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의 성명 사건 파장…“얼마나 문제가 많기에 내각 안에서도 다투나”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김근태 쇼크’는 무엇을 남겼을까? 사건은 11월19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의 대국민 성명서 발표→당·정·청 대책회의→노무현 대통령의 유감 표시→김 장관의 “심려를 끼쳐 죄송”(11월23일)→노 대통령·김 장관 회동(11월25일)을 거쳐 일단 봉합됐다. 그러나 사건의 파장은 여전히 길게 드리워져 있는 것 같다.
“국민적 불신을 대변”
한국사회여론연구소(소장 김헌태 www.ksoi.org)는 사건이 한창 진행 중이던 11월23일 이 이슈를 포함해 국민 여론조사를 했다. 그 결과 김 장관의 행동은 ‘복지부 장관으로서 소신 있는 발언으로 잘한 일’ 55.2%, ‘정부 정책의 혼선을 초래한 것으로 잘못’ 28.9%로 조사됐다.
그러나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과 불신은 더욱 증폭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소는 정부·여당이 ‘김근태 쇼크’를 계기로 국민연금을 민간인 중심의 독립기구에서 맡도록 한 개선안에 대한 국민 여론도 물었다. 그 결과 이 방안 때문에 국민연금이 안정될 것이냐는 질문에 ‘과거와 별 차이 없을 것’ 42.9%, ‘과거에 비해 더 약화될 것’ 33.8%, ‘과거에 비해 더 강화될 것’ 16.8%로 연금의 안정성이 흔들릴 것이라는 반응이 훨씬 우세했다.
김 장관은 정치인인 동시에 국민연금 주무 장관이다. 따라서 자신의 정치적 인기와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함께 올리는 것이 최상이다. 그러나 김 장관의 인기는 올라간 반면 그가 책임지고 관리하는 국민연금의 신뢰는 오히려 떨어지는 기이한 결과가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와 열린우리당의 지지율도 제자리걸음 또는 추가 하락을 나타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이 연구소의 한귀영 연구실장은 “김 장관의 발언은 국민연금을 냈다가 원금마저 털어먹는 것 아니냐는 국민적 불신을 대변 또는 편승한 성격이 있다”며 “따라서 김 장관의 인기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한 실장은 이어 “그러나 지금 상황에선 국민연금과 관련해 어떤 이슈를 제기해도 연금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보다는 불안을 강화하는 효과를 낳게 된다”며 “김 장관이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 불신 해소 측면에선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진 셈”이라고 말했다. 논쟁의 경과는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정부는 최근 국민연금이 지금처럼 증권시장에는 소액만 참여하고 주로 국·공채를 쓸어담는 방식으로 수익률을 올릴 수 없다는 점을 고민해왔다. 초저금리 속에서 국·공채 이자율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올해 적립금은 149조원이며 갈수록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내수 활성화 필요성과 포스코, 국민은행, KT 등 ‘토종 기업’의 경영권을 외국인으로부터 방어할 필요성이 함께 제기됐다. 그러나 정부 재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당연한 수순으로 국민연금의 투자처 확대 방안이 떠오른 것이다.
순수성 불구 ‘본격 대안’아쉬움
정부는 관계부처 회의를 통해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이 한국판 뉴딜에 참여하도록 하는 방안, 그리고 증권시장 참여도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노 대통령은 연기금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함께 강조하면서 ‘강력한 국민자본 역할론’을 제기했다. 여당 차원에선 연기금의 투자 범위를 확대하도록 정기국회에서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김 장관도 최초의 성명서, 그 이후 각종 인터뷰에서 “일반론에 동의한다”고 거듭 밝혀왔다. 즉, △국민연금의 한국판 뉴딜 참여 △국민연금의 증시투자 확대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이라는 연기금 정책의 3대 본질적 쟁점에 이견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김 장관은 ‘왜 재정경제부가 주무부처도 아니면서 국민연금 활용을 놓고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느냐’라는 점을 주로 제기했다. 김 장관은 11월24일 문화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민들 속에서 자신들의 적금통장인 국민연금을 정부가, 특히 경제부처가 마음대로 갖다 쓰려는 것 아니냐, 그러면 바닥이 고갈돼서 자신들의 노후가 불안해지는 것 아니냐, 이런 불만과 불안이 급격하게 제고됐다”며 “그러나 그렇지 않다. (경제부처가 마음대로 손대지 못하도록 할 터이니) 안심해도 된다. 이런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또 문제점의 근거로 ‘뉘앙스’와 ‘만연한 불안감’ 등을 주로 제시했다. “마치 경제부처가 자신이 결정하면 국민연금기금을 언제든지 갖다 쓸 수 있다는 뉘앙스가 국민에게 비추고 있거든요.”(같은 문화방송 인터뷰) 그러다 보니 재정경제부는 “우리가 언제 마음대로 연금을 갖다 썼냐. 근거를 대봐라. 우리는 연금이 새로운 투자처를 찾기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해준 것뿐”이라며 반발했다.
그 결과 국민들은 ‘국민연금에 얼마나 문제가 많기에 심지어 내각 안에서도 다투나’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국민들이 세세한 정책 내용을 알기 어려운데다, 수면 위로 떠오른 화두가 ‘불안감 증폭성 소재’들이었던 탓이다. 김 장관의 행동엔 나름의 정책적 순수성(김 장관 “나는 정치가 아닌 정책을 제기한 것”)이 담겼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김 장관의 순수한 의도와 다른 쪽으로 사태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열린우리당의 일부 관계자들은 “문제를 제기하려면 차라리 경제부처보다는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에 전적으로 맡겨달라. 그러면 국민연금의 수익성을 몇배 더 올릴 자신이 있다”면서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경제부처냐 아니면 보건복지부냐라는 ‘밥그릇 싸움’보다는 연금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함께 높이는 구체적인 정책대안 논쟁으로 가는 게 좋았다는 이야기다. 이 경우 국무위원이 내부 회의에서 말하지 않고 왜 성명서를 내느냐는 따위의 비판은 시시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김 장관이 국민연금을 책임지고 운영해 수익성을 크게 높임으로써 국민들에게 보험료를 더 내지 않더라도 충분한 연금을 타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만 한다면 차기 대권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의 한 중견 공무원도 “경제부처가 워낙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사회 부처를 무시해왔기 때문에 사회 부처쪽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불가피했다”며 “다만 보건복지부가 수익성 제고 대안을 선도적으로 마련해 논쟁을 주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여당내 ‘유시민 개정안’ 공감대
그러나 김 장관이 선뜻 그렇게 하기 어려운 사정도 있었던 것 같다. 국민연금과 관련해선 수익성보다는 안정성을 중시해온 전통적 담론으로부터 그가 자유롭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 “그냥 두면 2047년에 연금이 고갈된다”며 ‘더 내고 덜 받아가라’는 내용의 ‘안정성 위주’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보건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김 장관의 이번 문제제기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를 앞두고 주무 장관으로서 ‘연금을 단단히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명분을 축적하려는 측면도 있었다”며 “그래야 국민을 상대로 ‘더 내고 덜 받아가기’의 불가피성을 호소할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에선 보건복지부 개정안이 지지를 잃고 있으며 대신 ‘유시민 개정안’에 대한 공감대가 넓은 편이다. 유시민 안은 ‘더 내는 것은 유예하면서 연금을 활용해 수익성을 올릴 시간을 벌자’는 게 뼈대이다. 즉, 김 장관이 국민연금법 개정안 처리에 이르러 본격적인 ‘정책능력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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