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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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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빌리 브란트가 없는가

등록 2005-04-20 00:00 수정 2020-05-03 04:24

독일 기자가 바라본 한국과 중국의 반일 정서… 동아시아 애국주의에 불을 붙인 일본의 역사왜곡은 패착

▣ 해럴드 마스/ <프랑크푸르터룬트샤우> 베이징 특파원·정치학 박사

중국 내 여러 도시들에서 격렬한 반일 시위가 일어난 것을 계기로 일본의 과거사 처리 방식을 둘러싼 갈등은 이제 외교전으로 비화되는 양상이다.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지난주 인도 방문 기간 도중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중국의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 역시 지난주 독일 슈뢰더 총리와의 회동에서 국제 사회에서 일본의 입지가 더욱 강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놓았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벌어진 외교적 긴장관계의 파장은 독일에도 직접적으로 미치고 있다.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국제 사회의 저항이 커질수록, 같은 지위를 노리는 독일의 기회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안전보장이사회의 전면적인 구조개혁 논의는 이로써 물건너갈지도 모른다.

일본의 어리석음은 중국의 만만한 희생양

잘 알다시피 이번 갈등을 부른 원인은 일본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다. 한때 일본의 침략 지배 아래 놓여 있던 한국과 중국은 왜곡된 내용이 담긴 바로 이 교과서를, 전쟁을 저지른 자신의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진실 왜곡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갈등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몇년 전부터 일본의 우익 인사들은 그들이 보기에 치욕적인 내용을 교과서에서 삭제하도록 압력을 넣는 데 힘써왔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여러 차례 강행했다.

일본의 이웃나라들은 일본의 이러한 몰염치한 행동에 당연히 격앙했다. 중국쪽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침략기간 동안 모두 3500만명이 희생됐다. 난징 대학살만 따지더라도 일본군은 수십만명의 민간인을 무참히 살해했다. 한국 역시 식민 지배기간 동안 아픈 경험을 맛봐야 했다. 전쟁이 끝난 뒤, 일본은 한국과 중국 등 여러 나라에 상당한 규모의 배상금을 주었지만, 수많은 한국인과 중국인 그리고 아시아인들의 눈에 일본은 자신의 과거에 대해 단 한 차례도 제대로 된 사죄를 하지 않은 나라로 비쳐진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대단히 굴욕스런 행동”이라 언급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과거사에 대해 진솔한 사죄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한 1965년의 한-일 국교 정상화 협정을 다시 손볼 뜻이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는 일본의 어리석음은 현재 벌어지는 갈등의 한 단면일 뿐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점차 세를 얻고 있는 애국주의- 중국에선 이미 민족주의의 경계를 넘어섰다- 열풍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한국 정부가 반일 시위의 전면에 나서는 듯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단호한 태도는 유권자들 사이에서 지지세를 늘려가는 중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초의 전후 세대 대통령으로서, 이전 세대의 모든 유산에서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낀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로 경제를 꼽을 수 있다. 이제 한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은 더 이상 미국이 아니며, 중국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아마도 한국 정부의 단호한 태도는 정치적으로 한국이 중국쪽에 더 가까이 다가설 것임을 알리는 전주곡이 될 것이다.

중국 정부는 더 분명하게 일본과의 역사 전쟁을 국내 정치에 십분 활용하고 있다. 2주 전에 전국적으로 벌어진 시위는 국민들의 분노가 뒷받침된 자발적 사건 그 이상이었다. 중국 정부는 애국주의적 시위자들을 북돋웠을 뿐 아니라 시위를 조종하기도 했다. 대학생들은 단체버스 편으로 대학가에서 거리로 몰려갔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한 중국 정부에 이번 시위는 국민들 속에 잠재된 저항 에너지에 또 다른 물꼬를 터준 수단이다. 현재 중국에서 불균등한 경제발전이 커다란 사회적 긴장을 야기하고 있는 탓이다. 이쯤 되면, 일본이란 중국 정부에 내부의 문제에서 눈을 돌리게끔 해주는 만만한 희생양일지도 모른다.

독일에게서 배워야 할 중요한 학습목표

몇년 전부터 중국의 국영매체와 학교 등에선 애국주의를 고조하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중국은 영원한 희생자로 그려질 뿐이며, 반대로 일본엔 철천지원수라는 낙인이 찍힐 뿐이다. 지금껏 일본이 중국과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제공한 일정 규모의 경제개발 원조는 마치 1989년의 톈안먼 사태와 중국군대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 그러하듯,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대신 국민들에겐 민족주의만이 주입될 뿐이다. 중국인들은 이미 유치원에서부터 행진풍의 군대음악 등을 부르도록 교육받는다.

이러한 대중교육의 결과가 바로 대중들 속에 뚜렷하게 각인된 반일 정서다. 일본과의 교역 붐조차도 사태를 조금도 변화시키지 못할 뿐이다. 일본 기업들은 현재 최대의 중국 투자자이며 중국 전역에서 2만개가 넘는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반일 분위기는 더욱 빈번하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해 중국 축구팬들은 일본과의 축구 경기에서 지고 난 뒤 일본 자동차들을 눈에 띄는 대로 파괴했고, 결국 베이징 경찰 당국과 거리에서 격렬하게 충돌하기도 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일본의 과거사 처리 방식은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것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패착에 가깝다. 일본 정부가 부끄러운 과거에 대해 좀더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한, 또 일본군의 만행에 고통받아야 했던 수많은 피해자에 대해 도덕적인 원죄 의식을 갖지 못하는 한, 이 문제는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에서 영원한 그림자로 남을 것이다.

“일본의 빌리 브란트를 찾습니다!” 지난주 홍콩의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독일과 일본의 전쟁범죄를 나란히 놓는 일이 중요한 게 아니다. 각각의 나라는 저마다 과거사를 다루는, 그 나름의 문제와 맞닥뜨리고 있다. 독일에서도 오늘날까지 나치 집권기간 동안 수많은 수용소에서 수백만의 유대인이 무고하게 희생됐던 사실을 부인하는 나치주의자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독일은 적어도 정치적으로 자신의 과거에 대한 책임과 잘못을 받아들였다. 1970년, 바르샤바 게토를 방문한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은 그의 모습은 다음 세대에게 분명히 전해질, 독일의 잘못을 겸허히 인정하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독일 학교의 역사 수업시간에 나치의 범죄 행위를 숨김없이 가르치는 일이 가장 중요한 학습목표의 하나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건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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