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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담임’의 노심초사 심정

등록 2004-08-12 00:00 수정 2020-05-03 04:23

신박제 한국선수단 총단장의 각오… 선수들 ‘민원’ 해결 위해 선수만큼 땀 흘린다

▣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한국선수단의 신박제 총단장((주)필립스전자 대표이사)은 올림픽 개막을 앞둔 선수단장의 심정을, 수능시험을 코앞에 둔 ‘고3 담임’에 빗댔다. 제자들이 시험 당일 한순간의 실수로 낭패를 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고3 담임선생님의 모습에 일종의 ‘동병상련’까지 느낀다. 신 단장은 국가대표 선수들이 막바지 컨디션 조절에 실패하지 않도록 예민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 그는 지난 8월6일 선수단과 함께 아테네로 출국하면서 “태릉에서 흘린 땀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출사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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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아테네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의 목표는 세계 10위다. 금메달 13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3개 등 총 36개의 메달로,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잃었던 ‘10위 고지’를 탈환하겠다는 각오다. 그러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그리스의 땡볕 더위와 시차, 유럽의 텃세 등 불리한 조건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가대표 선수들의 정신력도 예전같지 않다. 1980∼90년대처럼 선수들의 ‘헝그리 정신’에 기대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국내 선수들에게 새로운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번 대회에서는 인센티브를 많이 준비했다. 정부에서 주는 포상금 액수도 상향 조정했고, 각 종목별 협회도 메달을 딴 선수들에게 거액의 포상금을 내걸었다.

신 단장이 선수단 총지휘의 중책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도 선수단장으로 활약했다. 올림픽은 선수들만 땀을 흘리는 게 아니다. 임원들도 선수들 못지않게 바쁘게 뛰어다녀야 한다. 선수단장의 가장 큰 임무는 선수들의 ‘민원’을 해결해주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수들이 아무런 불편 없이 경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애로사항을 해결해야 한다. 각국 선수단장들이 ‘해결사’의 면모를 겨루는 무대는 매일 아침 7시30분에 열리는 전체 단장 회의다. 이 회의에서 하루 5∼6차례에 불과한 발언 기회를 따내기 위해 치열한 ‘마이크 쟁탈전’이 벌어진다. 마이크만 먼저 낚아챈다고 이기는 게 아니다. 유창한 영어와 논리적인 언변으로 조직위원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신 회장은 애틀랜타에서 경기 기간 동안 매일 발언권을 따낸 화려한 ‘전적’을 자랑한다.

특히 이번 대회는 테러 위협 때문에 선수단장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선수단을 테러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는 게 선수단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더욱이 이라크 파병으로 한국선수단에 대한 테러 위협은 다른 나라에 비해 심각한 수준이다. 올림픽 조직위원회와 수없이 많은 신경전을 벌여야 할 것을 생각하면 신 단장은 지금부터 골치가 아프다. “우리도 이제 ‘금메달 지상주의’를 벗어나야 할 때가 됐습니다.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선수들이 흘린 땀은 잊지 말아주세요.” 신 단장은 “국내 스포츠팬들께 간곡하게 부탁드린다”며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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