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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는 뭘 믿고 오르는 걸까

등록 2004-09-17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경기지표 나빠져도 주가 상승하는 이유… 내수 역동성 살아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도 </font>

▣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내수침체가 길어지는 가운데, 수출마저 둔화되는 징후가 나타나면서 경기지표들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경제주체들의 심리는 바닥이다. 그러나 주식시장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경기 하강으로 기업 실적이 나빠지면 주가도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주가는 오히려 오르고 있다. 일부에서는 종합주가지수가 올해 안에 1천선을 넘볼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과연 어떤 근거에서 그런 주장이 나오는 것일까?

선행지수 · 체감경기 · 수출 비관적

회복 기미를 보이던 경제가 다시 나빠지고 있다는 것은 종합경기지표가 잘 보여준다. 통계청이 매월 집계하는 경기선행지수 전년 동월비와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4개월 연속 하락세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이런 지표는 경기가 하강으로 돌아서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도 8월9일 콜금리를 동결하기로 한 배경을 설명하면서 “전반적인 경기 동향은 상향세보다 하향세가 우세하다”고 말했다. 박 총재는 “앞으로 내수 회복이 기대되지만 속도는 매우 완만할 것으로 예상되고, 수출도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증가 추세는 약화되고 있으며 건설 활동과 서비스 활동, 고용 사정도 모두 저조하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경제성장을 홀로 이끌고 있는 수출은 지난 5월 전년 동월 대비 41.9% 증가했지만, 6월에는 38.1%, 7월에는 36.3%로 둔화되더니 8월에는 29.3%로 증가율이 더욱 낮아졌다. 하루 평균 수출액도 4월 9억4천만달러, 6월 8억7천만달러, 8월 8억3천만달러로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기업의 체감경기도 아주 나쁘다. 산업은행이 최근 1218개 업체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 업체의 4분기 사업개황지수(BSI)는 90으로 3분기의 104보다 크게 낮아졌다. 이는 지난 2001년 1분기의 87 이후 3년7개월 만에 최저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1485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한 4분기 경기전망조사 결과도 지수가 79로 나와 3분기의 89보다 훨씬 낮아졌다. 소비자들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통계청의 8월 소비자 전망조사(CSI) 결과에 따르면 현재의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소비자 평가지수는 63.1로 4개월 연속 하락했다. 이 수치는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지난 1998년 11월의 65.9보다도 낮은 것이다.

그런데 최근 주가는 이와는 정반대로 움직인다. 올해 종합주가지수는 연초 810선에서 시작해 4월23일 936까지 올랐다. 이후 미국의 조기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와 중국의 긴축정책에 따른 우려로 급락세를 보이며, 8월2일에는 720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에서부터 주가의 흐름은 다시 역전됐다. 유가 급등 우려나, 소비침체의 장기화는 더 이상 주가를 붙잡는 요인이 아니었다. 9월10일 마감 기준으로 주가는 836이다. 주가는 9월13일에도 상승세가 이어져 마침내 850선을 넘어섰다.

주식시장 안팎에서는 주가 상승세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한편에서는 최근 상승세는 큰 폭으로 떨어진 데 대한 반등에 불과하다고 해석하는 반면, 한편에서는 다시 본격적인 상승세가 시작됐다고 강조한다. 가장 낙관적인 곳은 메릴린치다. 메릴린치 이원기 전무는 지난 8월3일 낸 ‘내수 역동성 살아난다’는 제목의 한국시장 전략 보고서에서 “연말까지 종합주가지수가 1천선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의 핵심은 ‘내수 역동성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이 전무는 “한국 가계의 부채증가율이 지난 2002년 4분기 이후 둔화되고 있는 반면, 가계의 순저축률은 견조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2분기 가계소비는 4.2% 증가하는 데 그쳤으나, 명목소득은 5% 증가했다”며 “소비 증가율이 소득 증가율을 밑돈 것은 최근 몇년 만에 처음”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어 “부동산 시장도 급격한 하락 없이 건전한 조정을 받고 있으며, 주택 가격은 고점 대비 5~7% 떨어진 뒤 안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한국은행의 콜금리 인하와 소득세율 및 특별소비세 인하 등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도 소비 심리를 되살리는 데 시기적절한 것이라고 메릴린치는 평가했다.

기대감 퍼지는 건 그나마 다행

동원증권도 이 전무와 비슷한 견해를 최근 내놓았다. 동원증권은 지난 8월8일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내수 관련 집중 조명’ 세미나를 열었다. 강성모 리서치본부 투자전략부팀장은 “종합주가지수가 장기 추세상으로 상승 국면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며 “4분기 주가 하락 위험선은 770선이지만, 상승치는 950까지 전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원증권은 “소비지표들은 아직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지만, 저점을 벗어나고 있다”며 “월 500만원 이상의 고소득층은 3분기부터 소비여력이 형성되고, 중위 소득 계층의 부채조정이 마무리되는 내년 2분기를 전후로 소비 회복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가가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데 부정적인 시각도 물론 많다. 그러나 경기가 장기침체에 빠지기보다는 내년 상반기쯤 부채조정이 마무리되면서 소비가 회복되리라는 것은 주식시장 참가자들 사이에 폭넓게 공유되고 있다. 한화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내수 소비가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며 “지금은 경기지표가 하강해도 기업 수익이 급격히 나빠지지 않는다는 점도 주가를 반등시키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주식시장에서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은 여전히 외국인이다. 8월2일부터 9월10일까지 외국인들은 2조1602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여 주가를 올렸다. 반면,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158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주가가 크게 오른 업종도 건설업(32.44%), 기계(26.07%), 금융업(28.9%) 등으로 경기부양책의 직접적 수혜주들이었고, 내수 회복에 따른 대표적인 수혜주인 유통업(16.86%) 종합주가지수 상승률(16.22%)과 비슷했다. 그러나 주가는 항상 경기보다 앞서 움직인다. 가뜩이나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나빠지는 상황에서 내수가 머지않아 회복되리라는 기대가 주식시장에 퍼지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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