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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반김’ 쿠데타 미수사건?

등록 2004-12-23 00:00 수정 2020-05-03 04:23

서정범 회장 검찰조사 받는 사이 해임시키려다 불발… 본격적인 우익 내부다툼의 신호탄인가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최대 규모의 보수우익 단체인 반핵반김국민협의회(이하 반핵반김) 내부에 정체성 논쟁과 세대 대결을 내용으로 하는 일대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서정갑, 원로계를 격분시키다

반핵반김은 12월15일 운영위원회를 열어 서정갑 현 운영위원장(64·육해공군예비역대령연합회 회장)의 재신임 여부를 논의한 끝에 서 위원장에 대한 신임을 확인했다. 서 위원장은 12월18일 에 “최소한의 도덕성과 정당성도 갖추지 못한 세력이 나를 흔들려 했으나 양심이 승리했다”고 밝혔다.

사태의 전말은 9월9일 각계 보수 인사들이 ‘좌파 척결’ 등의 내용으로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국선언’을 발표할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응모 전 내무장관과 이상훈·이종구 전 국방장관 등 과거 독재정권의 주역 시비가 있거나 비리 전력이 있는 인사들이 대거 주도함으로써 선언의 명분이 퇴색한 게 그때의 일이었다.

서 위원장은 내부적으로 문제제기를 시작했다. “때묻은 원로들은 뒤로 물러서서 밀어주고 도덕성과 일할 능력을 갖춘 젊은 세대가 앞장서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서 위원장은 예비역 대령이어서 현역 시절에 쿠데타를 주도하거나 대형 비리를 저지를 만한 지위에 오를 일이 없었다. 보수우익 운동권에서 그는 상대적으로 소장파의 대변자였다. 그러던 끝에 그는 월간 12월호 인터뷰에서 “9·9 비상 시국선언에 나선 1700여명 원로 중 상당수는 3~5~6 공화국 시절에 한 자리씩 하면서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이며, 나이만 들었다고 해서 모두가 원로 대접을 받을 수는 없다. 더러는 집에 가서 쉬는 게 좋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른바 원로계는 격분했다. 안응모 전 내무장관 등이 활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자유시민연대(공동의장 유기남 대한참전연합회장, 상임공동대표 임광규 변호사 등)쪽은 서 위원장의 교체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12월7일 자유시민연대쪽은 반핵반김 의장단 회의를 긴급 소집해 서 위원장을 해임하고, 임광규 변호사를 후임 운영위원장으로 전격 선출했다.

보수우익 운동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자유시민연대쪽은 반핵반김에 나름의 지분을 쥔 재향군인회와 성우회(예비역 장성 모임)쪽에 동조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비역 장성들이 주축인 재향군인회 지도급 인사들 가운데선 평소 “별들이 어떻게 대령의 지휘를 받을 수 있느냐”라는 불만이 팽배했는데, 이런 정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셈이다.

“어떻게 별이 대령의 지휘를 받느냐”

12월7일은 마침 서 위원장이 ‘국가보안법 폐지 저지 집회’(12월4일)를 주도한 혐의로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에서 하루 종일 조사를 받던 날이었다. 서 위원장은 “정권의 탄압 일환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사람을 성원해주기는커녕, 그 틈새를 노려 뒤통수를 때린 부도덕한 사람들”이라고 상대방을 비난했다.

그러나 반핵반김 정관에 따르면, 운영위원장 선출 권한은 의장단 회의가 아니라 운영위원회에 있다고 한다. 운영위원회는 대체로 서 위원장 지지세가 우세하다. 이에 따라 서 위원장은 12월15일 운영위원회를 소집해 자신에 대한 신임을 재확인했다.

서 위원장의 시각에 따르면 ‘쿠데타’ 기도는 일단 저지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내홍의 파장은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즉, 보수우익 운동의 덩치와 사회적 영향력이 성장하면서, 그 주도권을 놓고 우익 진영 내부의 다툼이 본격화된 분위기가 읽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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