지켜달라고, 불공평하게 팽개쳐진 너의 가혹한 운명을 바꿀 어떤 재주도 가지지 못한 너무나 어린 병사들을 보호해달라고, 나는 빌고 또 빌었다. 내가 막 기도를 마쳤을 때,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네 입가에 선명하게 붉은 피가 솟구치고, 흰자위만 가득하던 두 눈이 굳게 닫히고, 영혼이 떠난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내 인생은 줄곧 이 신성한 몇 사람들에 의해 사로잡혀 있다. 사람들의 영혼과 영혼은 신비한 끈 같은 것으로 엮여 있는 듯하다.
영혼과 영혼이 엮이던 신비한 추억
하룻밤을 하얗게 지새운 다음날 이른 아침, 우리는 차에 올라 사이공으로 향했다. 피와 화염의 13번 도로는 기어가는 뱀처럼 앞을 향해 뻗어 있었다. 우리 차는 아직도 포연의 짙은 냄새가 가시지 않은 폭탄구덩이를 피해 몸을 뒤틀듯 기어나갔다. 나는 길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에 기쁨과 슬픔이 어지럽게 교차했다.
동부지역 지휘부에서 사이공까지는 겨우 120km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길을 오는 데는 15년의 세월이 걸렸다. 15년을 기면서, 끌면서 왔다. 그 15년 동안, 이 도시로 오는 길가에 얼마나 많은 뼈와 살을 묻어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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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에서 만난 바오닌은 여느 때처럼 술에 절어 있었다. 담벼락을 따라 키 작은 탁자들을 다닥다닥 붙여놓은 골목 술집, 목덜미를 파고드는 칼바람을 막아보겠다고 그 알량한 양복 깃을 세운 채 앉은뱅이 의자에 옹송그리고 앉아 40도의 보드카를 연방 입에 털어넣으며 바오닌은 아이처럼 칭얼댔다. “어이! 내 인생은 사막이야, 사막이야, 사아막….” 무엇이 바오닌을 자꾸만 술 마시게 하는가. 그날따라 바오닌의 넓은 등짝이 내겐 사막보다 더 황량하고 추워 보였다. 그는 스스로 성장을 멈추어버린 <양철북>의 소년처럼 유년기로의 퇴행을 결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번도 내 부탁을 거절한 적이 없는 반레가 이번 베트남평화의료연대 의사들과의 간담회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한다. 감기 기운이 있는지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반레가 걱정스러워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그의 집으로 달려갔다. 내 놀란 가슴이 무색하도록 멀쩡한 반레는 자기 얼굴을 내 코앞에 들이대며 물었다. “냄새 안나?” 간담회에서 얘기를 할 때도, 반레는 나를 자신과 의사들 사이로 억지로 밀어넣어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 무엇이 반레의 몸에 자꾸만 병을 키우는가. 만성간염, 위궤양, 신장병 같은 여러 가지 질환을 달고 사는 반레에게 이번에 또 하나 추가된 병명은 축농증이라고 한다.
이 소심하다 싶을 만큼 섬세하고 여린 사내들이 피 냄새 진동하는 전쟁의 한복판을 온몸으로 관통해 살아남은 사람들이란 말인가. 잘 알려진 대로 바오닌은 1969년 하노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북베트남인민군대에 입대했다. 그해 바오닌과 함께 영광의 제27청년여단에 입대한 소년병 500명 가운데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그를 포함해 고작 열명에 지나지 않는다. 68년 닌빈성 호아르고등학교에 다니던 반레는 졸업을 두달쯤 앞두고 자원입대했다. 전쟁이 끝났을 때 그의 입대 동기인 300명의 부대원 중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오직 다섯명뿐이었다.
기억하는 일은 제 안에 잠들어 있는 상처를 ‘후드득’ 흔들어 깨우는 일이다. 그렇게 그들이 30년이라는 세월을 격하고도 생살이 돋지 않는 상처를 발기고 발겨서, 지하의 삶을 기억의 힘으로 불러내 지상의 삶과 다시 맞닿게 한 소설이 바로 바오닌의 <전쟁의 슬픔>이며, 반레의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이다. 기억하는 일은 어쩌면 바오닌에게 혈중 알코올 농도를 높이는 일이고, 반레에게 제 몸에 새로운 병균을 키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들은 살아남아서 ‘덤으로 얻은’ 생의 남은 시간을, 자기를 대신해 죽은 동료들을 기억하는 데 기꺼이 바치겠다고 한다.
똑같은 전쟁을 겪고도 저마다의 기억은 다르다. 똑같이 전쟁을 그려내도 바오닌의 기억이 빚은 슬픔과 반레의 기억이 빚은 슬픔은 그 무늬와 결이 다르다. 그래서 오래도록 바오닌과 반레는 서로 빛깔이 다른 작가로 불려왔다. 그런 두 사람이 1975년 4월30일, 사이공 최후의 날, 그 역사적인 하루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로 노래한다. ‘고마웠다, 내 생애 절정의 순간이여, 가장 아름다웠던 하루여…’라고. 대부분의 베트남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바오닌도 반레도 같은 목적으로 싸웠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쯤이면, 이만큼 했으면, 오는 4월30일에는 바오닌도 그렇고 반레도 그렇고, 그들이 풀어놓은 영혼의 실타래만큼만, 그들이 부려놓은 기억만큼만, 딱 그만큼만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그 하루만큼은 전쟁의 슬픔에서 온전히 놓여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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