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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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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맛, 세계가 열광한다

등록 2004-11-18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적도 부근 국가 등 곳곳에 매운맛 요리 물결… 신세대 요리사, 강한 맛 선호 속 세계 고추 소비량 늘어 </font>

▣ 강지영/ 음식평론가·파티 코디네이터

아무리 더운 날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먹게 되는 음식,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더 끌리는 음식이 바로 매운 음식이다. 나라 안팎의 저조한 경기 탓인지 화끈한 음식으로 불을 질러보자는 다짐이 생겼는지 화끈한 성격의 한국인들이라지만 올해엔 유난히 매운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인기이며, 식당 이름이나 메뉴에도 ‘불’이란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타이의 1등 향신료, 고추와 갈랑가

하지만 이런 흐름은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아니다. 이웃 나라인 일본을 비롯해 아시아와 서양에서도 매운 음식들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음식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며 정통적인 조리 방식에 맞춰 요리를 취했던 예전과 달리 강한 향신료와 매운 양념을 적극적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빠른 정보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요즘은 웬만한 충격에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며 살다 보니 자연히 강하고 자극적인 음식에 점점 더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고통과 더불어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은 당연 매운맛이 주가 되는 양념을 넣어 만든 것들인데, 높은 기온 탓에 음식이 금세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더운 나라에선 강하고 매운 향신료의 배합을 이용하기도 한다. 가령 ‘요리의 나라’ 타이에선 고추와 갈랑가라는 재료가 향신료 1·2위를 다투고 있다. 레몬과 생강 사이 아릿하고도 향긋한 향을 동시에 지닌 갈랑가는 생강 편처럼 썰어서 톰얌쿵 같은 탕이나 카레소스를 만들 때 꼭 들어가는 재료다. 타이 고추는 달착지근한 한국식의 매운맛이 아니라 두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매운맛 그 자체를 느끼게 하는데, 한국 고추처럼 오랫동안 입 속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입맛을 확 잡아끈 뒤엔 뒤끝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서양인들이 타이 요리를 좋아하는 까닭은 이처럼 강한 맛과 향을 즐기며 기분을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이·인도·멕시코 등 적도 부근의 나라들 외에도 이렇게 눈물 쏙 빠지도록 매운 음식 명단엔 중국의 쓰촨요리, 베트남 후예 지방의 요리와 함께 한국 요리도 들어간다.

정통적으로 매운 음식들이 발달한 나라들을 제외하고 뒤늦게 매운 음식 열풍에 동참한 나라들은 중·장년층보다 젊은 세대들이 주축이 되어 매운 음식을 찾는다. 신세대 요리사들도 강한 향신료를 사용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으며 타이, 인도, 쓰촨식 요리를 내는 식당들이 점차 늘어가는 추세다. 심지어는 자신들의 전통적인 요리에 맵고 강한 맛을 첨가해 강렬함을 심어주면서 퓨전마케팅을 벌이는 식당들도 많아지고 있다.

매운맛이 인기를 끌면서 고추 소비량도 세계적으로 성장 추세에 있다. 매운맛을 즐기는 히스패닉들이 늘어나면서 미국에서 최대 고추 생산지인 뉴멕시코주는 2002년 9만6400t을 생산했는데, 이는 2001년과 비교해 19%나 생산량이 늘어난 것이다. 현재 세계에선 최대 750만 에이커 이상에 고추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고추가 전세계적으로 퍼질 수 있었던 것은 포르투갈의 덕택이다. 중남미가 원산지인 고추를 세계 각국으로 전파시킨 장본인인데, 식민 활동을 하면서 포르투갈은 물론 스페인과 헝가리·일본에도 고추의 맛을 알렸다. 포르투갈 무역상들의 공헌으로 파프리카를 이용한 헝가리의 굴라쉬, 스페인의 초리초 소시지,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간 우리의 자랑스런 발효식품인 김치가 존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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