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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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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기업’이 오래 살아남는다

등록 2005-02-23 00:00 수정 2020-05-03 04:24

[‘지속가능경영’의 현재와 미래(상)]

기업의 원가 줄이고 환경 오염도 낮추는 윈윈 게임이 세계 경영의 전반적 흐름으로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환경·윤리·투명 경영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포괄하는 ‘지속가능경영’이 산업계에서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기업이 덩치를 키우고 이익을 내는 것만으로는 생존의 충분조건이 될 수 없고 환경 보존, 사회공헌 등을 통해 건강한 가치를 추구하고 지켜야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데 바탕을 둔 개념이다. 세계적인 기업들에서는 지속가능경영을 거래 조건으로 내세우는 예도 있어 또 하나의 무역장벽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겨레21>은 국내외 산업 현장을 중심으로 한 취재를 통해 지속가능경영의 실태와 전망을 세 차례에 나눠 다룬다. 편집자 주

올해 초 포스코에는 새로운 부서 하나가 생겨났다. 기존 경영기획실이 맡고 있던 경영전략 관련 업무를 이어받고, 각종 혁신활동을 총괄하는 혁신기획실. 이 부서의 4개 팀 가운데는 5명 규모의 지속가능경영(CSM·Corporate Sustainability Management)팀이 포함돼 있다. 김병휘 지속가능경영팀장은 “회사 여러 부문에서 이뤄지는 지속가능경영 활동을 체계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삼성SDI는 지난해 초부터 지속가능성경영(SM) 추진사무국을 두어 운영하고 있다.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이정화 부사장 직속 기구인 SM사무국은 각 부문의 사회공헌 활동을 회사 색깔에 맞도록 전략적으로 배치하고, 각 부서 활동의 초점을 지속가능성에 맞추고 있다. SM사무국의 김정근 박사는 “올 주주총회 때부터는 세계적 흐름에 맞춰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애뉴얼 리포트(사업보고서)에 통합 발간해 재무 성과뿐 아니라 지속가능성 차원에서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쉽게 판단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들 기업 외에도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상당수 기업들이 신년사나 기업설명회(IR)에서 기업의 핵심 경영전략을 지속가능경영으로 제시하고 있다. 주주총회 때 사업보고서와 별도로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해 지속가능경영의 성과와 약속을 공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의 안병훈 교수는 “국내적으로는 지난해를 지속가능경영의 태동기로 볼 수 있으며, 앞서가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총 때도 지속가능성 보고서도 발간

이처럼 기업의 비전을 지속가능성에 맞추려는 흐름이 앞선 기업들에선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음에도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이해나 공감대는 아직 뚜렷하지 않은 듯하다. 개념이 추상적이어서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은 물론, 환경 경영에 새로운 개념을 덧칠한 정도가 아니냐며 평가절하하는 냉소적 시각이 엄존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두고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욕망을 슬쩍 가려 이미지를 높이려는 장식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폄하도 있다. 거꾸로 지속가능경영을, 산업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무슨 만병통치약처럼 여기는 과도한 평가도 없지 않은 실정이다.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평가처럼 그 개념에 대해서도 다양한 관점이 있는데,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선 재무적으로 ‘강한(strong) 기업’보다 사회적으로 ‘좋은(good) 기업’이 돼야 한다”는 것으로 대략 정리된다. 환경 보호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업 바깥의 요구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이윤을 많이 내는 것만으로는 기업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특별한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바 크다.

소니의 예를 보자. 2001년 말 크리스마스를 겨냥해 네덜란드 세관을 통과하던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이 수입 불가 판정을 받았다. 부품 가운데 모니터와 시스템 본체를 연결하는 전선 피복에서 중금속인 카드뮴(Cd)이 허용 기준인 100ppm을 초과해 검출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수입금지 조처, 부품 교체 등으로 소니는 약 2천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미국 화학업체인 몬산토는 2002년 발생한 미국 앨라배마주 애니스톤 공장의 독극물 방출 사고로 8천억원(7억달러)을 주민에게 배상하라는 선고를 받았다. 사건 당시 몬산토의 주가는 주당 35달러에서 15달러로 주저앉았다. 환경 문제를 일으킨 게 기업의 생존을 위협받을 정도의 치명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데 따른 손실 사례도 적지 않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지난 1998년 스포츠용품 업체인 나이키가 파키스탄과 캄보디아의 아동노동 사건에 연루돼 심각한 위협에 직면한 바 있다. 모건스탠리는 직장 내 성차별 소송으로 620억원(5400만달러)의 합의 비용을 지급해야 했으며, 세계 최고의 투자은행이란 명성에 금이 갔다. 아동 인권, 성 차별 등 사회적 의제에서 기업의 무책임성이 드러날 경우 심각한 위기 국면으로 치닫게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 활동을 환경 보호에 맞추고 사회적 책임을 다함으로써 지속가능성을 보장받겠다는 새로운 경영 전략은 이런 사회적 압박과 무관치 않다.

