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참여정부 경제정책 방향 없이 우왕좌왕… 국민이 선택한 정책 기조와 맞는 사람을 밀어라 </font>
▣ 전성인/ 홍익대 교수 · 경제학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표류하고 있다. 풍랑이 생각보다 거센 탓도 있지만 누가 방향타를 잡고 있는지, 방향타를 잡고 있는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어디를 향해 항해하고 있는지 불분명하다. 이제 이 정권은 초기의 적응 과정을 뒤로 하고 집권정부로서 자신의 색깔을 본격적으로 드러내야 할 시기임에도 아무 일도 시도하거나 이룩하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과연 대안은 없는 것일까?
이헌재 부총리 입각, 정책 구도 변화
집권 초기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김진표 부총리로 대표되는 관료가 앞장서고, 이정우 당시 정책실장(현 정책기획위원장)으로 대표되는 집권세력이 뒤를 미는 구조였다. 그리고 집권 당시의 현안으로는 국내적으로 신용카드 문제와 SK그룹의 분식회계 문제가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이라크 사태와 북핵 위기가 우리 경제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이 중 국내 문제에 대한 해결은 관료가 담당했다. 신용카드 문제는 카드사를 하나도 죽이지 않고 엄청난 돈을 넣어 살리는 것으로 결론났고, 그 결과 아직도 돈을 넣고 있다. SK 문제는 약간 겁을 주고 다시 살려주는 ‘시혜’를 베푸는 것으로 결론났고, 이와 아울러 대선자금에 연루됐던 다른 재벌들에 대해서도 “주주대표소송을 피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면죄부를 주었다. 이런 해결책은 참여정부의 집권을 지지하던 일부 계층의 이탈을 촉진했다.
이정우 정책실장이 담당하던 대표적인 정책은 지난해 10월29일 발표된 부동산 가격 안정 정책이었다. 이 정책은 부동산 가격의 상승세를 잡는 데에는 일부 성공했으나 조세를 정책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조세 저항을 초래했고, 이는 참여정부의 집권을 우려한 반대세력의 심정적 결집을 강화했다.
초기의 정책담당 구도는 올해 초 이헌재 부총리가 들어오면서 결정적으로 변화했다. 이 부총리의 등장과 함께 정책특보 겸 정책기획위원장으로 밀려난 이정우 위원장의 경제정책에 대한 영향력은 급속히 약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현재의 경제 상황이 위기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경제불황과 경제위기를 구별하지 않고 “현재가 불황인가 아니면 태평성대인가”를 다투는 내용 없는 입씨름 수준으로 전락하면서 경제위기론의 함정을 지적하던 이정우 위원장은 “경제의 실상을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마치 국민의 정부 시절 김태동 경제수석이 시간이 흐르면서 진념과 강봉균 장관에게 밀려났듯이, 이정우 위원장도 이헌재 장관에게 경제정책의 주도권을 내어준 것처럼 보인다.
대외적 요인 중에서 북핵 위기는 애초 우려한 것보다 무난하게 넘어갔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먼일처럼 여겨지던 이라크 사태는 지난 6월30일 군정이양 이후 오히려 악화 일로를 걸으며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우리 경제의 올해 실적에 대한 애초 전망은 “경기회복, 물가불안”으로 요약될 수 있었다. 미국과 중국의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수출 호조에 힘입어 경기가 점진적으로 살아나지만 세계적인 활황세에 따른 원자재 가격 급등과 이라크 사태 등에 기인한 원유가 상승이 물가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됐던 것이다. 그런데 이라크 사태가 혼미를 거듭하고 원유 수급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는 불리한 총공급 충격의 직격탄을 맞게 되었다. 이에 따라 현재의 상황은 애초 전망했던 “경기회복, 물가불안”이 아니라 “경기침체, 물가상승”의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세력간 알력이 정제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우리 경제가 처한 어려움을 오로지 대외적 요인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른바 “청와대발 경제불안”의 크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정부의 “분배 위주의 경제 운용 기조”가 기업들의 투자 의욕을 꺾고 현재의 경기침체를 가속화했다고 주장한다. 즉, 애초 예상대로라면 대선자금 문제와 관련하여 지난 봄 재벌 총수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대가로 경기부양을 위한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받았으므로 지금쯤은 경기가 활짝 피었어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된 이유가 중간중간에 터져나온 “번지수가 틀린 얘기”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진단이 전혀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다. 중간중간에 새어나오는 진단과 처방은 그것 자체로 보면 나름대로 일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맥락과는 잘 부합하지 않는 측면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청와대발 경제불안”이라고 알려진 상당수의 사례들은 사실은 경제정책을 둘러싼 관료와 일부 개혁세력간의 알력이 정제되지 않고 흘러나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제없이 흘러나온 모순된 시각은 경제 주체들의 혼란을 가중하고 급기야는 경제의 발목을 잡는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의 방법은 서로가 목소리를 죽인 채 알력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진정한 의미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경제를 보는 시각을 통일하고 경제정책의 담당 라인을 일원화하는 것이다. 이 말은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무소불위의 체제를 구축하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누가 경제정책을 총괄하고, 그는 어떤 곳을 지향하면서 정책을 펼칠 것인지를 명확히 하라는 뜻이다. 그래야 표류하는 경제정책이 제 갈 길을 찾을 수 있다.
문제는 누구의 시각에 맞추고 누가 정책을 담당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하나의 대안은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뭉치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야당의 암묵적 협조를 이끌어내기도 쉽고 관료를 동원해 정책을 구현하는 것도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갖는 두 가지 심각한 문제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선 이 방법은 참여정부를 지지한 정치 세력이 선택했고 기대한 방향으로 경제를 이끌어간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은 모험을 선택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경제부총리로 상징되는 관료집단이 우리 경제의 장기적 진로에 대해 아무런 장기적 대안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경제가 침체를 경험하는 이유에는 경기순환주기상의 어려움에 기인하는 측면도 있지만 성장잠재력이 훼손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관료집단은 경기순환주기를 돌파하는 데에는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지만 생산성 향상을 통해 성장잠재력을 제고하는 데에는 아무런 대책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관료에 의존한다는 것은 단기적으로 닥쳐오는 파도를 그때그때 회피하는 데에만 관심을 쏟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차라리 다른 대안을 택할 것을 제안한다. 단기적인 파도를 넘는 데에만 급급하지 말고 차라리 애초 집권시에 가졌던, 혹은 집권 과정에서 국민들이 부여했던 정책 기조를 선택하고 이를 밀고 나갈 수 있는 사람에게로 경제정책의 권한을 일원화하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모험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약 1년 반 전에 바로 그 모험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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