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이 주최한 첫 대체복무제 토론회… 개정안 국회상정 앞두고 찬반론자 모두 현실안 모색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60년 만의 공청회가 열렸다. 국회 국방위 주최로 3월17일 여의도에서 열린 병역법 개정 법률안 공청회. 이날 공청회는 해방 이후 최초로 국가기관이 주최한 대체복무제 토론회였다. 이날 진술인으로 나온 홍영일 양심적 병역거부 수형자 가족모임 공동대표는 “공청회가 열린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현재 국방위에는 임종인 의원안과 노회찬 의원안 등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 도입을 포함한 두개의 병역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두 안은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 기간을 육군 현역병의 1.5배로 규정하고 있다. 이날 공청회는 찬반 양쪽 입장의 진술인 각각 3명이 발제를 하고, 국회의원들이 질의를 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진술인으로 수감 중인 병역거부자 오태양씨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국회의원은 열린우리당 소속 임종인·유재건·조성태·김성곤 의원과 한나라당 소속 송영선 의원이 참석했다.
전과자 양산과 병역 부족의 딜레마
찬성쪽 진술인으로 나온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병역거부권 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의 발제로 토론회가 시작됐다. 한 교수는 “헌재의 합헌 판결이 나온 뒤 병역거부 수감자 수가 1천명에 육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헌재 판결이 나올 때까지 미뤄졌던 병역거부자 재판이 속속 재개됐기 때문이다. 병역거부 수감자는 2004년 9월 458명에서 2005년 2월 885명으로 빠르게 늘었다. 오태양씨는 “60년 동안 병역거부자에게는 단 한번의 대체복무도 허용되지 않았다”며 “전과자라는 멍에가 대물림되지 않도록 단 한번의 기회라도 달라”고 호소했다. 홍영일 대표는 병역거부가 특정 종파만의 전유물이 아닌 기독교의 전통임을 강조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미국의 병역거부자는 1만2천여명으로 추정된다”며 “이 중 여호와의 증인은 532명에 불과했고, 가톨릭 162명, 감리교 845명 등 주류 기독교 신자가 2187명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반대는 여전히 완강했다. 김병렬 국방대학원 안전보장대학원 교수가 국방부의 입장을 대변했다. 김 교수는 “국방부쪽 입장은 현 단계에서 대체복무제 수용이 곤란하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의 안보 환경이 전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수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창인 재향군인회 안보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방의 의무가 지켜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형평성이 유지돼야 한다”며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는 특정 종파에 병역 면제 특혜를 달라는 요구”라고 비판했다. 제성호 중앙대 법과대학 교수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면, 양심에 따른 납세 거부도 인정해야 한다”며 “국가가 무정부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의원들의 질의가 이어지면서 쟁점이 떠올랐다. 쟁점은 전과자 양산과 병역자원 부족의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냐로 모아졌다. 국방부는 1980년대 출산율 감소로 2005년부터 입대 대상자가 병역 필요인원보다 적어진다고 주장한다. 국방장관을 지낸 조성태 의원은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면 병역거부자가 늘어나지 않겠느냐”며 “해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홍구 교수는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늘어날 연간 병역거부자는 제7일 안식일교 신자 200~300명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제7일 안식일교 신자들은 집총을 피하기 위해 비전투 분야에서 복무하고 있다. 병역자원 수급 상황에 대한 입장도 엇갈렸다. 