나이키가 이미지 망가진 이유

환경·사회적 사건을 목격한 기업들의 대응은 대략 두 가지로 나타난다. 이승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를 ‘반응적(reactive) 접근’과 ‘공세적(proactive) 접근’으로 분류한다. 예를 들어 환경 부문에서 이미 제시돼 있는 오염 배출 기준을 잘 지키는 게 반응적 접근이라면, 오염원을 원천 봉쇄하는 제조 공정을 도입하는 것은 공세적 접근이다. 이런 공세적 접근이 바로 지속가능경영의 태도로 흔히 여겨진다. 사회적 책임 측면의 공세적 접근은 인권, 노동 조건 등에서 의무 기준을 넘어 (굳이 안 해도 되는) 사회공헌 활동으로까지 이어감으로써 기업 명성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지속가능경영이 일상적인 기업 활동과 과연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환경 보호와 사회적 책임을 지는 노력은 기업에 추가적인 부담을 줄 개연성이 높은데, 이윤 추구를 존재의 본질로 삼는 기업이 그런 노력을 지속적으로 펼치기는 어렵지 않은가?

현실에는 지속가능경영의 좋은 사례가 적잖이 제시돼 있다. 미국의 카펫 회사인 인터페이스는 카펫을 판매하던 사업 방식을 바꿔 카펫 상태를 관리하는 쪽으로 돌아서서 환경보호와 기업 이윤의 조화를 이룬 좋은 예다. 예전의 사업 방식에서는 일부만 닳은 카펫이라도 빨리 교체하도록 해야 기업에 득이 되는 반면, 바닥관리 회사로 변신한 지금은 카펫을 자주 갈수록 기업의 원가가 높아져 손해다. 사업 발상의 전환을 통해 친환경적인 경영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복사기 제조업체인 제록스가 제품을 판매하지 않고 임대한 뒤 관리해주는 사업 방식을 채택한 것도 이런 예다. 새로운 방식에서는 예전과 반대로 복사기의 재활용률을 높이는 게 회사에 득이 된다.

항공기 기내식, 발상의 전환

문제는 이런 윈윈(상생)이 아직은 특별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환경 보호와 기업 이윤이 충돌할 때가 많다. 이는 국내 폐가전제품 뒤처리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정부는 가전 3사(삼성전자, LG전자, 대우일렉트로닉스)에 자발적으로 폐제품을 회수하도록 조처하고 있는데,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폐제품의 재사용이나 재활용 비율을 높이는 게 가전 3사에는 신제품의 판매량을 줄이는 손실을 안겨주기 때문에 폐제품 회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리 없는 것이다.

해당 업체가 발상을 바꾸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상생이 가능할 것 같은데도 안 되는 예도 있다. 이승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의 경험담을 들어보자.

“국내 항공사의 기내식 공장을 방문한 일이 있다. 한 신문사의 주최로 환경경영대상자 선정을 앞두고 현장 실태를 평가하는 자리였다. 그 회사 직원이 음식물 쓰레기를 최신 설비로 잘 처리하고 있다며 환경 경영 사례라고 강조하더라. 그 자리에서 면박을 줬다. ‘그건 환경 경영이 아니다. 환경 경영이라면, 쓰레기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지, 이미 만들어진 쓰레기를 잘 처리하는 게 무슨 대수냐.’ 쓰레기를 줄이면 기내식의 원가도 낮아지는데 왜 그런 노력은 하지 않느냐는 거다.”

당시 이 교수는 그 자리에서 기내식의 원가와 쓰레기를 혁신적으로 낮출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사람마다 먹성이 다른데도 기내식의 양은 똑같다. 이 때문에 기내식에서 엄청난 쓰레기가 발생한다. 기내식 메뉴를 ‘비프스테이크’나 ‘치킨’으로 만들 게 아니라, ‘대·중·소’ 크기로 마련해 주문을 받으면 된다. 이렇게 비즈니스 프로세스(업무 공정)를 바꾸면 원가 절감은 물론, ‘쓰레기 안 만드는 항공사’로 이미지를 높일 수 있다. 스튜어디스의 업무가 복잡해지겠지만, 이런 식으로 쓰레기의 ‘원천’을 줄여나가야 한다. 비행기 탑승객이 통상 한번에 200~300명쯤 되니 대·중·소 크기를 얼마나 준비해야 할지는 통계적으로 얼마든지 예측할 수 있다.” 기내식의 메뉴를 크기별로 골고루 준비한다면 기업의 원가를 줄이고 환경 오염도 낮추는 윈윈 게임이 가능할 듯한데, 어찌된 일인지 이 항공사는 아직 이런 공정을 채택하지 않고 있다. 친환경적 경영이 기업의 이익으로 잘 연결되지 않는 나름의 속사정이 따로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환경 경영은 그나마 기업의 원가와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 기준 제시 등을 통해 기업들의 자발적 노력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런 방식으로 유도하기 어렵다. 기업 본연의 업무와 관련성이 낮은 사회공헌 활동은 막말로 ‘하면 좋은 거고, 안 하면 그만’일 것이기 때문이다. 지속가능경영의 패러다임이 매우 획기적인 발상이긴 하지만 현실에서 전반적으로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난관이 많을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영의 전반적인 흐름이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잡혀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소비자들의 의식이 높아지고 있다는 배경은 제쳐두고라도 지속가능경영을 압박하는 국제적인 가이드라인이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내년부터 시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유럽연합(EU)의 전기전자 제품에 대한 법안이다. 그 중 하나인 유해물질사용제한지침(RoHS)은 전기전자 제품 안에 납, 수은, 크롬 등 6가지 유해물질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예컨대 국내 대기업이 만든 냉장고나 세탁기에 해당 유해물질이 함유돼 있다면 수출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는 국내 대기업과 하청 관계를 맺고 있는 중소기업들에 연쇄적인 부담으로 이어진다.

