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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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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목일 징크스’를 깨라!

등록 2005-04-13 00:00 수정 2020-05-03 04:24

대형산불에 관해 궁금한 모든 것… 왜 생명력 왕성한 4월에, 그것도 동해안에서만 집중적으로 불타는가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식목일·청명·한식이 겹치는 4월5일에는 산불 발생이 높은 지역에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지난 식목일 새벽을 전후해 강원도 양양을 비롯해 주변 지역에서 큰 산불이 발생하기 전, 국립산림과학원은 3월에 이미 ‘올 산불 식목일 전후가 고비’라는 제목으로 산불경보를 내렸다. 최근 5년간 산불 발생 건수를 보면 3월 중순부터 산불이 늘어나기 시작해 4월5일 최고의 정점을 이룬 뒤 4월20일까지 집중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식목일에 발생한 산불만 보면, 2000년 50건에 피해면적 521ha, 2002년 63건 621ha였다. 2003년에는 27건 21ha로 최근 5년간 가장 낮았는데, 당시에 식목일을 전후해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식목일 하루에만 37건… 1년 산불의 6.3%

최근 5년간, 연간 평균적으로 발생한 산불 585건 가운데 무려 113건이 식목일 전후(4월1∼10일)로 일어났다. 특히 식목일 앞뒤로 발생한 산불은 대형 산불이라서 피해면적은 더욱 넓다. 연간 평균 피해면적이 6445ha인데 이 중 식목일 무렵 산불에 의한 피해면적이 3854ha였다. 연간 산불 산림피해의 절반 이상이 식목일 전후에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식목일과 한식·청명일이 겹치는 4월5일을 전후로 3일간 발생한 산불은 연간 전체 산불의 11%, 연간 피해면적의 16%를 차지했다. 국립산림과학원 원명수 연구사(산불연구과)는 “식목일 하루에만 평균 37건의 산불이 발생해 1년 총 산불의 6.3%가 발생하고 있고, 연간 심은 것보다 더 많은 나무를 하룻만에 불태우는 꼴”이라고 말했다. 또 “최근 5년간 4월1일부터 4월10일 사이에 발생한 산불의 23%가 경기도에서 발생하는 등 전국 산불의 83%가 중부지방에 집중되고 있다”며 “따뜻한 남쪽 땅은 파릇파릇한 식생이 하층에서 일찍 올라오기 때문에 4월에 불이 나도 크게 번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식목일 징크스’라고 불리듯 해마다 대형 산불이 식목일에 집중되자 산림청 산불방지과쪽은 “식목일 전후해 비만 내려주면 연간 산림피해의 대부분을 비켜갈 수 있다”는 말까지 한다. 묘목을 심어야 할 식목일에 오히려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형편이다. 식목일 징크스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뭘까?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음력 한식날은 대개 24절기 중 청명 때가 되는데, 양력으로 치면 4월5일께가 된다. 이때는 식물의 생명력이 가장 왕성한 시기다. 식목일이 이날로 정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식목일과 한식날이 겹쳐 성묘객 등 입산자들이 크게 늘면서 산불 발생이 늘어나는 것인데, 불을 때 밥을 짓지 않고 전날 지어놓은 찬밥을 먹는다는 한식날에 꼭 큰불이 나는 것도 아이러니다. 주5일 근무제 실시에 맞춰 내년부터 식목일을 법정공휴일에서 제외한다는데, 그러면 식목일 징크스를 비켜갈 수 있을까? 물론 식목일 입산객 증가 때문만이 아니라 이맘때 건조한 날씨에다 바람까지 많이 부는 기상조건도 대형 산불의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1996년 강원도 고성 산불, 2000년 삼척·동해·강릉·고성을 휩쓴 동해안 산불, 2002년 청양·예산 산불 등이 보여주듯 대형 산불은 주로 4월에 집중되고 있다. 우리나라 산불의 특징은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송진이 많아 산불에 약한 소나무를 비롯해 불에 잘 타는 침엽수 임상이 가장 많고(45%) 가연성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기 때문에 일단 산불이 나면 수평 및 수직적으로 빠르게 번지게 된다.

