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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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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폼나게 살아라

등록 2004-09-02 00:00 수정 2020-05-03 04:23

의 인기 절정 필자 7인이 올가을에 읽을 책들을 권한다


사계절 중에 폼 잡기 가장 좋은 계절,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일단 바바리코트 깃을 올려세우거나 꽃무늬 스카프를 걸치고 낙엽 지는 숲길을 걸어보십시다. 선글라스는 옵션입니다. 연인과 ‘나 잡아봐라’를 해도 좋은데, 살짝 좀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어느 우람한 나무 밑에 걸터앉읍시다. 그리고 가을에 잡는 모든 폼들의 절정, 독서를 하는 겁니다. 독서하는 사람은 가을 하늘처럼 아릅답습니다. 어떤 책을 읽느냐고요? 이날만큼은 평소 아끼시던 쇼핑 카탈로그를 가져오지 마세요. 여기 의 인기 절정 필자 7명이 재미있고 의미있고 폼나는 책 7권을 소개합니다. - 편집자


(노석미 지음, 해냄 펴냄)
사소한 것들이 만든 기적

- 김경/ 패션지 피처 디렉터

내가 불행한 단 하나의 이유. 세상이 나에게 책 읽을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거다. 정말로 읽고 싶은 책이 너무너무 많다. 그런데 시간이 없다. 근로 외 시간에는 쇼핑도 해야 하고 텔레비전도 봐야 하고 친구들이랑 술도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우리 보스에게 가을에는 특별히 독서 휴가를 좀 달라 했더니, 독서를 위한 권고 사직이 어떻겠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니까 올가을에도 책 읽기는 다 틀렸다는 얘기다.

그런데 얼마 전 나처럼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 불행한 인간들이 보면 딱 좋을 것 같은 책을 발견했다. 화가 노석미의 그림책 . 난독증에 걸린 사람도 30분이면 다 읽어치울 수 있는데, 이 책의 그림과 글들을 보고 나면 참을 수 없는 일상의 진부함이 문득 새로워지는 일상의 기적으로 슬쩍 뒤바뀌는 것 같다.

흔해빠진 일상의 자취를 그리는 노석미의 그림은 8살짜리 여자아이의 그림처럼 쉽고 단순하다. 게다가 그림 속의 사람들이 왠지 나보다 못나 보여서 더욱 정이 간다. 왠지 슬픈 것 같기도 한데 다시 보면 대체로 웃기다. 때로는 그 반대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림에 곁들여진 짧은 글을 읽고 나면 내 발 밑에서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가 슬며시 일어서는 것 같다. 하지만 다시 보면 역시 특별히 달라진 건 없다.

그게 바로 노석미가 말하는 일상의 기적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 그런데 그런 게 어느 날 불쑥 낯설고 경이롭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노석미는 그때를 놓치지 않는다. 때로는 그림으로, 때로는 글자로 그 순간들을 포착하는데, 따로 또 같이 노는 글과 그림의 매치가 너무 엉뚱하고 절묘해서 일상의 진부함을 훌쩍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로 확장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징그럽게 생긴 문어 다리 하나가 접시 위에 오려진 그림이 있다. 그 그림 위에 이렇게 쓰여 있다. ‘호젓하게!’…. 중요한 것은 사소한 일에 기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노석미는 그 방법을 이토록 유머러스하게 말해준다. 나도 이제 노석미 식으로 감탄하고 싶다. “기적이다. 불황 속에서도 가을이 오다니!”

(이희영 지음, 동서문화사 펴냄)
지혜라는 것의 위대함

- 오귀환 / 전 편집장 · 콘텐츠 큐레이터

“랍비 요한나 벤 자카이는 마침내 로마군에게 패배해 예루살렘성과 신전이 파괴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로마인이 파괴할 수 없는 것을 가져야만 한다. 그것은 교육이다. 교육만이 칼보다 강하다.’ 과격파 유대인들이 철통같이 감시하는 상황에서 자카이는 죽었다고 소문을 내고 관 속에 누워 성 밖으로 탈출한다…. 그는 로마군 사령관을 만나자마자 ‘황제여!’라고 부른다. 곧이어 로마로부터 사자가 도착해 원로원에서 그를 황제로 선출했다고 전하는 바람에 새 황제를 경탄시킨 자카이는 단 한 가지 소원만을 애걸한다. ‘지중해 연안에 있는 작은 대학도시 야브네만은 파괴하지 말아달라.’… 예루살렘은 철저히 파괴됐다. 그러나 야브네의 유대교 대학은 지켜졌다. 그 뒤 2천년, 유대인이 나라 없이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온갖 박해를 견뎌낼 정신적 지주는 바로 이렇게 해서 세워졌다.”

