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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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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과학도시, 인공섬의 도전

등록 2004-10-22 00:00 수정 2020-05-03 04:23

[기획연재 | 과학과 도시]

세계 최고의 건설기술력이 빚어낸 고베의 포트아일랜드는 대지진의 아픔을 어떻게 이겼는가



창간 10주년 기념 기획연재 ‘과학과 도시’의 세 번째 탐방지는 일본 고베시다. 간토(관동) 지방에 요코하마가 있다면 간사이(관서) 지방엔 고베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간사이 지역의 수문도시 고베는 도쿄와 근접한 요코하마에 자주 견주어져왔다. 1868년 일본이 처음으로 서구에 문을 열면서 고베는 최초의 국제 항구도시 가운데 하나로 성장해왔다. 일찌감치 바다에 운명을 걸었던 탓일까, 고베시는 1981년 일본 처음으로 사람이 거주하는 인공섬을 앞바다에 만들었다. 고베시를 찾아 세계 최고의 건설기술력이 빚어낸 인공섬을 살펴보고 그곳에서 꽃피고 있는 과학문화를 돌아봤다. 편집자


▣ 고베=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몇 가지 점에서 고베는 인천과 닮았다. 인천이 서울 및 수도권의 관문 역할을 하는 것처럼, 고베 또한 오사카·교토·나라 등이 포진한 간사이 지방으로 들어가는 항구도시다. 인천이 1883년 개항 이전까지 제물포라는 조그만 어촌마을에 불과했듯, 고베도 개항 이전까지는 주민 대부분이 고기를 잡아 생계를 잇는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역시 인천과 마찬가지로, 개항은 조용했던 서일본의 마을을 금세 서양 문물이 밀려드는 문명교류의 최전선으로 만들었다. 19세기 말 2만여명가량 되던 고베 인구는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 이미 100만명으로 불어났다. 로코산이 고베시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거센 바람을 막아주며 바다 수심도 깊은 편이어서 항만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베시의 지형은 불어난 인구와 물동량을 충당하기에 부족함이 있었다. 앞은 바다, 뒤로는 로코산이 있어 2km에 이르는 해안을 끼고 도심이 성장하기에 지리적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연안에 인구가 밀집했으나 주변의 규슈·시코쿠로부터 인구 압박이 심해지자 점차 로코산 뒤편까지 주택가가 파고들었다. 항만시설도 턱없이 부족해졌다. 2차 세계대전의 패전 이후 잠시 뚝 떨어졌던 물류량은 이후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렸다. 고베항은 1980년대에 이르러 세계 4위의 항구가 됐다. 현재 고베시는 인구 150만으로 일본에서 6번째로 큰 도시다. 주택과 항만 부족로 골머리를 앓던 고베시는 1966년 인공섬 건설에 착수한다. 바다를 메워 포트아일랜드와 로코아일랜드를 만든 것이다.

14.6km의 지하 컨베이어벨트

10월8일 제22호 태풍 망온이 몰고온 비바람을 맞으며 포트아일랜드를 방문했다. 고베시 기획조정국 조사실의 나카무라 도시히코 주사는 “땅이 부족했기에 새로운 땅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포트아일랜드 건설을 특징짓는 유명한 구호는 ‘산이 바다로 간다’는 것이었다. 고베시는 시 서쪽 로코산 자락에 세이신뉴타운(인구 10만명)과 스마뉴타운(16만명)을 건설하면서 여기에서 나온 흙으로 인공섬을 메우기로 했다. 이를 위해 항구까지 흙을 실어나르는 길이 14.6km의 지하 컨베이어벨트가 만들어졌다. 나카무라 주사는 “수심 12m의 바다에 436ha(1차 포트아일랜드 면적)를 메우기 위한 흙을 트럭으로 날랐다면 도로는 연일 과적 트럭 행렬로 미어터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교통체증을 막기 위해 지하에 또 하나의 길을 만든 것이다.

이처럼 지하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날라진 흙은 항구에서 저폐식 바지선에 담긴다. 샌드 드레인이라는 예인선이 이를 끌고 항구에서 10km 떨어진 매립지로 향한다. 저폐식 바지선은 배 밑바닥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장치가 달려 있어 흙을 원하는 곳에 쏟을 수 있다. 고베시는 이 시스템을 이용해 1981년 포트아일랜드 1차 공사를 마무리지은 뒤 94년엔 포트아일랜드 2기 확장공사(390ha)도 끝냈다. 60년대에 만들어진 지하 컨베이어벨트는 아직도 움직이고 있다. 포트아일랜드 앞바다에선 고베국제공항이 들어설 또 하나의 인공섬이 2007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2기 확장공사엔 5천억엔을 쏟아부었고 공항 매립 비용엔 또다시 3100억엔이 투입된다.

