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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새로운 리더십 만드나

등록 2004-11-25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최근 초상화 철거와 호칭 간소화 놓고 논란…이상징후라기 보단 국제사회의 여론 의식한 것 </font>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 철거와 호칭 간소화 등을 놓고 ‘북한 이상징후설’이 또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최근 평양에서 돌아온 유럽연합(EU) 대표단 관계자는 평양 인민문화궁전, 만수대의사당 등 공공 건물의 김 위원장 초상화가 떼어진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북한 관영 매체들도 11월17일 북한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항상 붙여온 ‘경애하는 지도자’라는 수식어를 생략했다고 일본의 가 보도했다. 북한 방송과 언론들은 김 위원장을 단순히 ‘조선노동당 총비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만 불렀다는 것이다. 이 또한 사실이라고 정부 관계자는 확인했다.

북한 “근거없는 날조다”

그러나 아직 초상화 철거나 호칭 간소화가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조처인지, 아니면 지속성을 갖는 조처인지는 알 수 없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이나 서방 언론들은 구구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어떤 전문가는 북한이 김정일에 대한 개인숭배 관행을 포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또 국내에서 신격화 대상인 김정일이 외부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기이한 통치자로 비쳐지자 국제사회에 더 진지한 정치 지도자로 비쳐지려 노력하고 있다고 는 썼다. 이처럼 바깥 사람들이 북한 내부의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북한이 핵 문제 등으로 고립이 심화되면서 체제 내구력이 크게 떨어졌다고 인식한 데 따른 것이다. 서방의 적잖은 전문가들이 북한을 당장이라도 식량 지원을 중단하고 외부에서 툭 치면 곧 무너질 아슬아슬한 나라로 바라본다.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북한 권력의 내부를 좀처럼 들여다볼 수 없는 견고한 폐쇄성도 각종 의혹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일단 북한 외무성 관리는 11월19일 김 위원장의 초상화가 관공서와 학교에서 철거되기 시작했다는 일부 외신 보도는 ‘근거 없는 날조’라고 일축했다. 리경선 외무성 보도국 부국장은 “그런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한 주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전복하려는 미국과 그 부속국들의 도발”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그것은 마치 하늘의 태양을 없애려는 것과 같은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일”이라며 “지도자에 대한 존경은 인민의 삶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결코 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사실 한 나라의 지도자 사진이나 초상화가 관공서에 걸려 있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선진국·후진국 가릴 것 없이 대통령 사진이나 초상화가 관공서에 걸려 있는 나라는 많다. 티베트 사람들은 상점, 사무실, 가정 등에 반드시 달라이 라마 승왕의 사진이나 초상화를 걸어놓는다. 나아가 이들 모두가 달라이 라마 승왕의 사진을 품에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달라이 라마의 이름을 거명하는 것은 불경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를 중심으로 뭉쳐진, 그것도 무한한 존경심과 귀의심으로 군대보다 더 단단한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서방인들의 눈에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는 ‘과도한 우상 숭배’로 비쳐질 뿐이다.

파격은 즐기되 ‘오버’하지 않는다

북한 외무성 관리의 해명은 원칙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바로 다음날인 20일 재일 조총련 기관지인 는 평양발 보도에서 인민문화궁전 관계자의 말을 빌려 “북한의 대외 행사장에서는 김 위원장의 초상화가 내려진 것이 사실이나 일반 가정과 공공기관에는 여전히 김일성 주석 초상화와 함께 걸려 있다”고 전했다. 오늘날 북한 사회는 공식 선언이나 발표와는 거리가 먼 변화들이 끊임없이 분출되고 있다. 평양에 몇달간 체류하고 돌아온 한 동포 기업인은 “북한도 중국과 비슷하게 두개의 체제가 공존하고 있음이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봉건의 잔재가 그대로 있으면서도 실제 생활에서는 자본주의적 사고와 관행들이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적어도 평양에서는 실리 우선주의 분위기가 널리 퍼지면서 주민들이 우상 숭배보다 돈벌이 등에 더 큰 관심을 쏟고 있다. 과거 북쪽 관계자들이 외부 방문객들에게 엄격히 요구했던 김일성 주석 동상 방문과 그 앞에서의 존경 표시 등은 이제 희망자에 한해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하는 풍토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셈이다.

충성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즉, 겉보기에만 번지르르한 충성을 보이는 이들보다는 외화를 많이 벌어 갖다 바치는 사람들이 주요 직책에 발탁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로 점차 바뀌어지고 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의 파격적 리더십이나 이에 따른 북한 내부의 급격한 변화를 감안하면 초상화 철거나 호칭 간소화 조처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김 위원장은 닫힌 국가의 통치자이긴 하지만 바깥 세계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갖추고 있으면서 국내외 정세 판단이나 정치 감각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자신의 초상화나 그의 이름 앞에 따라붙는 긴 호칭이 그의 이미지를 더 실추시키고, 오늘날의 여러 난관을 돌파하는 데 거추장스럽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베이징발로 김정일 초상화 철거 소식을 처음 전했던 러시아의 평양 특파원이 전한 “북한 지도자 우상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부정적) 여론을 불식하기 위한 조처”라는 해석은 가장 설득력을 갖는다.

하지만 그의 스타일은 파격은 즐기되, 절대 ‘오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초상화를 떼더라도 점진적으로 국내외 반응을 살펴가며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 또 자신의 살아 있는 권위는 조금 낮출 수 있을지라도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권위 손상을 초래할 어떤 조치를 취하기는 어렵다. 이는 김정일 체제에서 스스로 자신의 정통성 기반을 흔드는 것이 되어 더 심각한 체제 위기에 몰리게 된다. 최근 인민문화궁전 등 공공건물에서 김 위원장 자신의 초상화는 없애더라도 김일성 전 주석의 초상화를 떼지 못하는 이유다.

김일성 개인 숭배도 김 위원장이 주도

전문가들은 김일성 전 주석의 개인 숭배도 김 위원장이 주도했으며, 이는 자신의 권력 세습을 위한 전략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해인 1964년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지도원으로 일찌감치 ‘정치’를 시작했다. 66년에는 당 선전선동부 지도원으로 영화사업을 지도했고, 그 뒤 69년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70년 선전선동부 문화예술 부문 담당 부부장을 거쳐 72년 당 선전선동부 부장에 올랐다. 마침내 73년 김 위원장은 조직과 선전선동을 담당하는 당 중앙위원회 비서 및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 후보위원으로 뽑혔고, 74년 2월 만 32살의 나이에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돼 당 수뇌부에 올랐다. 이때부터 그는 ‘당중앙’으로 불리면서 명실상부한 후계자의 구실을 해왔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김 위원장은 오래전부터 절묘한 조직관리 능력과 선전선동술을 익히고 발휘하면서 북한 체제를 30년 넘게 실질적으로 이끌어왔다는 점이다. 즉, 김 위원장이 최근 스스로 탈권위 행보를 보이고 있다면 이는 시대의 흐름과 현재 처한 상황에 맞게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하려는 제스처이자 그의 건재함과 역동성을 보여주는 것이지, 서방 보수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권력 이상징후만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다만 북한이 이전처럼 탄탄한 내부 결속력을 바탕으로 미국에 ‘벼랑 끝 전술’을 펴기도 어려울 만큼 내부적으로 다른 목소리가 존재하고, 또 외부 지원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이 시도하는 변화가 다소 불안정하게 비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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