중국 추격 따돌릴 기회다

또 하나의 법안으로 전기전자제품폐기물처리지침(WEEE)이 있다. 이는 생산자에게 폐제품의 회수와 사용 이후의 처리에 대한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폐제품의 재사용 또는 재활용률을 높이는 인프라(기반시설)를 갖춰야 이 지역에서 수출을 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지속가능경영 컨설팅업체인 (주)에코프론티어의 이한경 책임연구원은 “WEEE의 범위는 대단히 방대해 대·소형 가전과 정보기술(IT), 통신장비, 조명장비, 전기전자 도구 및 장난감은 물론 스크린, 키보드, 서킷보드 같은 소모품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또 지침을 지켜야 할 ‘생산자’에는 자체 브랜드를 가진 모든 제조업체, 판매자, 소매업체 및 수입업체를 일컫는다고 이 연구원은 덧붙였다.

EU는 두 법안 외에 에코 디자인에 대한 지침(EuP)도 준비 중이다. “이 지침은 제조자에게 제품 전 과정에 걸쳐 발생하는 포괄적인 환경영향을 평가하고 제품 설계가 환경·기술·경제적 측면에서 최적점에서 이뤄졌음을 증빙하도록 하고 있다. 제품을 디자인하는 단계에서부터 사용 뒤 폐기될지, 재활용될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이한경 연구원)

2월16일 발효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협약인 ‘도쿄의정서’도 차츰 환경경영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환경경영 중심의 지속가능경영을 압박하는 이들 가이드라인을 국제무역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EU를 비롯한 선진국 둘레에 무역장벽을 치는 것과 같다. 기술에서 앞서 있고 미리 대비를 해온 유럽 지역의 기업들에 견줘 개발도상국 기업들의 준비는 아무래도 미흡하기 때문이다. 지속가능경영의 흐름 속에는 국내 산업계의 위기가 내포돼 있음을 뜻한다. 거꾸로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환경 기술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 면에서 중국보다는 우리가 앞서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경영의 명분은 쉽사리 거부할 수 없다. 어떤 면에선 국내 산업계의 최대 위협 요인인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유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임대웅 (주)에코프론티어 서스테이너빌리티사업부장)



2002년 국내 수입… 30여개 업체 참여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개념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1987년이었다. 그해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는 ‘우리 공동의 미래’라는 보고서를 통해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sustainable) 발전”의 비전을 제시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 불평등의 고착화 등 전통적인 생산과 소비 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인구 증가, 사회적 불평등 가속화, 생태 환경의 파괴와 자연 자원의 고발 등 전지구적인 위험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는 절박성을 배경에 깔고 있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세계환경 정상회담에 ‘리우선언’과 실천 전략인 ‘의제21’을 채택함에 따라 ‘지속가능한 발전’은 이제 국제적인 협약과 실천 과제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선진국뿐 아니라 개발도상국도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두어 실천 과제와 의제를 설정하는 것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이런 세계적인 흐름은 산업계에 성장전략을 다시 설정할 것을 요구하는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지속가능경영’이란 개념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국적 선진 기업들을 중심으로 환경과 사회적 책임을 중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각성이 조금씩 확산된 것이다. 마침내 1995년에는 160개 다국적 선진기업의 연합체인 지속가능발전세계기업협의회(WBCSD)가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WBCSD는 리우 정상회담 뒤 산업계의 대응을 선도해온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BCSD)와 세계환경보호산업협의회(WICE)가 합쳐진 조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환경 효율성을 높이도록 유도하고 지원하는 구실을 맡는다.
우리나라도 이런 흐름에 맞춰 2002년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KBCSD)를 설립해 지속가능한 국가 발전, 환경과 경제의 상생 구현, 회원 기업의 가치 극대화 등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협의회에는 LG칼텍스정유, 포스코, 삼성전자 등 30개 안팎의 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관심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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