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강경투쟁 나선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 “비정규직 문제 돕는 정규직의 순수한 희생을 아는가"
▣ 글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민주노총 이수호(53) 위원장은 올 초 취임 때 “총파업 지상주의를 지양하겠다”고 밝혔다. 강경투쟁 위주의 노동운동이 여론의 외면을 받았던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공약이었다. 실제로 이수호 체제의 민주노총은 올 상반기 동안 투쟁보다는 대화에 무게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 박일수씨 분신 사건과 주5일제 근무 등 노동계의 굵직한 현안 때마다 내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총파업 카드를 꺼내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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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민주노총이 11월26일 총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위원장 체제 출범 뒤 처음 시도하는 ‘강경투쟁’인 셈이다. 더욱이 이번 총파업은 비정규직 법안 철회 등 정치적 성격이 강한 조건을 내걸고 하는 것이라 여느 때보다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총파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 위원장을 지난 11월18일 만났다.
-총파업을 선언했는데, 여론 등 외부 상황은 최악이다. 경제도 어려운데 꼭 총파업을 해야 하느냐는 지적이 있다.
=요새 유행어처럼 돼버린 말이 ‘가뜩이나 경제도 어려운데…’이다. 그런데 경제가 어려워진 이유가 뭔가. 그것은 이 정권이 잘못된 경제정책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은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는 정책이다. 자본가와 외국계 자본에 휘둘려 이들에게 유리한 정책만 쓰고 있다. 심지어 내년에는 빈곤층이 1천만을 넘어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나라는 부자인데 국민들은 가난한 상황이 되고 있다. 이런 결과가 노동자 탓인가. 이번 총파업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꾸자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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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파업이 비정규직 법안 철회 등 정치적 성격이 강해 불법 파업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런 파업을 이른바 ‘산업정치 파업’이라 부른다. 국제적 관례를 보면 국가의 정책일지라도 노동자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면 파업 요건이 된다.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법에는 이런 파업을 규정한 법이 없다. 법이 없는데 불법이다 아니다 말할 수 있나. 불법은 정부와 사용자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위원장 취임 때 ‘총파업 지상주의를 지양하겠다’고 했는데, 노선이 바뀐 것인가.
=노선 변화가 아니다. 강경투쟁은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총파업에 나서게 된 계기는 이렇다. 올 상반기 때 예년 같으면 총파업을 할 사안이 많았지만, 대화로 해결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정부도 상당한 노력을 했다고 본다. 그러나 LG칼텍스노조와 지하철노조 파업 때 정부가 직권중재를 꺼내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노동자의 정당한 요구에 직권중재라는 ‘악습’으로 맞선 것이다. 이때부터 노무현 정권의 본성이 드러났다. 비정규직 관련 법안은 그 절정이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법안이라고 지적했지만, 정부는 밀어붙이고 있다. 결국 최후의 무기인 단체행동, 즉 총파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총파업을 하는 이유가 참여정부의 노동정책이 변했기 때문인가.
=처음에는 솔직히 기대도 했었다. 충실히 대화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정부가 민주노총의 역사성과 힘과 권위를 인정한다면 진지하게 대화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진지한 대화는커녕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을 왜곡하고 비하하는 발언을 해댔다. 이는 노 정권에 대한 노동자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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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처음에는 참여정부의 노동정책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 아닌가.
=그런 것은 아니다. 노 정권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철저히 무장돼 있는 정권이다. DJ 때보다 더하다. 우리는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 본질이 그동안 숨겨져 있다가 비정규직 문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노동계 내부에서 노 정권 초기부터 왜 강하게 나가지 못했느냐는 지적이 있는데, 만약 그때 들고 일어났다면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전공노 파업의 진실, 왜곡됐다
-위원장 취임 때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규직의 임금 희생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직도 비정규직들은 정규직의 희생이 없다고 본다.