시간당 속도는 서해안 산불이 빨라

또 우리나라에서는 자연적 원인에 의한 산불은 거의 없다. 반면 산불 예방·진화의 대표적 선진국으로 불리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는 낙뢰 같은 기상 여건에 따른 산불이 48%를 차지한다. 국립산림과학원 원명수 연구사는 “과거에는 봄철 산불이 건조한 동해안 지역에서만 주로 발생했으나 숲이 울창해지면서 최근에는 서해안 지역에서까지 발생하는 등 전국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지난 99년부터 2003년까지 산불 발생 원인을 보면 대부분 입산자 실화, 논·밭두렁 소각, 담뱃불, 성묘객 실화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양양 산불의 원인이 아직 밝혀진 건 아니지만, 이번 불이 논·밭두렁을 태우다가 옮겨붙은 것이라면 올해 동해안에 내린 늦봄 폭설 등 기상이변으로 논·밭두렁 태우기가 예년보다 1주일가량 늦어진 게 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큰 산불이 유독 동해안 지역에 집중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최근 5년간(1999∼2003년) 30ha 이상의 산림피해를 낸 대형 산불을 보면, 전국적으로 29건 2만9천ha인데 이 중 대부분을 동해안 지역(12건, 2만4천ha)이 차지하고 있다(표 참조). 동해안 지역에서 최근 5년간 발생한 산불은 연간 24∼97건이었는데 2003년에는 5건으로 뚝 떨어졌다. 식목일 전후로 비가 왔기 때문이다. 국립삼척대 이시영 교수(소방방재학)는 “지난 91년부터 2000년까지 강원도의 각각 다른 지역이지만 똑같은 날 산불이 난 사례를 갖고 비교 조사한 결과, 강릉·동해·속초는 일일 평균온도 및 최대온도가 원주·춘천 등 내륙보다 높고, 풍속도 홍천·태백 등 내륙보다 더 높았다”고 말했다. 각종 기상조건과 지형, 산림의 임상분포 등을 따져볼 때 동해안 지역에서 대형 산불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시영 교수가 강원도 지역 산불 발생 요인을 유형화한 것을 보면, 강릉은 ‘방화’와 깊은 관련이 있고, 삼척은 ‘입산자 실화’, 철원·화천·양구는 ‘군사훈련’, 속초·춘천은 ‘쓰레기 소각’ ‘담뱃불’이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건 지난 96년 고성 지역 산불은 확산 속도가 시간당 1.07km, 2000년 삼척 산불은 시간당 1.6km였던 반면, 2002년 청양·예산 서해안 산불은 시간당 4.5km의 놀라운 속도로 산림을 집어삼켰다는 점이다. 이시영 교수는 “청양·예산 산불은 차령산맥에서 서풍이 불고 서쪽으로 급격한 경사면이 형성돼 불길이 빠른 속도로 번진 반면, 동해안은 나무 같은 불에 타는 연료가 바다쪽이 아니라 남동쪽 방향에 있어서 불길의 진행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린 편”이라며 “이번 양양 산불은 지난 96년 고성 산불과 마찬가지로 태백산맥을 넘어 서풍이 불면서 해안쪽으로 불길이 깎아지르듯 내려오며 빠르게 확산되는 서고동저형 형태를 띠었다”고 말했다.

과학적 예측 통한 산불진화계획 짜야

한국전쟁 이후 대대적인 조림사업을 통해 이제 숲이 어느 정도 울창해지고, 이에 따라 대형 산불이 빈번하게 일어나자, 우리나라에서도 과학적으로 산불을 예측·진화하는 기법 개발에 나서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산불위험예보시스템’을 구축해 권역별 산불위험지수를 날마다 발표하고 있다. 이시영 교수는 “과거 고성 산불, 삼척 산불, 청양·예산 산불이 풍속·풍향·소나무 임상분포·경사향 등에 따라 어떻게 진화 및 확산됐는지 분석하고 있다”며 “이 ‘확산 모델’이 완성되면 산불의 확산 속도를 과학적으로 예측할 수 있게 되는데, 이에 따라 산불 진화 계획을 짜고 진화 인력을 배치하고 주민대피 시간을 통보할 수 있는 등 과학적인 산불 예측·진화에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산불보험 필요없다?

