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취임사에서 통치 이데올로기로 자유 내세워…이란과 북한 등을 위협할 대의명분 될 듯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자유, 자유, 자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1월20일 밝힌 집권 2기 취임사는 온통 자유를 찬미하는 어구로 채워져 있다. 17분 길이의 취임사에는 ‘자유’(Freedom 또는 liberty)라는 단어가 무려 50여 차례 나온다. 부시 집권 2기의 새로운 대외정책 독트린의 단초가 엿보인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은 부시 집권 2기를 풍미하는 핵심 키워드가 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은 폭정과 절망 속에 사는 사람들을 모른 체하지 않을 것이며, 압제자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전세계 어두운 곳에 자유를 확산시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널리 퍼뜨려 안보 위협을 완화하고, 미국 기업인의 경제활동에 유리한 세계적 환경을 조성해 경제·군사적 이익을 챙기려는 구상은 클린턴 때의 대외정책 기조였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내세우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 주장의 이면에는 다른 뉘앙스가 풍긴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에서 자유가 유지되느냐 하는 것은 다른 나라의 자유 유지가 성공하느냐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고, 세계 평화를 위한 최선의 희망은 전세계의 자유가 확대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미국을 단결시키는 대의명분이며, 전세계에 희망을 주고 우리를 미래의 평화로 이끌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저 별들 너머로부터 자유를 위해 일어서라는 소명을 받고 있고 미국은 언제나 그에 충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분열로 찢긴 미국인 단합 도모
‘자유의 유지와 확산’이 지난 4년 동안 전쟁과 정치적 분열로 찢길 대로 찢긴 미국인들의 단합을 도모하고, 이를 이끌 새로운 비전이자 통치 이데올로기로 기능할 것임을 예고한다. 그는 취임사에서 이런 자유를 어떻게 퍼뜨릴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2월2일 발표할 집권 2기 첫 연두교서에 자세한 내용들이 담길 것으로 점친다.
취임사에는 부시 특유의 이분법적 사고와 일방주의적 기조가 담겨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모든 통치자와 모든 국가 앞에서 선택을 명확하게 할 것이다. 즉, 항상 나쁜 것인 억압과 영구히 옳은 것인 자유 사이의 도덕적 선택을 명확하게 할 것이다.” “자유 없이는 정의가 없으며 인간 자유 없이는 인권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영구적인 노예 상태의 가능성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영구적인 폭정의 존재도 용납하지 않는다.” 집권 1기에 견줘 표현이 조금 고상해지긴 했지만 취임사 전반에 흐르는 기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국식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구적으로 관철하겠다는 의욕이 넘쳐흐른다.
특히 부시가 주장하고 있는 압제정권 타도와 자유 확산의 대상이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내정자가 이미 열거한 이란, 북한 등 이른바 ‘폭정의 전진기지’ 들이라는 점에서 부시 행정부의 의도는 이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라이스는 1월18일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외교를 이용해 자유를 확산시켜야 하는 것이 미국의 임무”라고 전제한 뒤 “세계에는 폭정의 전진기지들이 남아 있으며 미국은 쿠바와 버마, 북한, 이란, 벨로루시, 짐바브웨 등 모든 대륙의 억압받는 사람들 편에 서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일치단결해 북한과 이란이 핵무기 야망을 포기하고 평화의 길을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식 자유를 주입해 주민들을 해방시킬 표적이 좀더 선명하게 드러난 셈이다.
이란에 군사행동 가능성 언급
라이스의 발언은 곧 부시 대통령의 복심을 반영한다. 제임스 린지 미 외교협회 부회장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매우 강력하고 신뢰를 받는 국무장관이 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라이스는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보다 훨씬 더 부시 대통령을 대변하는 인물로 인식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라이스는 여전히 북한이나 이란 정권을 교체나 변형의 대상으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개혁과 개방 지원을 통한 체제 변형인지, 아니면 이라크식 체제 교체을 추구하자는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는 청문회에서 북한 등을 지구상에 남아 있는 ‘폭정의 전초기지’라면서, 어떤 사회가 공포사회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옛 소련의 반체제 인사이면서 이스라엘 강경 우익 정치인으로 유명한 나탄 샤란스키의 ‘마을 광장 시험’(town square test)을 제시했다. 누구든 체포, 투옥, 물리적 위해의 공포 없이 마을 광장 한복판으로 걸어들어가 자신의 견해를 표현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는 ‘공포사회’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은 공포사회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그들의 자유를 얻지 못하는 한 편안히 쉴 수 없다”고 선언했다. 폭정의 전초기지 나라들에 대한 체제 변형 혹은 교체의 의지를 오롯이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중동은 자유 확산의 최전선 기지가 될 듯하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침공 당시만 해도 대량살상무기를 이라크 선제공격 명분으로 내걸었으나, 이를 발견하지 못하자 사담 후세인 축출이 “이라크인들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를 갖다줬고,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들었다”고 새로운 논리를 들이댔다. 전문가들은 ‘부시식 민주주의론’은 이라크에서의 엄청난 실수를 덮고, 앞으로 이란에서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면서 정권을 퇴출시킬 수 있는 명분 쌓기의 성격이 강하다고 우려한다. 부시 행정부는 이란과 북한이 핵무기를 이미 개발했거나,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보면서도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대량살상무기 제거뿐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또 다른 대의명분으로 이들 나라를 흔들 수 있게 됐다.
