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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 탈북자 살 길 열리나

등록 2005-03-02 00:00 수정 2020-05-02 04:24

한의사 김지은씨 대학 편입시험 합격…자격 인정 제도 개선을 위한 3개 부처 연구용역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전문직 출신 북한 이탈주민들의 국내 자격 인정을 위한 제도 개선의 물꼬가 트였다.지난해 8월 김현미 열린우리당 의원 소개로 “한의사 자격시험을 보게 해달라”고 국회에 청원을 냈던 ‘탈북자 국회청원 1호’ 김지은씨가 2월22일 충북 제천에 위치한 세명대 한의과대학 편입시험(본과 1년)에 합격했다. 김씨는 북한 청진의대 동의학부(7년 과정)를 마치고 8년 동안 한의사로 일하다 탈북해, 2000년 3월에 입국했다. 김씨는 통일부와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학력을 인정받았으나, 보건복지부가 졸업증명서가 없다는 이유로 학력을 인정하지 않아 한의사 자격시험 응시 권한을 얻지 못했다.

증명서 있어도 인정받기 어려워

그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김현미 의원이 지난해 10월 국무조정실 상대 국정감사 때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공론화됐다. 김 의원은 “북한에서 전문직종에 근무했던 이탈주민들이 제도 미비와 부처간 차별적 잣대 때문에 한국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각 부처의 통합적 관리 시스템을 마련하고 탈북자 지원 프로그램의 현실성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국무조정실은 통일부, 교육인적자원부, 보건복지부와 함께 북한 이탈주민의 학력 인정 및 전문분야 자격 인정 제도 개선을 위한 대책단을 꾸려 지난 1월 1차 회의를 열고, 3개 부처 공동으로 연구용역을 추진하기로 했다. 연구 결과는 4월께 나올 예정이다. 정동문 통일부 정착지원과 과장은 “대표적 전문직인 의사, 교원에 대한 자격 인정 방안 연구를 의뢰했는데 결과가 나오면 다른 전문직에도 준용될 수 있을 것”이라며 “전문직 이탈주민이 자긍심을 갖고 국내에서 전문성을 발휘할 길을 여는 것은 통일 시대를 대비한 자산이라는 관점에서 각 부처가 힘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3개 부처는 이와는 별도로 김지은씨에 대해서는 제도 미비에 따른 피해 구제 차원에서 편입을 통해 재수학한 뒤, 자격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했다.

국내에 정착한 북한 이탈주민은 2005년 2월 현재 6304명으로 2004년의 입국증가율은 전년 대비 47.8%다. 의사, 교원, 통역원 등 전문직 종사자는 123명이다. 전문직 출신자 가운데 졸업증명서나 재직증명서를 챙겨온 이는 드물고, 증명서가 있어도 기술직종이 아니라면 학제와 자격제도가 국내와 맞지 않아 인정받기 어려웠다. 그동안 교사 출신자 두명이 자격 인정을 원했으나 좌절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 자격 취득자와 마찬가지로 교사는 대학교육을 다시 받아야 하고, 의사는 자격시험을 치러야 한다. 김씨처럼 졸업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면 학업을 새로 시작하는 길밖에 없다.

합리적인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

김지은씨는 ‘유일무이한 사례’였기에 고비를 넘기며 편입이라는 해법을 찾았지만, 앞으로 이탈주민이 늘어날 경우 부작용도 예상된다. 유영학 보건복지부 한방정책관은 “앞으로 비슷한 청원이 있을 경우 관련 법규가 없다면 매번 같은 어려움을 겪어야 하고, 형평성 논란도 생길 것”이라며 “합리적인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1학기 학비는 통일부에서 지원받고, 기숙사비는 1년 동안만 학교에서 지원받기로 했다. 그 뒤의 학비 대책은 막막하다. 현행 북한 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은 만 35살 이하에 한해 학비를 지원하고 있다. 김현미 의원은 3개 부처 연구 결과가 나오는 대로 북한 이탈주민의 학력과 전문성 인정절차 개선을 위한 관련법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김 의원은 “학비지원 나이제한을 푸는 대신 요건을 강화하고, 자격증을 곧바로 줄 수 없는 분야는 자격시험을 보기 위한 사전 검증방법을 담겠다”며 “자격 인정 난립 위험이 있다고 하지만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돼야 오히려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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