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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부고발자를 짓밟는가

등록 2005-03-22 00:00 수정 2020-05-02 04:24

조직의 보복행위로 고통받는 내부고발자들…특히 법의 보호 못받는 민간인들은 생계 위협까지

▣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연세대 독문과 강사 김이섭(47)씨는 강사이면서 강사가 아니다. 이 대학 제2외국어 강사실에 올해로 14년째 출근하는 ‘터줏대감’인데도 이번 학기에 단 한 시간도 강의를 맡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교쪽은 김씨에게 강의를 주지 않은 것에 대해 “다른 강사들에게도 강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학생들은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분위기다. 김씨가 ‘괘씸죄’에 걸려 강의를 박탈당했다는 게 독문과 학생들의 생각이다.

학생들의 의심은 김씨의 ‘전력’에서 비롯됐다. 김씨는 지난 2004년 1월 연세대 인터넷 게시판에 이 대학 독문과 교수들의 연구비 횡령 의혹을 폭로했다. 독문과 3명의 교수가 연구 참여 인력을 실제보다 부풀려 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를 타낸 뒤 이 중 일부를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는 내용이다.

부패방지법은 공무원만 신분 보호

김씨의 폭로는 대학 사회를 발칵 뒤집어놨다. 그동안 교육부 감사나 검찰 수사를 통해 연구비 비리가 적발된 사례는 있었지만, 교수와 ‘주종 관계’에 있는 강사가 이를 폭로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검찰 수사 결과 김씨의 폭로는 사실로 드러났고, 이 중 횡령 액수가 큰 2명의 교수는 약식 기소돼 각각 1천만원과 500만원의 벌금을 냈다.

그러나 연세대는 문제의 교수들에게 2개월 정직과 견책 등 가벼운 징계를 내린 반면, 김씨한테는 올 1학기 강의를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대학 독문학과장 고영석 교수는 지난 3월17일 <한겨레21>과의 전화 통화에서 “독문과 박사급 강사만 34명인데 과목은 10여개에 불과해 많은 강사들이 실업 상태에 있다”며 “김씨는 10여년 동안 계속 강의를 해왔기 때문에 다른 강사들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는 차원에서 (김씨에게) 강의를 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씨는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김씨는 “강의 평가 결과에 따른 조치라면 받아들이겠는데, 애매한 이유로 강의를 박탈한 것은 명백한 보복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연말 유엔이 정한 ‘국제반부패의날’을 기념해 투명사회기여상을 받는 등 큰 보람을 느꼈지만, 지금은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김씨처럼 자신이 속한 조직의 비리를 고발한 ‘내부고발자’들이 그 조직의 보복 행위로 고통을 겪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내부고발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면 ‘은밀하고 조직적인’ 부패를 적발할 수 있는 통로가 차단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회든 조직 내부의 부패를 외부에 알리는 것을 배신 행위로 여기는 정서가 있기 때문에 내부고발자는 여러 가지 보복 위험에 노출돼 있다.

현행 부패방지법(2002년 1월25일 시행)에는 신고자의 동의 없는 신분 공개 금지, 신고로 인한 신분상 불이익 처분 금지, 신고자와 친족의 신변 보호 조항 등이 규정돼 있지만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데 뚜렷한 한계가 있다. 특히 공무원들이 부패방지법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는 것과 달리 김이섭씨와 같은 민간인 내부고발자들은 아무런 보호장치가 없어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이는 부패방지법의 보호를 받는 신고 내용을 공직자와 공공기관이 관계된 ‘부패 행위’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환경오염과 식품위생, 주가조작 등 민간기업의 부정이나 사학재단의 비리에 대한 신고는 법에 의한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전형적인 보복, 민·형사상 소송

지난 2003년 자신이 다니던 회사를 포함한 금융회사들의 불법 행위를 금감원에 제보했다가 회사를 그만두게 된 김승민(35·공익제보자모임 간사)씨도 대표적인 민간인 피해자다. 그는 금감원에 찾아가 “우리카드가 2002년 12월 말과 2003년 6월 말에 고객의 동의 없이 조직적으로 대환대출을 하는 방법으로 연체율을 실제보다 크게 줄였다”고 제보했다. 그러나 금감원이 제보를 받은 바로 그날 우리카드쪽에 그의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줘 결국 그는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김씨의 고통은 계속됐다. 금감원은 김씨를 ‘허위사실 제공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냈다. 우리카드도 그를 무고죄로 고소했다. 같은 회사를 다니던 김씨의 동생은 물론, 김씨와 함께 일하던 동료들도 회사를 그만뒀다. 김씨는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소송비용으로 2천만원의 빚을 지는 등 금전적·정신적 피해는 매우 컸다. 김씨는 “내부고발자가 보복 행위로 겪는 고통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며 “특히 보호장치가 전혀 없는 민간인 내부고발자는 경제적 고통에 따른 이혼으로 가정이 깨지거나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등 삶이 망가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부패방지법 개정안에는 민간인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다. 부패방지위원회 김세신 사무관은 “필요성은 분명히 있지만 국가가 사적인 영역에 지나치게 개입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정부의 개정안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간기업과 사학재단 등의 비리가 만연돼 있는 상황에서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김승민씨는 “지난 3월5일 재계까지 참여한 반부패협약 선포식이 열린 직후 강원민방이 경영상의 잘못을 고발한 내부고발자를 색출해 징계위원회에 회부한 사건이 일어났다”며 “이는 민간인 내부고발자들이 왜 보호를 받아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간인 내부고발자를 괴롭히는 가장 전형적인 보복 행위는 각종 민·형사상 소송이다. 지난 2002년 서울 ㅇ여고 재단의 비리를 고발한 진웅용(31) 교사는 자신은 물론 부인과 직장 동료, 심지어 자신을 지지하는 글을 올린 학생까지 재단에 의해 고소를 당했다. “함께 소송을 당한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재단과의 싸움을 포기할 생각도 여러 번 했죠.” 진 교사는 소송을 진행하느라 신혼 살림에 큰 타격을 받기도 했다. 10여건의 소중 중 2건은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졌다. 하지만 교육부 감사에서 시정 지시까지 받은 재단은 여전히 전횡을 일삼고 있다.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복 행위로 소송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이렇다. 일단 소송을 걸면 내부고발자의 ‘출현’을 막을 수 있다. 소송을 거는 기업이나 학교, 공공기관에 재판 비용은 큰 부담이 안 되지만, 내부고발자에게는 엄청난 부담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동료들이 제2, 제3의 고발자로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한다. 또 공공기관은 국회 국정감사를 피할 수 있다는 큰 이점이 있다. 국회의원의 추궁이 있으면 ‘재판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답변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송에서 질 경우에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소송은 대부분 오래 걸리기 때문에 결과가 나올 때쯤이면 소송을 건 책임자들은 이미 퇴직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동료의 차가운 시선은 더 견디기 힘들어

