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성장률 위한 정부의 경제정책… 물가 불안, 부동산 거품에도 건설경기 부양책 택해
▣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지난 2분기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5.5% 성장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1분기의 5.4%보다도 높은 것이다. 이로써 지난해 2분기 2.2% 성장 이후 4분기 연속 성장률 증가세가 이어졌다. 그러나 성장의 질은 썩 좋지 않다. 소비는 0.7% 감소로 전분기의 -1.4%보다는 좋아졌지만, 성장률 상승에는 정부 지출이 1분기 2.8% 증가에서 4.3% 증가로 늘어난 것이 반영돼 있다. 국내총소득은 전분기 4.6% 증가에서 2분기 4.5% 증가로 소폭 후퇴했다. 그렇다고 해도, 어려운 여건 아래서 5%의 성장률 자체는 비교적 높은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무엇보다 기름값 상승세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유가상승,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영향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소환투표가 부결됐음에도 국제유가의 상승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서부텍사스중질유값은 배럴당 50달러에 육박했다. 기름값 상승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여파는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 국내에 실제 도입되는 유가가 상승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또 제조업체의 수출도 미국, 중국 등 주요 수출국의 경제가 기름값 상승의 영향을 받은 이후에 우리 경제가 본격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고유가 시기가 얼마나 길어지느냐에 따라 충격의 정도는 달라지겠지만, 어쨌든 물가상승과 경기하강이 우려되는 국면이다. 2분기의 경제성장률이 높게 나타났음에도 개별 경제지표들이 보여준 징조는 이미 좋지 않았다. 지난 7월까지 경기 선행지수와 동행지수가 3개월 연속 하락했던 것이다.
이헌재 부총리는 8월20일 시중에 퍼지고 있는 경기 비관론에도 “올해 5%대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장 변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분기 들어 설비투자가 5분기 만에 플러스로 돌아서고 소비도 점차 살아나는 등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정부 예상대로 가고 있다”며 “각종 경기촉진 정책들이 진행된다면 큰 무리 없이 경제가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 부총리의 말을 너무 낙관적인 것이라고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상반기에 이미 5.4% 성장한 만큼, 하반기에 4.6%가량만 성장해도 연간으로 5%대 성장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도 지난달 올 하반기 성장률을 5.6%에서 5.0%로 조정했다. 정작 문제는 단기적으로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 과연 장기적으로도 바람직하게 작용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자칫 작은 매를 피하려다, 더 큰 매를 맞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정부의 경제정책은 물가보다 성장률을 지켜내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12일 한국은행은 콜금리 목표치를 연 3.75%에서 3.5%로 0.25%포인트 내렸다. 한국은행의 이런 결정은 예상을 깬 것으로 ‘깜짝쇼’라는 말까지 나왔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연방기금 금리를 올린데다 국내 소비자물가도 7월 현재 전년 동월 대비 4.4%나 오를 정도로 우려스러운 상황이었던 까닭이다. 물가안정을 책임지는 한국은행이 그런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금리 인하는 흔히 투자와 소비를 촉진하는 효과를 낳는다고 설명된다. 한국은행은 시장금리와 대출금리가 같은 폭으로 떨어질 경우, 이자수익과 이자부담의 감소를 모두 감안할 때 가계는 4천억원, 기업은 8천억원 이자수지가 좋아진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동안의 금리 인하에도 투자와 소비는 옴짝달싹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금리 인하가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그동안의 저금리는 주식에서 부동산으로 자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쪽으로만 작용했다. 오히려 부동산 거품은 가계의 부동산 매입에 따른 이자부담을 키워, 시차를 두고 소비 침체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금리효과 별다른 효과 못 봐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는 고유가로 인한 경기후퇴 우려에 정부가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를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 고유가는 어차피 물가 상승이나 성장 둔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기름값이 10% 오를 경우,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15%포인트 안팎 낮아지고 소비자물가는 0.25% 오른다는 게 한국은행의 분석이다. 지난해 배럴당 26달러대이던 두바이유가 현재 40달러를 넘겼으므로, 이런 상태가 1년간 유지될 경우 성장률은 0.75%포인트 낮아지고 물가는 1.25%포인트 오른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은 이번 금리 인하가 물가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수요가 늘어 물가가 오르는 국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리를 내린 것은 고유가 상황에서 성장률의 저하보다는 물가 상승을 감수하는 쪽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을 선언한 셈이다.
정부가 건설경기 연착륙을 강조하고 본격적인 정책 집행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건설투자는 지난해 7%대에서 올해 4%대 안팎으로 둔화됐다. 정부는 경기 후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건설경기마저 둔화되면 실업률이 늘고 성장률이 낮아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지난 8월17일 열린우리당 고위당정회의가 끝난 뒤 안병엽 제3정조위원장은 “현 시점에서 건설경기의 연착륙이 중요하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정부대책은 건설교통부가 20일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해 투기지역 지정제도를 내놓은 지 20개월 만에 처음으로 주택투기 지역 7곳을 해제함으로써 신호탄을 올렸다. 안 위원장은 “연기금이 교육시설이나 사회복지 시설에 투자할 때 정부가 수익을 보장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은행의 콜금리 인하에 따라 주택금융공사가 모기지론의 금리를 낮춘 것도 건설경기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건설경기 연착륙’을 명목으로 추진되는 이런 정책이 부동산 거품을 재연시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건설경기는 침체라기보다는 단지 과열이 가라앉고 있는 국면이다. 또 그동안 폭등했던 집값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을 뿐, 거품이 제거되는 상황이 아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전국의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5월까지 상승세가 이어졌으며 6월에 0.1%, 7월에 0.2% 하락했을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10·29 대책의 뼈대인 보유세 강화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재산세율 인하로 빛이 바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종합부동산세는 부동산 과세 투명성과 형평성을 높이고 투기를 억제하는 게 목적이고 세입을 늘리자는 게 목적이 아닌 만큼 그 대상을 최소화하고 과표 현실화에 따라 세원을 조정하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경실련은 “이런 일련의 흐름이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가 맡고 있던 부동산 정책의 총괄조정 기능을 새롭게 신설된 부동산정책회의로 넘기고, 그 실무 운영을 재경부가 맡도록 한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지적했다.
주택투기지역 해제… 부동산 거품을 보호?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은 아직 부동산 거품 재연을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쪽이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원은 “정부의 최근 정책은 보유세 강화라는 기조 속에서 속도를 조절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주택 공급이 많아 투기가 재연될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이 부동산 거품을 ‘보호’하는 쪽으로 나가는 것은 분명해지고 있다. 과연 건설경기 후퇴로 인한 실업의 증가와 거품이 잔뜩 낀 주택가격 가운데 서민들은 어느 쪽에서 더 큰 고통을 느낄까? 서민들은 지금 왼쪽 뺨이든 오른쪽 뺨이든 맞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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