=지금은 정규직의 임금을 희생할 수 없는 구조다. 일부 금융 사업장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조건으로 내걸고 임금 인상을 자제하는 단협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임금을 양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LG칼텍스를 보면 외국 자본이 들어와서 그동안 빼간 돈이 수조원대다. 정규직들은 숙련된 전문직 노동자이기 때문에 연봉을 비교적 많이 받는다. 그러나 이들의 임금을 몇푼 깎는다고 비정규직의 처우가 개선되지는 않는다.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또 외국 자본이 빼가는 돈을 고려하면 정규직의 임금 희생은 별 의미가 없다.
오히려 이번 총파업이야말로 정규직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하는 총파업 아닌가. 이 법안은 정규직의 처우와 큰 관련이 없다. 반면 파업을 하면 무노동 무임금이 적용되고, 노조 간부들은 구속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조합원 상당수가 파업에 참가하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순수한 희생이다.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 파업 실패로 민주노총의 총파업 동력이 약화됐다는 분석도 있다.
=전공노 파업은 원래 계획된 것만큼 안 됐으니까 실패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장기적으로 보면 실패라 말할 수 없다. 전교조를 봐라. 처음에 전교조가 깨졌을 때 다 끝났다고 했지만 결국은 일어서지 않았나. 전공노도 파업 자체로만 보면 미흡한 측면이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전교조처럼 승리할 것이다. 전공노 싸움에서 민주노총이 무리수를 뒀다는 비판이 일부 있는데, 그것에 동의할 수 없다. 전공노 파업은 노동 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명분으로 볼 때 민주노총이 반드시 참여해야 했다. 전공노는 내부적으로 공직사회 개혁에 대한 깊은 고민을 갖고 있었다. ‘철밥통’과는 전혀 무관한 싸움이었다. 그런데 언론이 외면했다. 그동안 하위직 공무원들은 고위직을 정점으로 한 비리 사슬에 묶여 있었는데, 전공노는 이 사슬을 끊고자 했다. 여론이 이를 제대로 알지 못했을 뿐이다. 생각해보라. 그들은 정년, 임금 다 보장되는 집단이다. 그런 그들이 이번 파업에 참가해서 왜 자신의 철밥통을 걷어찼을까. 그 순수성을 인정해야 한다. 전교조 사태에서 역사의 교훈을 얻지 못한 노 정권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고교 동창인 김대환 노동부 장관이 11월17일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비난했다.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했더라. 노동운동이 민주화운동에 편승했다고 했는데, 이는 민주화운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나온 발언이다. 우리의 민주화운동은 각계각층 민중들의 땀과 피로 이뤄진 것이다. 어느 집단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넥타이 부대만도 아니고, 학생운동만도 아니다. 김 장관처럼 학자들이 무슨 이론 만들어서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농민과 노동자, 서민, 학생, 지식인 등 모두의 땀으로 이뤄진 것이다. 또 현 정부가 우리 노동계에 빚진 게 없다고 했는데, 대통령이 탄핵당했을 때 노동계가 돌아섰다면 끝장났을 것이다. 당시 노동계 내부에서 노 정권의 반노동자 성격을 들어 탄핵에 동조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대의에 따라 국민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노 정권은 노사모만의 힘으로 지킬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웃음). 정부는 설사 노동계가 자신들을 비판하더라도 달래서 끌고 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어쨌든 정부가 강자 아닌가. 더구나 참여정부라면서. 지금 정부는 노동계는 외면하고 자본가 집단에 대안 없이 끌려다니고 있는 것 아닌가.
“법안 수정하겠다" 여당이 말해놓곤
우리는 정부가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철회하고 민주노총이 제안한 비정규직 권리 보호 법안 등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총파업을 강행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대화를 해보자고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대화에 나서야 한다. 우리가 이런 요구를 하는 이유가 있다. 지난번 비정규직 법안 정부안이 나왔을 때 당정 협의를 한다고 해서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과 함께 국회로 달려갔다. 이부영 의장 등에게 이 법안이 많은 문제가 있어서 재고하라고 요구했고, 그들은 수정하겠다고 했다. 그때 조합원들은 농성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 의장의 말을 믿고, 결과적으로 그 말을 믿은 우리가 바보였지만, 철수했다. 그런데 기습적으로 당정 협의를 해서 정부안대로 결정된 거다. 이러니 우리가 누구를 신뢰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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