포트아일랜드의 꿈은 KIMEC(Kobe International Multimedia Entertainment City)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상하이·톈진항과의 경쟁에 밀리지 않고 안전하고 효율적인 국제교통의 요지로 가꿔나가겠다는 의지다. 포트아일랜드 남쪽 맨 끝에 들어선 KIMEC센터 10층 전망대에 오르면 바다를 땅으로 만드는 일본인들의 집념과 자신감을 읽을 수 있다. 넓게 트인 유리창 너머 저멀리로 납작하게 모습을 드러낸 공항터가 보인다. 포트아일랜드 사면을 돌아보면 하역용 크레인이 바다를 배경으로 부두 곳곳에 높이 솟아 발을 딛고 선 곳이 물 위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테마파크 백지화와 대지진의 추억

포트아일랜드는 2기 확장공사를 마친 뒤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1차 공사를 마무리지은 뒤 고베시는 국제회의장·관광위락지를 조성하고 이곳에서 국제 해양박람회 ‘포트피아 81’을 성공적으로 치러 세계 최고의 건설기술을 과시했었다. 나카무라 주사는 “오사카의 유니버설재팬 스튜디오나 도쿄의 디즈니랜드처럼 90년대 중반 일본은 테마파크가 한창 유행이었는데 고베시도 2차 확장터에 이런 테마파크를 유치할 계획을 세웠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테마파크는 난항에 부닥친다. 거품경제가 터진 뒤 경기는 저점을 기고 있었고, 마침 포트아일랜드에 테마파크를 유치하려던 회사도 도산 위기에 놓여 테마파크 계획이 백지화된 것이다. 여기에 1995년 한신아와이 대지진이 일어나자 포트아일랜드의 넓은 유휴지는 집을 잃은 시민들의 임시주택 단지로 쓰였다. 어느 정도 지진복구사업이 진행되고 있던 1998년 고베시는 결단을 내린다. 포트아일랜드에 첨단 바이오벤처 단지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전 교토대 총장이자 국회의 의료산업위원회 위원이었던 이무라 히로오가 주축이 되어 교토·고베·오사카대 의학부 교수들을 설득했다. “지진 이후 무너진 것은 집과 도로만이 아니다. 고베의 산업이 무너졌다. 고베의 경제를 다시 일으켜세워보자.” 고베시와 중앙정부는 재원을 50%씩 투입해 임상연구정보센터·발생-재생과학종합연구센터·첨단의료센터·고베대 창업지원센터 등을 세웠다. 이곳에선 고베·오사카·교토대의 의학부 연구진이 머물며 정부와 기업이 의뢰하는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한다. 포트아일랜드에 세워진 이런 의료과학도시는 넓게 보면 고베시가 속한 긴키(近畿) 지역의 ‘첨단의학클러스터’에 속하는 것으로서, 연구와 생산을 한 공간 안에 집적하여 효율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가령 발생연구센터에서 새로운 골수이식 방법을 연구하면 센터에 딸린 병실에선 대학 병원 소속의 환자들이 입원해 임상실험을 거친다. 임상실험 뒤 기술의 상용화 가능성이 예상되면 창업지원센터는 새로운 기술의 마케팅을 비롯해 의료벤처 창업을 돕는다. 연구진은 고베시 첨단의료진흥재단과 5년 단위로 계약을 맺어 연구를 한다. 재단 관계자는 “보통 대학에선 교수 1명이 따내는 연구예산이 빠듯한 데 비해 이곳은 상대적으로 풍족한 편이라 인기가 높다”고 귀띔했다.


포트아일랜드 의료과학도시에서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간단히 살펴보자. 주로 발생·재생의료 분야에 집중하고 있는데 혈구의 모체인 조혈간세포를 이용한 혈액 생산, 혈관과 뼈 재생 등을 비롯해 양전자방사단층촬영법(PET) 의료기계 개발, 의약품 제조에 힘쓰고 있다. 발생-재생과학기술연구센터는 배아복제 연구에 핵심적 구실을 맡았다. 이른바 ‘만능세포’로 불리는 ‘배아줄기세포’를 활용해 연구를 하고 있는데 이곳에 지원되는 한해 국비 예산은 50억엔에 이른다.