반면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복 효과는 승소했을 때의 금전적 이익보다 훨씬 크다. 형사소송의 경우 내부고발자는 수사 단계에서 참고인 또는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과 검찰에 불려다니느라 녹초가 된다. 직장과 가정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수행하기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내부고발자에게 금전적인 것과는 별도로 심각한 정신적 부담을 준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상사나 동료들 앞에서 그들의 비리를 고발해야 하는 ‘비인간적인 상황’도 연출된다. 지난 2003년 대한적십자사의 부실한 혈액관리 실태를 폭로한 이강우씨는 최근 동료 직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난감한 경험을 해야 했다. 검찰이 혈액관리법 위반 등으로 기소한 적십자사 직원 27명의 재판에 이씨를 증인으로 부르는 바람에 옛 동료들 앞에서 그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검찰도 재판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겠지만, 인간적으로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전문가들은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복 행위를 막기 위한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부패방지위원회는 최근 발간한 백서에서 “소송 등 보복 행위를 한 공직자를 상대로 내부고발자가 소송을 제기하거나, 승소했을 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세신 사무관은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약이나 조직폭력배 사건처럼 범인들과 격리된 곳에서 증언할 수 있는 조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부고발자들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동료들의 차가운 시선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직을 배반했다’는 동료들의 냉담한 시선이 내부고발자들을 더욱 괴롭히고 있다. 이강우씨와 함께 적십자의 비리를 고발했던 임재광씨는 “다른 건 다 참겠는데, 평소 친하게 지냈던 동료들과 점점 멀어져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고 하소연했다. 임씨에게 냉담했던 그 동료들은, 검찰에 적발된 27명의 변호사 비용으로 6천만원을 모금해주는 ‘의리’를 발휘했다.



내부고발, 그 용기의 역사

내부고발의 ‘원조’는 지난 1990년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 실태를 폭로한 이문옥 전 감사관이다. 이 전 감사관은 당시 23개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비율이 일반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이에 대한 세무당국의 감시 역시 여러 가지 이유에서 대단히 미온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한창 진행돼가던 조사는 재벌의 로비로 갑자기 중단됐고, 이어진 인사에서 이 전 감사관뿐 아니라 과장과 국장까지 ‘좌천’되고 말았다. 이 전 감사관은 <한겨레>에 이런 사실을 제보했고, 이 뉴스는 곧 세상을 발칵 뒤집어놨다.
세상을 뒤집어놓은 대가는 컸다. 이 전 감사관은 공무상 비밀누설죄로 구속됐고 곧 감사원에서 파면됐다. 명예를 회복하는 데는 6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 전 사무관은 1996년 4월 대법원에서 공무상 비밀누설죄 부분에 대해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같은 해 10월 파면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승소해 복직했다. 이 전 감사관은 1999년 정년 퇴직한 뒤 시민단체에 투신했고, 지금은 내부고발자 모임인 ‘공익제보자를 위한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다.
군사독재 정권의 악명 높은 민간인 사찰 실태도 <한겨레>를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1990년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에서 근무하던 윤석양(당시 이병)씨는 10월4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안사가 당시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 김영삼 민주자유당(민자당) 최고의원, 김수환 추기경 등 1300여명의 민간인에 대해 불법적 사찰 활동을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윤씨는 기자회견을 위해 보안사를 ‘탈영’한 직후 <한겨레> 기자를 먼저 만나 이 사실을 제보했다. 윤씨는 기자회견 뒤 특수군무 이탈 혐의로 수배돼 1992년 9월 체포됐다가 2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해 지금은 서울의 한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다.
1992년 군 부재자 부정투표를 폭로한 이지문(당시 중위)씨도 <한겨레>를 가장 먼저 찾았다. 이씨는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군 부재자 투표 과정에서 공개투표, 대리투표와 여당 지지 내용의 정신교육이 있었다고 고발했다. 국방부는 이씨를 무단이탈로 구속해 기소유예로 풀어준 뒤 이등병으로 강등시켰다. 이씨는 3년간 법정투쟁 끝에 1995년 대법원으로부터 파면처분 취소확정 판결을 받아 중위 신분으로 명예전역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에 다니고 있는 이씨는 현재 ‘공익제보자를 위한 모임’ 부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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