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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등록 2004-10-21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 병역거부자 실형선고사례 유엔인권이사회에 제소… 인권 침해 결정 시 한국 정부에 압력</font>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우리는 이제 제네바로 간다.”

한국의 병역거부 문제가 유엔에서 다루어지게 됐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는 10월18일 오전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최명진(23)씨와 윤여범(24)씨 사안을 유엔인권이사회(Human Rights Committee)에 제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윤씨와 최씨는 지난 7월 대법원에서 1년6개월형이 확정돼 현재 서울 성동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개인통보제도… 국제 규약 위배 판정

제소 형식은 유엔인권이사회의 개인통보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1976년 설립된 유엔인권이사회는 153개국이 가입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이행 상황을 감시하는 기구다. 유엔인권이사회는 인권 피해자가 자신이 당한 조치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위반되는지 가려줄 것을 요청하는 개인통보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개인통보제도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선택의정서에 가입한 국가(2004년 10월 현재 104개국)에 한해 적용된다. 한국은 1990년 정치적·시민적 권리에 관한 규약에 가입했고, 규약 선택의정서를 수락해 개인통보제도의 적용을 받는다.

개인통보가 유엔인권이사회에 접수되기 위해서는 해당 사건이 국내의 사법 절차를 모두 마쳐야 한다. 최씨와 윤씨의 경우, 지난 7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됨으로써 최근의 병역거부 사건 중 국내의 사법적 구제 절차를 마친 최초의 사건이다. 두 사람의 개인통보 서면은 대법원 판결문, 병역거부권 침해 자료와 함께 18일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제82차 유엔인권이사회에 접수됐다. 퀘이커 유엔 오피스(Quakers UN Office), 전쟁저항자연합(WRI) 등 스위스 제네바 현지의 인권단체들은 유엔인권이사회가 최씨와 윤씨의 개인통보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할 것을 촉구하는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18명의 인권 전문가로 구성된 유엔인권이사회는 개인통보가 적격하다고 판단하면, 당사국에 통보 사건에 대한 서면답변서 제출을 요청한다. 유엔인권이사회는 피해자의 개인통보 서면과 당사국의 답변서를 바탕으로 권리 침해 여부를 결정하고, 권리 구제를 위한 조치를 당사국에 촉구한다. 유엔인권이사회는 이미 병역거부권을 인정한 바 있다. 유엔인권이사회는 1993년 채택한 일반논평 22호를 통해 “유엔인권이사회는 이러한 권리(병역거부권)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18조에서 기인한 것임을 믿는다”라고 밝혔다.

인권 침해 결정시 정부에 압력

개인통보 결정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상당한 권위를 지닌다. 연대회의는 “한국 정부는 선택의정서 가입을 통해 개인통보에 대한 유엔인권이사회의 심리 권한을 인정하고, 규약상 권리 침해에 대한 구제 조치를 약속했다”며 “인권 침해 결정이 나오면 한국 정부에 압력이 됨은 물론 관련 법 개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세계 각국이 개인통보 결정을 수용해 국제규약에 위반되는 국내법을 개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도 2003년 12월 개인통보 결정을 이행하기 위한 특별법 입안을 국무총리, 외교통상부, 법무부에 권고했다. 유엔인권이사회는 강용주씨가 준법서약서에 대해 제출한 개인통보 등 5건의 사안에 대해 한국 정부가 규약을 위반했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석태 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은 “한국의 병역거부 수감자 수가 연말에는 11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세계에서 가장 병역거부 수감자가 많은 한국의 현실이 유엔에서도 심각하게 다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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