이라크·아프간 진흙탕 상황에서…
이란은 이미 부시 행정부의 사정권 안에 들어온 듯하다. <뉴요커>의 유명한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시모어 허시는 16일치에서 ‘다가오는 전쟁’이라는 음울한 제목으로 미국 정부가 이란 내 30개가 넘는 장소에 대한 공격 정보를 얻기 위해 비밀작전을 수행해오고 있다고 폭로했다. 미국 정부가 이란 내부에서 핵·화학·미사일 무기 목표물 정보를 찾기 위해 최소한 지난해 여름 이후 비밀 정찰작전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부시 대통령은 17일 “이란이 핵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데 실패하면 군사행동에 의지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내비쳤다. 이에 대해 하미드 레자 아세피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19일 미국이 무력 사용 가능성을 환기해 유럽연합(EU)과 자국이 진행 중인 핵협상을 무산시키려 하고 있다며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와 외교적 역량, 충분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이란 공화국은 어떠한 현명치 못한 조치나 계획에도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리처드 하스 전 미 국무부 정책실장은 “북한과 이란 어느 쪽이든 핵 무장을 한다면 그 지역 이웃나라들의 핵무장을 부추길 수 있을 뿐 아니라, 테러리스트들에게 핵물질을 넘길 우려가 있다”면서 “부시가 하루빨리 어디까지는 참을 수 있고, 무엇은 참을 수 없는지 분명히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부시 2기 행정부에서도 ‘난제 중의 난제’는 이란과 북한 핵 문제인 듯하다. 이란은 분명히 알려진 것보다 많은 우라늄을 농축했으며, 핵무기를 개발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게 부시 행정부의 시각이다. 또 북한은 2~10개의 핵무기를 개발해 어딘가에 숨겨두었다는 심증을 굳힌 터다. 그러나 이 문제들은 하나같이 풀기 어려운 숙제라는 점에서 부시 행정부 향후 4년의 험난한 여정이 빤히 내다보인다. 나아가 세계가 또 다른 4년 동안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의 공포에서 헤어나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우울한 전망을 안겨준다.
앞으로 4년간 부시가 이끌 ‘자유의 행진’이 얼마나 순탄하게 흘러갈지는 불투명하다. 부시 행정부가 엄청난 양의 인적·물적 자원을 쏟아붓고 있는 이라크는 여전히 진흙탕 속에 빠져 있다. 국내 안정과 민주적 정부의 수립은 험난한 과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아프가니스탄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중앙정부는 힘이 없고, 반정부 투사들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아편 생산량은 기록적인 수준에 달하는 등 독버섯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리처드 하스 전 국무부 정책실장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부시 2기 행정부는 1기 때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든 과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의 원래 소속원들은 많이 줄었지만, 오사마 빈 라덴을 포함한 여러 지도부가 여전히 건재한 점을 우려했다. 이들은 이전처럼 박스 절단기만을 들고 항공기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핵물질이나 핵무기를 들고 접근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재정 적자와 실업도 발목 잡아
부시 대통령은 군사력, 외교적 주도권 그리고 지구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를 부흥시켜야 하며, 미국인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라는 일반 미국인들의 요구를 제대로 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4년 전 취임시 물려받은 2001 회계연도의 연방정부 재정은 1270억달러의 흑자였다. 그러나 2기 출범을 앞둔 2004 회계연도는 4130억달러의 눈덩이 같은 적자를 안고 있다. 실업률은 2001년 1월 4.2%에서 2004년 1월 5.7%로 뛰었다. 취업 인구는 220만명이나 줄었다. 이런 탓인지 그의 지지도는 50%에 미치지 못해 재선된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낮다. 이라크전 미군 희생자는 1350명에 이른다. 미국인들이 자유와 풍요를 더욱 확산시키겠다는 부시 대통령의 달콤한 말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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