나카무라 주사는 “90년대 중반 포트아일랜드에 테마파크를 만들지 못했던 것은 정말 다행”이라고 말한다. 현재 일본에 있는 대규모 테마파크 중에서 흑자를 보고 있는 곳은 도쿄의 디즈니랜드 딱 한곳밖에 없다. 당시로선 차선의 선택이었지만 첨단 바이오벤처 단지로 방향을 튼 것은 축복이 된 셈이다. 클러스터산업의 이론가인 미야자키 아키라 규슈대 교수(경제지리과)는 “간사이 지역은 본래 제약회사가 많이 몰려 있고 수준 높은 의대들이 포진하고 있어 여건이 좋았다. 재생의료라는 첨단 분야를 일궈나가는 데 질 높은 인적 자원과 기존의 인프라가 결합함으로써 시너지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50ha의 빈 땅은 아직 주인을 못 찾고…

하지만 포트아일랜드의 미래에 핑크빛 전망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의료과학도시 안에서도 50ha의 빈 땅이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고베국제공항도 인근에 간사이국제공항이 있고 나고야국제공항도 건설 중인데 굳이 고베에 국제공항이 필요하겠냐는 반대론이 거센 상황이다.


의료산업도시에 대해 열성적으로 설명하던 공무원 나카무라는 고베의 미래에 대해 묻자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100% 희망을 갖지는 않는다. 고베는 1970년대에 이르면서부터 오일쇼크와 엔강세 등으로 이미 성장 속도가 둔화됐고 부산항·가오슝항 등으로 물류량이 분산됐다. 고베가 누려오던 독점적 지위가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고베처럼 오사카와 같은 큰 도시와 이웃한 도시는 그 큰 도시의 구심력에 빨려들어가 정체성을 잃고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 의료산업도시라는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고 도시를 재생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클러스터가 살길이다

인터뷰/ 클러스터산업 이론가 야마자키 아키라 교수

[%%IMAGE9%%]야마자키 아키라 교수(47·규슈대 지리경제과)는 클러스터산업의 이론가다. 그와 만난 10월7일은 마침 규슈지 역의 클러스터 성과를 논의하는 세미나가 열리는 날이었다. 기타큐슈학술연구도시에서 주제발표를 막 끝낸 야마자키 교수를 만났다.
-클러스터는 무엇인가.
=현재 일본은 클러스터를 두개의 영역에서 추진하고 있는데, 하나는 경제산업성의 주도하에 전국을 9개 권역으로 나눠 관련 산업과 연구기능을 한곳에 묶는 산업클러스터이고, 또 하나는 문부과학성이 주도하여 역시 전국을 18개 지역으로 나눠 특정 주제에 따라 대학에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고베시가 속한 긴키클러스터는 바이오 관련 산업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생산·연구 활동을 하는 곳이다. 클러스터는 특정 도시에 기업을 유치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관 산업을 한데 묶어 결과적으로는 도시 전체를 발전시키는 전략이다.
-클러스터는 기존의 산업단지와 어떻게 다른가.
=3년 전 클러스터 정책을 시작하기 이전엔 좁은 지역을 지정해 특정 산업을 발전시키는 테크노폴리스계획 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기업을 유치해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구상 자체가 불가능하다. 일본의 기업들은 인건비가 훨씬 싼 중국으로 공장을 내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도시마다 자기 지역 특성과 조건에 맞는 첨단의 신제품을 개발해내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클러스터는 지리적으로 넓은 공간 안에 관련 산업을 통합하여 하나의 군으로 묶고 이를 자치단체와 중앙정부가 함께 일괄적으로 지원해나가는 것이다.
-클러스터마다 각기 다른 산업이 발달할 수 있는 근거가 있나.
기본적으로 종래의 산업 인프라에 바탕을 둔다. 예를 들어 긴키 지방의 첨단의학 클러스터는 본래 이 지역에 발달한 제약회사·의학대학들과 관련돼 있다. 환경산업 클러스터로 정해진 기타큐슈 역시 오래전부터 신일본제철·아사히유리·미츠비시화학 등 폐기물 처리량이 많은 기업들이 많았다. 그러니 폐기물을 재활용하고 여기에서 새로운 자원과 에너지를 뽑아내는 환경산업기술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생산과 연구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가.
클러스터 관련 세미나가 열린 이곳 기타큐슈학술연구도시를 살펴보자. 기타큐슈학술연구도시에선 기타큐슈시립대·규슈대공대·와세다대 대학원 등이 함께 반도체회로설계·리사이클링산업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한다. 이런 연구 성과는 교수가 만든 벤처기업에서 제품개발로 이어진다. 도쿄 주변에 있던 반도체회로설계기업 가운데 50%가 현재 기타큐슈로 회사를 옮겨왔다. 우수한 대학 인력을 쓸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클러스터는 이처럼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을 추구하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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