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없음’ 최종 판명에도 자신의 주장 굽히지 않는 부시 대통령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전세계인을 기만하며 이라크를 무력 침공한 것으로 최종 드러났다.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사찰팀인 ‘이라크서베이그룹’(ISG)은 10월6일 상원 군사보고위원회에 낸 최종보고서에서 “지난해 미국의 침공 때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찰스 듀얼퍼 단장은 보고서를 통해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1991년 핵무기 프로그램을 없앤 데 이어 1995년에는 생물무기 프로그램도 포기했다고 밝혔다. 또 보유 중이던 생화학무기를 1992년까지 폐기했고, 그 뒤 이들 WMD 생산이 재개됐다는 증거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이라크 전쟁 전에 후세인이 추구했던 목표는 WMD 프로그램이 아니라 유엔의 금수조치를 푸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후세인이 WMD에 집착하기는 했으나, 이것이 미국 위협을 겨냥하거나 테러리스트들에게 무기를 건네기 위한 의도는 아니었다면서 부시 미 행정부의 기존 및 현재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사찰팀 10월6일 최종보고서 제출해
이라크의 WMD 관련 의혹을 추적해온 ISG가 이번에 내놓은 1천쪽 분량의 최종보고서는 예견된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렇기는 하나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 보인다. 부시 행정부가 유엔과의 적절한 합의 절차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이라크 전쟁을 감행한 핵심 구실이었던 ‘후세인 정권의 WMD 개발 및 보유 의혹’이 사실무근으로 드러난 것이다. 즉, 미국은 애초부터 대량살상무기의 제거가 아니라 사담 후세인 정권 교체라는 정치적 목적을 앞세운 불법 침공을 감행한 셈이다.
WMD 의혹과 함께 미국이 후세인 정권 제거의 또 다른 명분으로 내세웠던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과 후세인 사이의 연결고리도 발견되지 않았다. 부시 정권은 세계와 미국인을 기만한 채 수만명의 이라크인 사상자와 1천명이 넘는 미군 사망자를 낸 반인륜적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민주당의 칼 레빈 의원은 “이라크 전쟁의 명분은 후세인이 WMD를 보유하고, 이들 무기를 알카에다에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지만 두 가지 명분 모두 틀렸음이 드러났다”며 “후세인이 미래에 WMD를 보유할 의향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전쟁에 돌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거칠게 비판했다. 결국 지난해 3월20일 미―영 연합군의 이라크 침공 이전부터 침공 의도가 WMD 개발 저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인 후세인을 제거해 이라크의 막대한 석유자원을 확보하고, 미국의 구미에 맞는 중동 민주화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아랍권과 지식인들의 지적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반면 이번에 발표된 보고서는 부시가 그간 무시한 유엔의 판단이 옮았음을 재확인해준다. 보고서가 후세인 정권이 WMD를 만들 여력이 없었다고 밝힌 것은 유엔이 1991년 1차 이라크 전쟁 뒤 이라크를 효과적으로 무장해제시켰음을 입증한다. 2차 이라크 전쟁 직전 유엔 무기사찰단장이었으나 미국의 압력에 의해 물러났던 한스 브릭스도 “몇달만 더 있었더라면 이라크 무기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최종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며 부시 행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전쟁을 감행했다고 비판했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2003년 1월 유엔안보리에서 “이라크가 1990년대 핵개발을 포기한 이래 새로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해왔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에 공개된 듀얼퍼 보고서 내용은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의 유엔안보리 보고와 일맥상통한다.