한 교수는 “병역자원 감소 추세가 바닥을 치는 2006~2008년에도 연도별 19살 남자 수는 32만명을 넘는다”며 “2년 동안 복무하는 55만명의 사병 집단을 유지하려면 해마다 27만5천명이 입대해야 하므로, 이때에도 여전히 4~5만명의 병역자원이 남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병렬 국방대 교수는 “2005년부터 연간 7만여명의 병역자원이 부족해진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병역거부를 인정하기는 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송영선 한나라당 의원은 찬성론자들이 예로 드는 대만의 사례에 대해 반박했다. 송 의원은 “대만은 군 현대화로 잉여 병력자원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다”며 “한국과는 맥락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대만은 국방비가 국민총생산(GNP) 대비 8.9%”라며 “인력을 줄이는 만큼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교도행정업무를 대체복무로 돌리면 어떨까"
이날 토론회에서는 현실성 있는 제안들이 나왔다. 병역거부 대체복무자 쿼터제가 대표적이다. 쿼터제는 대체복무제를 인정하면 병역거부가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대안이다. 오태양씨는 “총 3천명이면 전체 병력의 0.5%로 큰 전투력 손실이 없다”며 “연간 1천명씩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쿼터제를 3년 동안 운영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일단 시행해서 정말 안보에 영향이 있는지, 징병제의 기본틀을 흔드는지, 국민여론이 나쁜지 알아보자”고 주장했다. 한홍구 교수도 “쿼터 수는 국방위가 병역 수급 상황을 고려해서 정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체복무 분야에 대한 아이디어도 제안됐다. 오태양씨는 “저를 비롯한 대다수 병역거부자들이 구치소에 들어가자마자 교도행정 업무에 투입돼 대체복무가 아닌 대체복무제를 하고 있다”며 “대체복무를 인정해 교도소 안에 따로 숙소만 지어주면 전과자를 양산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되면 수감 기간보다 대체복무 기간이 더 길어 개인과 국가가 모두 좋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실제 교도소쪽은 병역거부의 대체복무가 인정될 경우 교도행정의 심각한 공백이 생길 것을 우려하고 있다. 조성태 의원도 ‘의무소방대’안의 현실성을 물었다. 그는 “군병력이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국방부가 병역자원을 복지 분야로 돌리는 안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며 “의무소방대처럼 이미 차출돼 있는 인원을 병역거부자의 몫으로 돌리는 것은 어떠냐”고 물었다. 찬성쪽 토론자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국방위는 이날 토론회를 마치고 4월 임시국회에서 병역법 개정안을 심의할 예정이다. 국방위 열린우리당 간사인 김성곤 의원은 “이르면 상반기, 늦어도 하반기 안에 법안 심의를 마치고 본회의에 상정하고 싶다”며 “열린우리당 의원들 안에서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다만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대가 문제”라고 덧붙였다. 현재 국방위 소속 열린우리당 의원 9명 중 1~2명을 제외한 의원이 개정안에 찬성한다고 알려졌다. 17명의 국방위원 중 과반에 가까운 찬성이 확보된 셈이다. 법안 발의자인 임종인 의원은 “문제는 대체복무의 범위와 방식”이라고 말했다. 60년 만의 공청회가 60년 만의 법안 상정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
제 교수는 깜짝 제안에 이어 기발한 충고까지 곁들였다. 자신을 기독교 신자라고 밝힌 제 교수는 “세속의 법과 종교의 교리가 충돌할 때 조화를 모색할 의무는 국가뿐 아니라 종교에도 있다”며 “여호와의 증인도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역으로 일하기 싫다면 기능을 잘 쌓아서 병역특례를 받으면 되지 않느냐”며 “4주간의 군사훈련이 걸리겠지만, 4주 군사훈련을 받아도 하나님이 용서하실 것”이라고 충고했다. 순간 방청석에서는 실소가 터지고, 졸던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속보] 윤석열 구속…현직 대통령으로 헌정사 처음
전광훈 “탄핵 반대 집회에 사람 데려오면 1인당 5만원 주겠다”
공수처 차량 파손하고 ‘난동’…윤석열 지지자들 ‘무법천지’ [영상]
공수처 직원 위협하고, 차량 타이어에 구멍…“강력 처벌 요청”
윤석열,구치소 복귀…변호인단 “좋은 결과 기대”
윤석열 엄호 조대현·안창호·조배숙…연결고리는 ‘복음법률가회’
윤석열 지지자 17명 현장 체포…서부지법 담 넘어 난입
경호처 ‘윤석열, 하늘이 보낸 대통령’ 원곡자 “정말 당혹”
윤석열 구속되면 수용복 입고 ‘머그샷’
나경원 “야당 내란 선동 알리겠다”…트럼프 취임식 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