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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자금, 이젠 ‘세금’ 내셔야죠

등록 2004-10-14 00:00 수정 2020-05-03 04:23

불법 정치자금 과세하는‘세법 개정안’국회에… 추징·몰수분 봐주기 독소조항 없어야 실질적 효과있어



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불법 정치자금도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몰수분은 과세대상이 아니라는 독소조항이 남아 있는 한 과세가 쉽지만은 않다.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명확한 대가 관계에 있다면 소득세법의 ‘기타 소득’으로 보아 과세할 수 있다.”

지난 10월4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의 국세청 국정감사 자리에서 과거 권력형 비리사건 중 뇌물(수뢰, 알선수재 등) 사건에 대한 과세 여부를 물은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의 질의에 대한 이용섭 국세청장의 이런 답변은 불법 정치자금에 세금을 물리게 될 것이란 기대감을 낳았다.

당연한 ‘대가성’ 놓고 공방 펼치는 현실

국세청은 그동안 불법 정치자금에 대해선 “현행법상 과세할 수 없다”는 뜻을 굳게 지켜왔으며, 뇌물 사건에는 명시적인 태도를 밝히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뇌물은 포괄적인 대가로 여겨지는 통상적인 불법 정치자금과 달리 구체적인 대가를 가리킨다.

물론, 국세청은 아직 통상적인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과세는 불가능하다는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쪽을 정당과 개별 정치인으로 나눠볼 때 우선 정당에는 세금을 매길 수 없다고 국세청은 밝혔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제46조 3호)에 따라 정당에는 비과세 혜택을 주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개별 정치인이 받은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과세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국세청은 대가성 없는 순수 증여에 대해선 증여세를 과세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국세청 스스로도 실토하듯 엄밀한 의미에서 대가성 없는 정치자금이란 있을 수 없다. 문제는 대가성 있는 정치자금에 대한 과세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점이다. 국세청은 “현행 소득세법상 사례금으로 보아 세금을 매기려면 대가 관계가 명확해야 하는데, 정치자금의 경우 포괄적인 대가여서 과세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이런 사정 탓에 지금까지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과세 사례는 단 1건도 없는 실정이다.

지난 4일 국정감사장에서 심상정 의원은 이용섭 청장에 대해 “명확한 대가 관계가 있다면 과세할 수 있느냐”라고 집중 추궁했고, 이 청장은 “개별적·구체적 대가 관계에 있는 경우에는 사례금(소득세법상 기타 소득)으로 보아 소득세를 과세할 수 있다”라고 답하기에 이르렀다. 심 의원의 공세에 몰린 끝에 마지못해 한 발언이긴 하나, 이에 따른 파장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청장이 밝힌 과세 대상에 딱 들어맞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례가 적잖이 제시돼 있기 때문이다.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과세 운동을 벌여온 참여연대는 국세청 국감 직후 임창렬 전 경기도지사, 한광옥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방림 전 국회의원, 박상희 전 국회의원 등 권력형 비리사건 4가지를 들고 국세청에 과세권 행사를 촉구했다. 특히 1998년 5월 경기은행 퇴출 저지 부탁과 함께 1억원을 받은 임 전 지사, 산업연수생 관련 청탁에 따라 호피 1점을 받은 혐의 등으로 벌금 1천만원에 처해진 박 전 의원의 경우 대법원 확정 판결에까지 이른 상태여서 세금을 매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게 참여연대의 주장이다. 국세청이 임 전 지사에 대해 세금을 매길 경우 당시 소득세율 10~40%(과표 1천만원 이하~8천만원 초과)에 따라 세액은 3천만원에 이르게 되며 그동안의 이자와 가산세까지 감안하면 이보다 훨씬 더 늘어나게 된다. 현대 비자금 200억원을 받은 혐의로 10월8일 대법원 확정 판결과 함께 징역 5년과 추징금 150억원을 선고받은 권노갑씨의 경우 이자와 가산세를 감안하면 세액은 120억~13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참여연대는 이 밖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례를 모아 국세청에 제보하는 형식으로 과세를 촉구할 방침이다. 국세청으로서는 이 청장의 공언과 외부의 압박을 마냥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긴장 상태에 놓일 전망이다.

국세청이 이들 사안의 휘발성을 걱정해 시일을 끌면서 뭉갠다고 하더라도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과세는 한발한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재정경제부가 올해 세제 개편 방향에서 밝힌 바대로 지난 10월1일 정치인이 받은 불법 정치자금에 대해 증여세를 매기도록 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이다. 예정대로 이 법이 통과돼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된다면, 구체적인 대가 관계를 둘러싼 지루한 공방 없이 불법 정치자금에는 원칙적으로 세금을 매길 수 있게 된다. 구체적인 대가 관계 입증- 현실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한- 없이는 불법성 여부와 상관없이 비과세 혜택을 주는 현행 규정에서 한발 나아간 조처다.

몰수·추징 당하면 ‘소득 0원’ 되나?

그렇다고 이 장치가 곧바로 작동해 불법 정치자금에 재깍재깍 세금을 물릴 수 있게 될 것으로 낙관할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재경부가 국회에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제출하면서 ‘기부받은 정치자금을 국고 귀속, 몰수·추징 등을 당한 경우에는 경정을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을 끼워넣었기 때문이다. 몰수·추징을 당하면 세금을 내지 않거나 이미 낸 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예컨대 임창렬 전 지사의 경우 지난 2002년 10월9일 유죄 확정 판결 당시 ‘징역 10월, 집행유예 1년에 추징 1억원’을 받아 개정 세법 아래에서도 증여세 과세 대상에서 빠져나가게 된다. 권노갑씨 역시 마찬가지다. 임 전 지사, 권노갑씨의 사례만 놓고 볼 때는 현행 법 체계 아래에서 “구체적인 대가 관계가 있다면 소득세를 매길 수 있다”는 이 청장의 공언이 되레 현실성 있는 과세의 근거인 셈이다. 최영태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장(회계사)은 이 때문에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에 담긴 ‘경정청구권’을 독소 조항이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그렇다면 재경부는 왜 독소 조항이란 비난을 받는 경정청구권을 개정안에 집어넣은 것일까?