관심사는 이 보고서가 코앞에 닥친 미 대선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는 점이다. 그러나 정작 이라크 전쟁을 이끈 부시는 옹색한 변명만 늘어놓은 채 막무가내로 침공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7일 백악관 성명에서 “모든 정보를 근거로 볼 때 나는 우리가 전쟁을 일으킨 것이 옳았다고 믿는다”면서 “미국은 사담 후세인을 체포함으로써 더욱 안전해졌다”고 강변했다. 그는 “듀얼퍼 보고서는 후세인이 경제제재 조치를 흔들기 위해 유엔의 석유 식량 프로그램을 이용, 외국 정부와 기업들에 영향을 미치면서 조직적으로 도박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그렇게 함으로써 후세인은 세계가 눈을 떼고 있었던 무기 프로그램을 재가동할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반박했다. 또 “후세인은 대량살상무기 생산을 위한 지식과 물질, 수단과 의도를 갖고 있었으며 그는 그같은 지식을 우리의 적들인 테러리스트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고 기존 주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무책임한 태도 공격하는 케리 진영
10월8일 열린 2차 텔레비전 대선 후보 토론에서 쏟아낸 발언들도 변명 일색이었다. “전쟁에는 작은 전술적 결정들이 많은데, 그 중 일부는 후세 역사가들이 실책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 책임은 내가 진다. 나도 인간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전과 이라크전이 실수였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결단코 아니다’이다.”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나는 행복하지 못했다. 우리는 거기에 가기 전까지는 그(사담 후세인)가 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알지 못했다.” “후세인은 (유엔) 사찰관들을 속이고 있었다. 후세인은 제재만 해제되고 나면 다시 무기 프로그램을 시작하려 했다.” 사실상 부시를 꼬드겨 전쟁으로 내몬 딕 체니 부통령도 10월7일 한술 더 떠 이라크 침공의 정당성을 옹호했다. 그는 ‘듀얼퍼 보고서’가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공격하기로 한 결정이 잘못됐음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정당화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라크 제재가 해제됐더라면 후세인이 WMD를 만들 수 있는 여력을 회복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라크 침공 당시에는 후세인의 WMD 보유를 기정사실화했던 그였다.
부시와 체니의 무책임한 태도는 당장 케리 민주당 대선 후보의 날선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존 케리 민주당 후보는 10월8일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은 아마도 이라크에 관한 진실을 쳐다보지 않을 지구상의 마지막 두 사람인지 모른다”면서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와 관련해 중대한 실책을 범하고 ‘기만의 틀’을 반복함으로써 전반적인 대테러전 역량을 해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부시 대통령의 실책으로 미국이 더 허약하고 덜 안전해졌다”면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를 혼돈에 빠뜨리고 이라크에서의 임무를 훨씬 더 수행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케리 후보는 이어 “부시 대통령이 알카에다로부터 이라크로 관심을 돌리고 책임을 회피하고 자신을 부정직하게 공격하는 등 미국인들에게 정직하지 못하다”고 크게 꾸짖었다. 2차 텔레비전 토론에서도 “이라크전은 거대하고 파멸적인 실수였다. 진정 전세계적인 동맹도 구축하지 않았고 사찰관들에게 임무 완수를 위한 시간도 주지 않았고 유엔 절차도 끝까지 밟지 않은 채 마지막 수단이라며 전쟁으로 달려갔다. 과연 최후의 수단이었나”라며 반문했다.
이란·북한에 대한 새로운 무리수 우려
부시 행정부의 반성 없는 뻣뻣한 자세는 새로운 무리수를 예고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부시 행정부는 어떻게든 불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희생양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물론 유력한 후보는 이란과 북한이다. 더구나 이들 나라는 핵물질과 생화학 무기 등 이라크보다 진전된 WMD 개발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나아가 듀얼퍼 보고서 공개의 불똥이 북한에 먼저 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폭발 직전에 있는 아랍권 전체의 반미 감정을 달래기 위해서는 아랍권이 아닌 북한부터 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다. 보고서가 공개된 뒤 아랍 여론은 “부시가 무슬림과 아랍인들을 박해하고 아랍 세계만 공격 목표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모든 아랍인과 무슬림들이 확신하게 됐다”는 쪽으로 급속히 기울고 있다. 부시 행정부 처지에서는 또다시 같은 아랍권인 이란을 선제 공격하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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