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경색 국면에서 비료 지원 문제로 애간장 태우는 정부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북한에 보내는 비료지원 문제로 정부가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비료는 그렇게 뜨거운 감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남북 당국간 대화가 지난해 7월 이후 중단된데다, 올 2월10일에는 북한이 공식적으로 핵 보유를 선언하는 바람에 인도적 차원에서 넉넉한 마음으로 건넸던 비료를 이제는 나라 안팎의 여론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당장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노골적으로 대규모 비료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바 있다.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대사는 2월18일 한국의 대북 비료지원과 관련해 “(6자회담 참가국간에)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조율된 행동이 필요하다”면서 에둘러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도 비슷한 시기에 반기문 외교부 장관을 만나 북한이 올해 요청한 비료 50만t 지원을 수용하지 말라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은 지원 반대 입장 전달
북한은 지난 1월 50만t의 비료지원을 정부에 요청해왔다. 비료지원 문제는 지난 몇년간 통상적으로 양쪽 차관급 인사를 수석대표로 하는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주요 의제로 다뤄져왔다. 노무현 정부는 지난해만 해도 봄가을 두 차례에 걸쳐 30만t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번에 북한은 이런 요식 절차 없이 비료를 보내줬으면 하는 바람을 숨기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남쪽 정부로서는 이를 선뜻 수용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비료를 살 돈이 없거나 그저 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정치적 명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남북 대화에 나오거나 북핵 문제에 어느 정도 진전을 보여주면 문제는 쉽게 풀린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까지 별다른 낌새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은 3대 경협사업, 즉 개성공단 건설, 도로·철도 연결, 금강산 관광사업에는 협력하면서도 이 선을 넘는 협력적 자세는 일절 취하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내심 초조하면서도 겉으로는 짐짓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이 곧 긍정적 신호를 보내오리라는 기대다. 이는 비료가 갖는 미묘한 속성 때문이기도 하다. 남쪽에서 보내는 비료는 북한의 곡물 증산에 큰 기여를 해왔다. 게다가 북한은 올해를 농업 증산의 해로 선포한 터다. 북한은 올해 80만t에서 90만t의 식량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밝히고 있다. 지난해 북한을 방문한 유엔 식량농업기구의 긴급구호 담당관은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토질은 너무 산성화돼서 비료를 주더라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면서도 “토질을 개선한다면 수확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비료는 북한의 당장 먹는 문제 해결에 어쩌면 절대적 기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남쪽 비료 확보는 북한의 국가적 과제 가운데 하나다.
문제는 북한이 비료를 얻어가기 위해 언제 당국간 회담에 나오느냐는 점이다. 북한을 회담장으로 이끌어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장으로 함께 직행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앞으로 이르면 한두달이 국면 전환의 중요한 고비라고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간 비료는 보통 4월 중순에 북한에 보내졌다. 봄철 시비를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당장 시급한 비료보다 정치적 명분을 우선시한다면 양상은 달라진다. 북한 당국은 6자회담에 대한 불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 다른 악재가 겹치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3월10일 논평에서 한-미 합동으로 19~25일 치르는 연합전시증원(RSOI) 연습 및 독수리연습 계획을 즉각 취소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논평은 특히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떠들면서 조-미 핵 문제 해결에 관심이 있는 듯이 광고하는 부시 세력은 올해 초 우리 공화국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중상모독하면서 사실상 6자회담의 문을 닫고 의도적으로 조-미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미 합동 군사훈련도 악재
이런 대규모 군사훈련은 통상 북한 지도부의 입지를 크게 좁혀왔다. 이는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 수 있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의 고민은 무턱대고 비료를 붙잡고 있을 수도 없다는 점이다. 적정 규모의 비료지원은 인도적 차원에서 외면할 수 없는데다, 민간단체들의 직·간접 압력도 만만치가 않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도 북한이 요청한 봄철 비료 50만t을 지원해줄 것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건의하기도 했다. 남북 관계에서 비료의 몸값이 지금처럼 비싼 적은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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