미국의 유대인은 500만~550만명 정도로 전체 인구의 2%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적 부를 약 8~10%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민족효율’이라는 게 가능하다면 평균치의 4~5배인 셈이다. 나아가 미디어와 교육 분야에 집중된 이들의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거의 10배의 효율을 자랑한다는 추산까지도 가능하다.

국내외적으로 어수선한 요즈음, 이희영씨가 쓴 (동서문화사)를 추천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나는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에 분노해왔다. 지금도 그들의 종교적·정치적 독선과 아랍민중에 대한 비인간적 행위를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1천쪽 분량에 가격마저 2만5천원에 이르는 이 책을 꼽는 이유는 새로이 깨닫는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끔찍하도록 강력한 나라들에 둘러싸인 한민족의 장기 생존전략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민족 역사의 절반이 넘는 수천년 세월을 노예로, 포로로, 나라 없는 백성으로 고난받으면서도 끝내 살아남은 유대인에 대해 읽으며 나는 (지식 아닌) 지혜라는 것의 위대함과 교육의 숭고함을 깊이 깨달았다.

(김현원 지음, 고려원북스 펴냄)
물에 무식한 당신을 위해

- 전세일/ 포천중문의대 대체의학대학원 원장

굶어도 물을 마시면서는 한달 이상을 견딜 수 있어도 물 없이는 한 주일을 버티기 어렵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물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 모른 채 무식하게 살아가고 있다. 더구나 식당에서 물 한컵을 마시려면 코카콜라 한병 값을 치러야 하는 외국과 달리 식수를 거의 공짜로 공급받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물의 진가를 모르고 지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자신과 나의 가족과 사회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어떤 물을 어떻게 마셔야 되는지를 아는 것은 환자가 약 먹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불과 3개월 전에 물에 대한 좋은 책이 출간되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연세의대 김현원 교수가 펴낸 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7부로 구성돼 있는데, 우선 자연 환경에 존재하는 물의 신비, 즉 물리적·화학적 신비에서 시작한다. 우주의 모습, 지구 환경의 유지, 생명의 탄생을 물과 관련지어 설명한다. 2부에서는 물의 생화학적이고 생리학적인 성질에 대해 정리한다. 3부에서는 전세계에 자연적으로 흩어져 있는 ‘자연적이며 좋은 생명의 물’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4부에서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좋은 물을 만들어 마실 수 있을까 하는 정보와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그 외에도 최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생체 에너지를 지니게 하는 특별한 물, 물을 이용한 성공적 치료 체험담을 소개하고 있다.

병 중심의 의학에서 건강 중심의 의학으로 그 축이 바뀌면서 질병 퇴치와 건강 증진은 상당 부분 자기 스스로 해야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무엇이든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고, 제대로 하려면 우선 제대로 알아야 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분명히 귀중한 지식의 비타민이 될 것이다.

(강준만 지음, 인물과 사상사 펴냄)
‘박정희 왕국’의 실체를 보라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학 교수

가난도 부(富)도 다 세습화된,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는커녕 미꾸라지들도 먹이가 점차 없어져 떼죽음의 위험이 닥쳐오는 희망 부재의 요즘 ‘불경기 사회’에서 박정희의 유령은 다시 돌아다닌다. 박정희를 ‘역대 대통령 중 제일 성공적인 대통령’으로 아는 10대나 20대들은 박정희가 ‘쿨하게’ 성공한 사장님쯤으로 보이는 듯하다.

