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에 시달리는 20·30대의 실업우울증… 체념과 죄책감이 사회공포증 낳기도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20세기 독일 감독 파스빈더의 영화 제목은 21세기 한국 청년의 현실을 설명해준다. 통계청이 지난해 9월에 발표한 ‘2003년 사망원인 통계 결과’에 따르면, 20~30대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이 많다. 인터넷 취업포털 잡링크가 구직회원 244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구직활동 중 스트레스로 질병을 앓아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61.6%가 ‘그렇다’라고 답했으며, 가장 심하게 앓은 질병으로는 우울증이 52.7%로 단연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청년실업이 청년우울증을 낳고 있다. 지난 11월 청년실업률은 7.3%로 전체 실업률 3.3%의 2배를 웃돌았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대학 졸업자의 절반이 백수라고 밝혔다.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뜻의 ‘이태백’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다.
60%이상 “구직 스트레스로 질병 경험"
하지만 청년들은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부족하다. 김종엽 한신대 교수(사회학)는 “학력의 기대수익률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지만, 학생들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말했다.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해도 장밋빛 미래는 보장되지 않는다. 구조조정 등 불안한 나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60년대부터 IMF 때까지 우리 사회에서 개인에게 기업만큼 신뢰를 주는 조직은 없었다”며 “조직에 대한 헌신이 조직의 배신으로 돌아오는 사회로 바뀌면서 불안은 커지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연말에 개봉한 노동석 감독의 영화 <마이 제너레이션>은 ‘우울한 청춘’의 자화상을 세밀하게 그린 작품이다. <마이 제너레이션>의 주인공 병석은 영화감독이 꿈이다. 그는 낮에는 결혼식 비디오촬영 아르바이트, 저녁에는 갈빗집에서 숯불 지피는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병석의 애인인 재경은 ‘알바 인생’도 못 되는 한심한 청춘이다. 어렵사리 사채업자 사무실에 취업하지만 하루 만에 “우울해 보인다”는 이유로 잘린다. 설상가상으로 병석의 형은 병석의 이름으로 대출을 받고, 재경은 인터넷 다단계 판매 사기를 당해 빚을 진다. 결국 재경은 ‘카드깡’을 한다. 황진미 영화평론가는 <마이 제너레이션>에 대해 “청년실업은 사태가 아니라 세대의 이름이다”라고 요약했다.
이들에게는 조직해야 할 노동조합도, 타도해야 할 국가권력도 없다. 오직 물신인 신용카드만이 그들을 지배하고, 카드만이 그들의 유일한 적이다. 너무나 거대해진 구조는 보이지 않고, 너무나 견고해진 구조에 저항할 힘도 없다. 이들은 저항하는 대신 순응한다. <마이 제너레이션>의 주인공들은 그저 “나쁜 맘 먹지 말고 착하게 살자”고 다짐한다. 그들처럼 많은 젊은이가 ‘내 탓이오’를 되뇌면서 우울증에 빠져든다. ‘자기만의 방’으로 은둔한다.
1990년대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라는 인간형이 등장했다. ‘히키코모리’는 6개월 이상 방에 ‘틀어 박혀’ 나오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를 일컫는다. 한국에서는 ‘방콕족’으로 불린다. 방콕족은 사회는 물론 가족과도 접촉하지 않으면서 하루 종일 인터넷 등에 매달려 지낸다. 일종의 사회공포증이다. 방콕족을 상담한 경험이 있는 오강석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의사는 “이런 환자들은 모든 문제를 나, 우리 가족, 우리 세대의 문제로 파편화한다”며 “좌절감을 열등감으로, 열등감을 죄책감으로 돌리는 악순환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젊은 방콕족과 노숙자 늘어가
집 밖으로 ‘내몰린’ 이들에게는 냉정한 현실이 기다린다. 류정순 빈곤문제연구소 소장은 “노숙인 중 20대가 10%”라고 말했다. 김현수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20대 노숙자를 상담했는데 그에게 노숙 생활을 그만둘 것을 권하자 그가 ‘몇만원짜리 일감을 준다고 해서 내가 다른 사람,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느냐’라고 오히려 반문하더라”고 전했다. 청년의 우울은 절망을 넘어 체념으로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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