김문수 재경부 재산세제과장은 “몰수 또는 추징되면 과세 요건 중 핵심인 담세력이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과세할 원인이 무효로 돌아간 마당에 어떻게 세금을 매길 수 있느냐는 것으로, 언뜻 보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측면이 있다. 최명근 강남대 석좌교수를 비롯한 일부 학자들도 몰수·추징된 경우 과세하지 않는 게 맞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김정훈 조세연구원 재정연구실장은 “몰수·추징에 따른 원인 무효로 소득의 증가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과세를 한다면 이는 불법적인 것에 대한 페널티(벌금)로, 과세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몰수·추징은 과세와 별개 사안이므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것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게 온당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는 몰수·추징은 수입의 반환이 아닌 ‘부가적 비용’이라는 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최영태 팀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몰수·추징이 본인(불법 정치자금을 준 사람)에게 반환한 것이 아닌 한 수입이 없어졌다고 할 수 없고, 대신 국가가 부가적 형벌로 비용을 발생시켜 이득을 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몰수·추징을 세법상 비용으로 인정한다면 과세할 소득이 없어지는 것이고,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과세할 소득이 있게 되는데, 몰수·추징을 세법상 비용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논거는 많다.”

최 팀장은 우선 접대비·지급이자·벌금이 세법상 비용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고 있다. 몰수·추징의 경우 이보다 훨씬 더 반사회적인 범죄에 부과되는 벌이기 때문에 세금 혜택을 받는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는 게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이다.

최 팀장은 “몰수·추징은 불법 정치자금이라는 소득의 실현과는 별개의 사안”이라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소득이 실현된 이상 과세를 미뤄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과세란 납세자 개인의 평생 소득을 기초로 하는 게 아니고, 특정 기간에 실현된 소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이런 세제 논쟁은 제쳐두고라도 정부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당장 세법 체계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세기본법(제46조)에 일반적인 경정청구권 조항을 두고 있는 터에 구태여 몰수·추징 관련 경정청구권을 조세특례법에 따로 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증여세에선 ‘비용’을 전혀 인정해주지 않는데 몰수·추징에만 비용을 인정하는 것은 공평성에 어긋난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증여를 받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갔다고 해서 그 경비를 비용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산을 증여받고 그 보답으로 증여자(예를 들어 부모, 장인·장모)를 돌봤을 때 그 비용도 세법상 비용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건설회사 직원엔 과세 선고한 대법원

배임수재죄와 관련해 몰수·추징된 경우에도 과세를 하도록 한 대법원 판례(2002두431)가 있다는 점은 또 다른 형평성 시비를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당시 판례에 등장하는 건설회사 과장 ㄱ씨는 ㅈ씨와 아파트 건설부지 매매계약을 맺으면서 부정한 청탁과 함께 10억원을 받았다가 추징금 10억원을 선고받고도 별도의 과세 처분을 당했다. 배임수재죄에는 이렇게 과세하면서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이 저지르는 알선 수재죄와 뇌물죄에는 과세하지 않았는데, 정부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이런 관행을 굳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국회의 법 개정안 심의 때 독소 조항으로 꼽히는 경정청구권을 없애는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정부와 뜻을 같이하는 열린우리당은 물론, 한나라당쪽도 이 법안에는 별다른 의욕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노동당은 시민사회의 힘을 빌려 정치권을 압박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심상정 의원쪽은 “법안 심의에 본격 들어갈 때쯤 토론회 개최 등을 통해 불법 정치자금에 실질적으로 세금을 매길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해 여론을 환기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의 ‘압박’은 계속된다

불법 정치자금 과세운동은 참여연대가 지난해 4월 서상목 전 의원 등 이른바 ‘세풍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과세촉구서를 국세청에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불법 정치자금 연루자에 대한 처벌 때 경제적 불이익을 덧붙여 처벌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조처였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그해 5월 답변을 통해 “현행법상 정치자금의 경우 합법이든 불법이든 과세가 어렵다”라고 밝혔으며 지금까지 이런 태도를 유지해왔다. 재경부쪽도 “불법 소득의 경우 몰수·추징되거나, 몰수·추징을 선고하는 판결을 받은 경우 세금을 매길 수 없다”라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이에 맞서 곧바로 나라종금 퇴출 저지 로비 사건 등과 관련해 불법 자금을 받은 한광옥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에 대한 과세도 촉구한데 이어 12월 들어서는 불법 대선자금에 대한 과세 문제도 새롭게 제기하는 것을 비롯해 불법 정치자금 과세운동을 줄기차게 펼쳤다. 이에 따른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올 2월에는 학계 28명, 변호사 127명, 회계사 56명, 세무사 39명, 기타 2명 등 252명의 조세 전문가들이 참여연대를 지지한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또 지난 5월에는 대한변호사협회도 참여연대를 지지하는 의견서를 발표했다.
이런 외부적 압력을 통해 재경부는 올해 세제 개편 때 불법 정치자금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증여세를 매기는 내용을 반영하기에 이르렀다.
참여연대는 정부의 세법 개정 방침에도 불구하고 몰수·추징될 경우 경정권을 주도록 한 조항 탓에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과세가 사실상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독소 조항을 개선하는 운동을 벌일 태세다. 이와 함께 불법 정치자금의 사례를 수집해 국세청에 제보하는 방식으로 과세 압박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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