우리나라에는 ‘산불보험’이든 ‘산림보험’이든 산불이 났을 때 손해를 보장해주는 보험상품이 없다. 그러다 보니 산불이 나면 수십년 가꾼 나무를 한순간에 다 날려버리게 된다. 반면 미국 등에서는 산불 피해가 났을 때 산주들이 대부분 보험으로 보상받고 있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우리나라 손해보험사들이 산불을 일부러 보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건 아니다”며 “산불은 보험 수요가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또 “1996년 고성 산불이 일어났을 때 산림보험에 대한 얘기가 잠깐 나왔지만 그 뒤 다시 쑥 들어가고 말았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산불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데도 왜 산불보험에 가입하려는 수요가 없는 것일까? 우리나라 산림은 국유림·군유림이 많은 편인데 산불 피해가 발생하면 어차피 국가·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묘목을 다시 심게 된다. 사유림의 경우, 나무를 키워서 판매하는 업자가 아니라면 산을 그저 ‘땅’으로 보는 인식이 강하다. 사실 산주들은 자기 산림에서 나무 열매나 따고 버섯이나 재배할 뿐 산림복합경영이든 산림축산이든 실질적인 영업은 할 수 없다. 산주들이 나무 같은 산림자원을 ‘소중한’ 내 재산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산불이 나더라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여기지 않고, 따라서 굳이 보험료를 내면서 산림을 보호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손해보험협회쪽은 “보험사로서도 산불 발생 빈도나 피해 규모 등을 예측하기 힘들고 임목 단가도 정확히 책정하기 어렵지만, 보험에 들겠다는 산주들의 의지가 적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소수의 사람이 산불보험을 들겠다고 나설 수 있지만, 이럴 경우 보험료가 대폭 비싸질 뿐 아니라 보험사로서도 산불보험을 인수하기 어렵다. 보험에는 ‘대수의 법칙’(수많은 사고나 위험을 토대로 평균적인 위험을 산출한 뒤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보험료를 받아두었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있는데, 보험사가 산불보험을 인수하려면 일정한 수 이상이 같은 보험에 가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씨’를 말리는 캐나다 전법

캐나다 서쪽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의 산불관리제도는 우리나라 산불관리 담당자들이 주로 벤치마킹하는 사례다. 국립삼척대학교 이시영 교수는 “B·C주는 산불 진행 특성이 우리나라 동해안과 비슷해서 우리가 활용할 시스템이 많이 있다”며 “국립산림과학원의 산불위험예보시스템도 이 지역에서 본떠 온 것”이라고 말했다. B·C주에서는 연평균 3천여건의 산불이 발생하는데, 이는 캐나다 전체 산불 건수의 29%를 차지한다. B·C주의 산림은 캐나다 전체 삼림면적의 57.4%를 차지한다. 그러나 산불 피해면적은 캐나다 전체의 1.03%에 불과하다. 발생건수 비율에 비해 피해면적 비율이 이렇게 낮은 이유는 뭘까? 산불이 발생하면 대부분 초기에 진화하기 때문이다.
B·C주의 산불 진화대원은 900명으로 산불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7∼8월에 주로 임시 고용한다. 특히 B·C주는 전 지역에 걸쳐 컴퓨터 네트워크를 이용한 산불관리시스템(RMS)을 구축하고 있는데, 산불통제본부에서 지역별 기상·산불위험 상황·항공기·진화대원 및 차량들의 이동방향과 속도 등 각종 자원을 정확하게 파악해 신속히 산불에 대응하고 있다. B·C주에는 또 220곳에 일기관측소가 설치돼 있는데, 실시간으로 관측되는 일기관측 자료에 따라 ‘산불 위험지역’으로 분류되면 이 지역에 진화대원과 진화장비를 사전에 배치해둔다. 이 밖에 산불연구 전문가 9명이 실제 산불 발생 현장에서 경험한 자료를 토대로 산불 진행·확산 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식생·바람·지형조건·습도 등 산불 현장에서 얻어진 데이터를 분석해 위험을 지수화하고 산불의 방향·속도를 정확히 예측하면 불길을 초기에 잡을 수 있게 된다. B·C주는 산불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시기에는 100여 군데에 설치된 산불감시초소에서 주·야간 감시하고, 주간에는 경비행기를 이용해 공중 감시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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