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HIV 양성반응자 740만명으로 추산… 예방 게을리하면 세계 제일의 에이즈 대륙 될 수도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아프리카는 아시아의 미래다?
아시아가 아프리카에 이어 에이즈 대륙이 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6월 말 유엔에이즈(UNAIDS)가 낸 ‘2004년 세계 에이즈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 아시아의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양성반응자 수는 740만명(이하 통계는 추정치)으로 추산된다. 전세계 양성반응자 3780만명 중 2500만명을 차지하는 사하라 사막 남쪽의 아프리카 지역에 비해 아직은 적은 수다. 하지만 최근 아시아의 양성반응자 수는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에만 아시아에 약 110만명의 양성반응자가 추가로 생겼다. 새로운 양성반응자의 4명 중 1명이 아시아 사람인 셈이다. 아시아 각국이 에이즈 예방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2010년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세계 에이즈 인구의 40%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인도, 남아공 추월은 시간 문제다
지난 7월 타이 방콕에서 열린 제15회 세계에이즈회의에서도 아시아의 에이즈 문제가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회의 기간에 유엔에이즈, 세계보건기구 등 국제기구는 아시아 지역에 관한 보고서를 앞다투어 제출했다. 유엔에이즈의 피터 피오트 사무국장은 “아시아는 현재 15년 전 아프리카와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 인구의 60%가 살고 있는 아시아에서 에이즈가 폭발적으로 확산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는 경고다. 세계 언론도 아시아의 상황을 우려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영국 는 “아시아 국가가 에이즈 확산을 막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아시아는 에이즈 대재앙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인도와 중국은 세계 에이즈 문제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인도는 2003년 말 현재 양성반응자 510여만여명으로 530만명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어 2번째로 HIV 양성반응자가 많은 나라가 됐다. 인도의 에이즈 확산 속도는 무척 빨라 인도가 남아공보다 HIV 양성반응자 수가 많아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유엔은 적절한 예방 노력이 따르지 않으면 2010년까지 인도에서만 양성반응자가 1천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의 상황도 심각하다. 중국에는 현재 공식 통계상 84만여명의 양성반응자가 있다. 아직은 ‘적은’ 수치다. 하지만 중국의 한해 신규 HIV 양성반응자 수는 2002년 1만명에서 2003년 2만1천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감염 확산 속도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 역시 2010년에 양성반응자가 1천만명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는 마약 중독자 중 HIV 양성반응 비율이 높다. 신장자치구의 경우, 마약 중독자 가운데 35~80%가 HIV 양성반응자로 추정된다. 가난한 농촌 지역에서 성행하는 혈장 매혈도 에이즈 확산의 통로가 되고 있다. 중국 매혈자의 10~20%가 HIV 양성반응자로 추정된다. 중국의 허난성에는 700명의 주민 대부분이 매혈을 통해 에이즈에 걸린 ‘에이즈 마을’이 있었을 정도다. 피터 피오트 유엔에이즈 사무국장은 “중국 정부가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향후 2년 안에 HIV 양성반응자 수가 2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중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몰고 올 시한폭탄이 재깍거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인구 대국인 인도네시아는 약 15만명의 HIV 양성반응자가 있다는 공식 통계가 있으나 보건전문가들은 실제 감염인 수는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더구나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는 에이즈 예방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에이즈가 빠르게 퍼질 우려가 크다.
다른 대륙보다 성매매 감염비율 높아
인도차이나반도는 현재 아시아에서 에이즈 감염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에이즈 발생이 오래됐고, 확산 속도가 빨랐기 때문이다. 유엔에이즈의 통계(추정치)에 따르면, 타이의 HIV 양성반응자는 57만명, 버마는 37만명, 캄보디아는 17만명에 이른다. 유엔의 추정치에서 베트남의 양성반응자는 22만여명으로 인구의 0.3%를 차지한다. 캄보디아는 15~49살의 성인 중 2.7%, 타이는 1.8%가 HIV에 감염돼 있다. 인도차이나반도 국가는 국경을 넘나드는 이주노동자들이 많아 국가간 감염 속도도 빠른 편이다. 다행히 타이와 캄보디아 등에서는 무료 콘돔 배포 등을 통해 확산 속도가 한풀 꺾이고 있다. 타이는 1991년 한해 14만명이 에이즈에 새로 감염됐으나 2003년에는 2만1천명이 감염됐다. 하지만 타이 정부가 에이즈 확산 저지를 명목으로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인명이 희생되는 등 부작용도 잇따르고 있다.
극동아시아 지역은 비교적 확산 속도가 느린 편이다. 유엔에이즈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양성반응자가 8300명으로 추산됐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지만, 지난 2002년 4천명으로 추산된 데 비하면 2.1배 늘어났다. 한국 보건복지부의 공식 통계인 2500여명에 비하면 3배가 넘는 수치다. 일본과 홍콩도 각각 1만2천명, 2600명으로 추산돼 양성반응자의 절대 숫자는 적다. 하지만 감염 확산 추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에이즈 문제의 ‘아시아적 특성’도 있다. 아시아에서는 성매매를 통한 감염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서구와 아프리카의 경우, 부부감염 또는 마약주사기를 통한 감염이 많은 것과 다른 특징이다. 이 결과 서구와 아프리카에서는 여성 양성반응자의 비율이 50%에 달하지만 아시아에서는 10%에 불과하다. 또 선원, 건설노동자 등 아시아의 이주노동자를 통해서도 에이즈가 확산되고 있다. 빈곤을 견디지 못하고 국경을 넘나들며 매매춘을 하는 여성들도 에이즈 확산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타이-버마, 캄보디아-베트남 국경의 매춘 여성은 에이즈 확산의 통로가 되기도 했다. 중국의 경우 도로 여건이 개선되고 이동이 많아지면서 감염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빈농과 소외 계층에 집중됐던 에이즈 감염이 대도시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에이즈 예방교육의 부재도 확산의 주요 원인이다. 아시아 각국에서 성개방 풍토가 확산되고 있지만 성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15~24살의 필리핀 청소년의 23%가 성관계를 갖고 있지만, 이들 중 70%는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를 인용해 발표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같은 이슬람 국가에서는 매춘 여성이나 마약 사용자들만이 에이즈에 감염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질병의 위기 넘어 인권의 위기로
HIV 양성반응자에 대한 인권침해도 에이즈 확산을 부추기고 있다. 일부 아시아 국가는 HIV 양성반응자를 국가의 위신을 하락시킨 존재로 보고 이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HIV 양성반응자는 또 지역사회의 차별, 직장에서 감염인 해고, 감염된 이주노동자 강제 추방 등 가혹한 인권유린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의 에이즈에 대한 편견 탓에 양성반응자들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감염사실을 숨긴 채 음지로 숨어들어야 한다. 이런 인권침해 현실은 에이즈 확산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 각국은 양성반응자의 인권보호와 에이즈 예방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유엔에이즈 특별대사인 나피스 사딕 박사는 아시아 각국이 마약주사기 교환 프로그램과 같은 예방 프로그램을 도입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동성애를 금기시하고 매매춘을 죄악시하는 풍조가 에이즈 예방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아시아의 에이즈 문제는 질병의 위기를 넘어 인권의 위기로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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