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열악한 환경에 시달리는 장애인스포츠 선수들… 연금제도만이라도 일반 선수들과 같이 적용돼야 </font>
▣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아테네올림픽 선수단 출정식이 열린 지난 8월6일 인천공항에서 벌어진 일이다. 올림픽 대표선수단 취재 경쟁에 열을 올리던 국내 기자들이 하나둘씩 엉뚱한 곳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선이 집중된 곳에는 20여명의 휠체어 장애인들이 ‘장애인체육 차별 철폐’라고 쓰인 펼침막을 들고 모여 있었다. 이들은 일반 올림픽에 이어 열릴 장애인올림픽에 출전할 대표선수들이었다.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각종 언론매체 기자들이 대거 몰린 이날 ‘기습시위’를 벌인 것이다. 시위를 주도한 ‘장애인체육진흥법추진연대’의 정진완(39·사격) 대변인은 “일반 스포츠 선수들과는 도저히 비교가 안 되는 열악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부득이하게 기습시위를 벌이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국제대회 나가려면 직장 그만둬야
장애인스포츠 선수들의 시위는 주요 대회를 앞두고 늘 반복돼왔다. 지난 2000년 시드니장애인올림픽 때 장애인 대표선수들은 출국하는 날 공항에서 시위를 벌였고, 2002년 부산아태장애인경기대회 때는 일부 종목 선수들이 집단으로 훈련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들의 요구는 한결같았다. 일반 스포츠와 비교할 수 없는 장애인스포츠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해달라는 것이었다. 정부는 그때마다 ‘대회 끝난 뒤 모든 요구사항을 들어주겠다’라고 약속했지만, 장애인 선수들은 지금도 차별구조가 깨지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국내 장애인스포츠는 모순된 현실을 안고 있다. 장애인스포츠는 이미 재활 차원을 뛰어넘어 일반 스포츠처럼 전업화된 지 오래인데, 선수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 보상은 일반 스포츠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장애인 선수들도 일반 선수 못지않은 훈련량과 기량을 요구받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실업팀이 거의 없기 때문에 운동에만 전념해서는 생계 유지를 보장받지 못한다. 하지만 장애인 전반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유독 장애인스포츠에 대해서만 차별 해소를 요구하는 것은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지 못한다. 국내 장애인 중에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이들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으로 인해 장애인스포츠 차별 문제는 그 해결이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장애인 대표선수들의 실상은 이런 모순된 현실만 탓하기에는 너무 절박하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장애인스포츠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어렵게 얻은 일반 직장을 포기해야 한다. 장애인올림픽의 경우 합숙 훈련과 경기 일정을 합쳐 100일 가까이 직장을 떠나 있어야 하는데, 사업주가 이를 용인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표선수로 뽑혀 국제대회에 참가하려면 ‘과감하게’ 직장을 포기해야 한다.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이현옥 홍보과장은 “선수들의 직장이 대부분 영세업체인데, 이 업체들은 일꾼 한 사람 몫이 아쉬운 곳이어서 사업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며 “선수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아테네장애인올림픽 대회에 참가하는 82명의 선수 중 50여명은 직장이 없다. 특수학교나 정립회관 등 장애인단체에 소속된 선수들까지 합하면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선수는 60여명으로 늘어난다. 이들 중 상당수가 장애인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그동안 다니던 직장을 포기했다. 이들이 직장을 포기하고 받는 대가는 하루 2만5천원의 훈련수당과 소속 지방자치단체나 장애인체육단체에서 주는 한달 40만∼50만원의 훈련지원비뿐이다. 일반 선수들이 소속 실업팀과 협회, 협찬 기업들로부터 든든한 재정적 지원을 받는 것과 대조적이다.
메달을 땄을 때 받는 혜택은 더욱 큰 차이가 난다. 일반 선수의 경우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면 월 100만원의 연금을 받지만, 장애인 선수들은 월 60만원에 불과하다. 얼핏 보면 별 차이가 없는 듯하지만, 차이는 메달을 여러 개 땄을 때 도드라진다. 일반 선수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2개 이상 딸 경우 연금은 월 100만원 이상 받을 수 없지만, 누적된 메달 수만큼 일시불로 환산해 돈을 받는다. 하지만 장애인 선수는 올림픽에서 아무리 메달을 많이 따도 월 80만원 이상 받을 수 없다. 연금을 제외한 포상금에서는 더 큰 차이가 생긴다. 지난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은 소속 팀과 협회의 경제적 지원 능력에 따라 1억∼3억원의 포상금을 별도로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장애인 선수들은 이를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소속된 팀도 협회도 없고, 스폰서도 없기 때문이다. 몇몇 대기업이 훈련지원비로 내놓은 돈을 대회가 끝난 뒤 선수 전원이 골고루 나눠갖는데, 지난 시드니대회 때는 1인당 300만원 수준이었다.
국민체육진흥법에 장애인은 없다
전문가들은 장애인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연금 제도만이라도 일반 선수와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민규 교수(한국체육대 특수체육학과)는 “일반 선수들에 대한 포상금은 국민체육진흥기금에서 나오고 장애인스포츠는 장애인복지기금에서 나오는데, 이 기금의 규모가 6천억원(국민체육진흥기금)과 350억원(장애인복지기금)으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포상금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국민체육진흥법을 개정해 장애인 선수들도 동등한 연금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현행 국민체육진흥법에는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장애인 선수들은 이 법에 따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 교수는 “국민체육진흥법만 놓고 보면 장애인은 국민의 범주에 아예 들어가지 못하는 셈”이라며 “우리 사회에 만연된 장애인 차별 구조가 장애인스포츠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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