성공! 성장! 지금 많은 이들의 마음을 꽉 잡는 이 달콤한 맛의 두 단어 뒤에 숨겨진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알려면 강준만의 을 꼼꼼히 읽었으면 한다. 이 책은 단순히 잘 알려져 있는 박정희 시대의 노동 착취, 인권 유린, 군사주의 유포만을 이야기해주는 것만은 아니다. 이 책에 나타나는 박정희 왕국의 모습은 훨씬 더 다양하고 입체적이다. 박정희를 위시한 정계·재계 요인들이 기생과 연예인들을 끼고 중요 사항을 요정에서 결정하기에 중앙정보부가 요정들을 특수관리하고 대통령 경호실에서 연예인들을 불러내 ‘각하’께 바치는 엽색 공화국, 사회의 꼿꼿한 지주여야 할 교수들이 앞다투어 정권의 평가교수단에 끼워달라고 정부에 떼쓰는 곡학아세의 공화국, 살인적 유신 체제를 한국노총이 “구국통일을 위한 영단”이라고 부르고 사이비 노조의 매수된 간부들이 진정한 현장 투사들을 탄압하는 어용노조의 공화국, 주한미군의 고급장교나 방한 중인 미국 국회의원 등 귀빈들에게 여자를 바치는 매춘 외교의 공화국…. 강준만 책의 교훈을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소탐대실’(小貪大失)일 테다. 성장률 숫자를 거의 종교적으로 숭배한 박정희 일당이 대한민국을 단기·중기적으로 잘나갈 수 있는 생산공장으로 만들었지만 시민사회의 자율성, 농촌의 자생력, 민중의 인간성, 지식인의 자존을 파괴한 ‘야수적 개발 전략’이 이 나라를 장기적으로 매우 불우한 곳으로 만들어놓고 말았다는 것이 필자가 이해하기로 이 책의 뜻이다. 박정희를 ‘쿨한 최고경영자’로 아는 이들이여, 성추행·재산 강탈·매수 공세·공갈협박·고문·살인을 일삼았던 ‘일본 제국의 마지막 장교’ 다카키 마사오의 진짜 모습에 다가가기를 바란다!

(서경식 · 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삼인 펴냄)
‘전후 일본’의 죽음

-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우리는 1945년 패전 이후의 일본을 흔히 ‘전후 일본’이라 부른다. 그런데 우리가 이웃 일본을 ‘전후 일본’이라 부를 수 있는 날은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까? 평화헌법의 개정이 공공연하게 이야기되고, 자위대가 이라크에 파병되는 지금, 일본은 새로운 전쟁의 ‘전야’를 맞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이웃은 이미 또 다른 ‘전전 일본’으로의 첫발을 떼었는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는 상반기에는 탄핵으로 휘둘렸고, 하반기에는 이른바 과거청산 문제로 소용돌이칠 전망이다. 사실 탄핵도 과거청산 없는 민주화가 불러들인 위기 아니었던가? 역시 잘못된 과거를 정리하고 넘어가지 못한 일본에서 정치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망언’을 일삼고, 그렇게 이웃을 자극하는 말과 행동은 일본 내에서 극우정치인의 인기의 원천이 되고 있다.

는 재일동포 작가인 서경식과 철학자인 다카하시 데쓰야 토쿄대 교수의 전쟁의 기억을 둘러싼 대화집이다. 재일동포라는 경계인의 위치에 더하여 비전향 장기수 서승·서준식의 아우인 서경식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고뇌의 깊이와 비판세력이 국가주의에 백기투항하는 분위기 속에서 일본의 마지막 양심의 소리를 내어온 다카하시 데쓰야의 섬세한 날카로움은 우리에게 두고두고 곱씹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이제 어쩔 수 없이 파병국가의 국민이 돼버린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받아내야 할 사죄와 보상만 따지고 있을 수 있을까? 과거를 정리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타인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멀쩡한 사람 잡아다가 간첩으로 모는 과정에서 숱한 의문사가 발생한 나라에서 과거사 조사하자면 좌경친북부터 조사해야 한다는 어지러운 소리가 들리는 이때에 꼭 읽어볼 책이다.

