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가해자 처벌 절대 불가… ‘이철우 간첩 파동’으로 떠오른 고문 피해자들의 악몽과 상처 </font>
▣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이철우 의원 간첩 파동’을 계기로 과거 간첩 조작 사건의 고문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명예회복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피해자들은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반면, 가해자들은 아무런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고문 피해자들이 유일하게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재심 제도도 사법부의 ‘조직 보호 본능’에 막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명예회복’ 위한 재심제도 유명무실
지난 12월16일 국회 도서관 지하 대강당. 공안기관의 고문으로 억울하게 ‘간첩’이 돼버린 고문 피해자들의 증언에 청중들은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특히 ‘재일동포 간첩사건’의 피해자 신귀영(68)씨의 증언은 다른 고문 피해자들까지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신씨는 지난 1980년 총련 간부의 지령을 받고 간첩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구속돼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일본에서 태어난 신씨는 1945년 가족과 함께 귀국해 원양어선 선원 생활을 하다 80년 부산시경 대공분실에 연행됐다. 수사관들이 신씨에게 씌운 혐의는 총련에서 활동하는 친척을 만나 입북을 권유받고, 부산에 주둔한 군부대 현황 등 군사기밀을 건넸다는 것이다. 신씨는 혐의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지만, 수사관들은 발톱빼기 등 전신구타와 전기고문, 물고문을 사용해 신씨의 자백을 받아냈다. 신씨는 당시의 고문 후유증으로 지금도 오른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신씨는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형기를 마치고 난 뒤 재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재심을 꺼려 하는 사법부는 번번이 이를 기각했다. 신씨는 1994년 11월 수사관의 고문·조작 증거를 확보해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은 이듬해 고법까지 받아들여졌으나 같은 해 11월 대법원은 “새로 제출된 증거는 무죄를 인정할 만한 명백한 증거로 볼 수 없다”며 기각 취지로 고법에 되돌려보냈다. 재심을 받아들이는 것에 부담을 느낀 대법원이 재심 요건을 까다롭게 해석한 것이다. 신씨는 증거를 보강해 99년 다시 재심을 청구했다. 이번에는 좀더 명백한 증거를 확보했다. 문재인 변호사(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등으로 구성된 신씨의 변호인들은 신씨가 군부대 탄약고 사진을 찍기 위해 이용했다는 버스노선이 당시에는 없었고, 총련계 친척에게 부산 항만지도를 건넨 장소로 지목된 서점이 사건 발생 3년 뒤에 생겼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신씨의 군부대 사진촬영을 목격했다”며 공소사실을 지탱해준 증인들한테서 “고문으로 허위 증언을 했다”는 증언을 받아내 재판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6월 또다시 신씨의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신씨는 “간첩 조작 사건은 공안기관 혼자의 힘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다”라며 “공안기관이 고문을 동원해 작성한 조서를 보고 유죄 판결을 내리고, 나중에 재심 기회마저 박탈해버리는 사법부의 공모가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신씨처럼 명예회복을 위해 재심을 청구했으나 좌절을 맛본 피해자들은 많다. 지난 1974년 인혁당 사건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도예종씨 등 8명의 유족들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을 근거로 지난 2002년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재심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간첩 조작 사건 중에서 재심이 받아들여진 경우는 함주명(73)씨가 유일하다. 함씨는 ‘고문기술자’ 이근안씨의 고문 피해자다. 그는 지난 2000년 “고문 수사로 인한 허위 자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고, 3년이 지난 뒤에야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피해자 보상받는 경우 드물어
그러나 함씨를 고문한 이근안씨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이씨는 납북 어부 김성학씨에게 고문을 한 혐의가 인정돼 지난 2000년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이 확정됐는데, 고문 가해자 중 처벌을 받은 것은 이씨가 거의 유일하다. 지난 1989년 대형 걸개그림을 찍은 슬라이드를 평양축전에 보낸 혐의로 구속돼 대법원에서 간첩죄 부분은 무죄 판결을 받은 화가 홍성담(49)씨는 자신을 고문한 안기부 수사관 2명과 정형근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국장을 검찰에 고소했다. 홍씨는 고문 수사관 2명의 이름을 확인하지 못해 대신 몽타주를 그려 검찰에 제출했다. 하지만 검찰은 3년 동안 사건 처리를 미루다 “고문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송소연 민가협 총무는 “수사관들은 피해자 앞에서는 서로 이름을 부르지 않기 때문에 이름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며 “화가인 홍씨가 직접 그린 몽타주여서 실물과 똑같았기 때문에 검찰이 안기부 직원들의 사진과 대조했다면 범인을 색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고문 가해자들의 처벌이 요원한 것과 마찬가지로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는 경우도 드물다. 납북 어부 김성학씨는 이근안씨한테서 고문을 받은 사실이 재판에서 드러났음에도 민사상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보상을 받지 못했다. 김씨는 지난 2000년 6월 국가를 상대로 1억5천만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냈으나 법원은 “3년 내에 손배청구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인권단체들은 고문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고문 피해자에 대한 구제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수사기관의 가혹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송 총무는 “안기부 등 공안기관의 가혹행위는 문민정부 때인 90년대 중반은 물론 DJ 정권 때인 2000년에도 이어졌다”며 “군사독재 정권 때와 정도만 차이가 있을 뿐 피해자들에게 인격적 모멸감을 준다는 점에서 그 폐해는 고문과 똑같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고문을 없애기 위해서는 고문 가해자에 대한 공소시효를 없애는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지적한다. 대한변호사협회 박연철 인권위원(변호사)은 “고문 등 반인권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없애는 게 국제법의 취지인데, 우리는 이를 따르지 않고 있다”며 “수사기관의 고문 시비를 없애기 위해서는 형법상 공소시효는 물론 민사상 소멸시효도 없애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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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로운 황인오</font>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황씨는 전향서를 쓰는 바람에 감옥에서도 함께 구속된 동료들과 사이가 안 좋았다”며 “그가 검찰 수사에 잘 협조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동료도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황씨는 출소 이후 옛 동료들에게 직접적 피해를 주는 ‘이적행위’는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공안기관으로부터 ‘이중 프락치’라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황씨의 동료들은 그의 이번 폭로도 호의적으로 보지 않고 있다. 정 의원이 그에게 입당을 제의할 정도였다면 황씨의 현재 ‘상태’를 가늠해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황씨는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들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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