(스콧 터로 지음, 정영묵 옮김, 교양인 펴냄)
‘죽을 놈’은 죽어야 하는가

- 오지혜/ 배우

연쇄살인 사건으로 전국민이 충격에 휩싸여 있는 이때에 하필이면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책이 나왔다. 이 그것이다. 일단 출판사의 용기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나 역시 이 책을 추천하는 데에도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피해자 가족의 상처만 살피기엔 사형제가 가진 모순은 너무나도 크기에 심호흡 한번 하고 이 책을 독자 여러분께 마음을 다해 추천한다.

수십년 동안 세계 각국에서 사형제의 존폐 문제로 몸살을 앓는 가장 큰 이유는 피해자 가족의 상처를 국가가 대신 복수해줘야 한다는 부채감 때문이다. 정말 용서할 수 없을 거다. 내가 그 경우를 당한다면 난 복수심에 미쳐버릴 거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제도가 살인을 하는 것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개인이 타인의 생명을 앗아갈 자격이 없듯이 국가라고 해서 그럴 자격이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책의 저자 스콧 터로는 소설가인 동시에 검사 출신의 변호사이기도 해서 실제로 본인이 오랜 세월 동안 강력살인 사건들을 가까이서 접한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자신도 사형제 찬성론자였다가 어떻게 반대 입장에 서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자세한 자료와 함께 인간성에 대한 깊은 성찰로 독자를 설득한다.

법학자 김두식 교수도 이 책의 머리글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헌법 질서 하에서 인간 존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생명권을 적극적으로 침해하는 형벌의 존재는 국가의 존재 이유 자체를 무색케 하는 엄청난 모순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더군다나 인간이 내리는 판단엔 완벽이란 있을 수 없으므로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하는 경우를 결코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사형수의 대부분이 사회의 하층민인 걸로 봐서도 무전유죄 유전무죄임도 잊어선 안 될 것이고.

‘죽을 놈이 죽는데도 눈물이 난다.’ 사형수의 죽음을 다룬 한 영화의 카피였다.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정말로 ‘죽을 놈’이 죽는데도 눈물이 났다. 어찌됐든 그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얀 소피 브라슴 지음, 최정수 옮김, 문학동네 펴냄)
10대들아, 숨쉬어

- 겸/ 탈학교생

내가 존재하기 전 이미 세상은 살아가기 위한 답들을 준비해두었다. 하지만 그 답들과 규칙들에 익숙해지기보단 불편함을 일찍이 느꼈고, 그 느낌들을 부정확한 표현으로 일기장에 채워갔다.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들이 지루했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막막했다. 낯선 세상과 시선들을 피해 누구도 진입할 수 없이 견고한 나의 세계를 형성하고 그 속으로 파고들었다. “자란다는 것은 나에게는 구토를 일으킬 만한 일이었다.” 동시에 “나는 혼자였다. 그것은 나에게 끝없이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사는 것이 괴로웠다”.

17살 소녀 작가가 쓴 첫 소설 는 사춘기를 겪는 위태로운 10대 소녀가 친구를 살인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써내려간다. “타인에 대한 몰이해가 처음으로 글을 쓰도록 나를 부추겼다.” 소설 의 주인공 샤를렌의 고백은 작가 안 소피 브라슴이 글을 쓰게 된 동기와 구분되기 힘들 것이다. 마치 작가 자신이 겪어온 삶을 열정적 허구로 창작한 듯, 소설은 지은이 또는 샤를렌의 일기장과 같이 느껴진다. 주인공 샤를렌은 특별한 것 없는 예민하고 우울한 소녀이다. 감옥에 갇힌 샤를렌의 고백으로부터 시작하는 글은 평범한 소녀가 어떻게 그곳에 있게 됐는지 추적하는 가벼운 추리 형식으로 구성되어, 독자들이 흥미롭게 글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소녀가 살인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사춘기 소녀가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친구들을 접하고 이별하며 자아를 찾으려는 여정에 있다.

다소 순박하게 말하자면 는 나와 그 또래들이 겪어온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인) 자기를 찾기 위한 뼈아픈 성장기다. 숨 막히는 사회의 스타트 지점에 막 올라선 10대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지은이가 그랬듯 속삭여본다. 얘들아, “숨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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