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을 점투성이로 만든 꿈속의 깨강정… 피범벅이 된 채 다시 그 촌스런 과자를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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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벽할 뻔한 아침이었다. 그 일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나는 내 몸에 큰 사건이 터졌단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갑자기 생리가 터졌다거나 이마에 혹이 난 것처럼 귀엽게 받아넘길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거울 속의 나는 깨강정 같았다. 마치 깻가루가 뿌려진 듯 얼굴, 손등, 발바닥 할 것 없이 온몸이 점투성이였다. 나는 혀를 길게 내밀었다. 설태가 가득 낀 혓바닥에도 점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나는 손가락 한 마디에 있던 점을 스무개까지 세고 난 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이젠 연애도 할 수 없잖아!
“이건 꿈이야!”
전날 꿈을 꾼 것은 사실이다. 나는 볼이 터질 만큼 깨강정을 입속 가득 쑤셔넣은 채, 우두둑 우두둑 소리까지 내며 먹고 있었다. 까칠까칠한 깨강정이 잇몸을 자극했다. 달달한 맛보다는 그 촉감이 날 미치게 했다. 원래 깨강정처럼 촌스러운 과자는 좋아하지 않지만 웬일인지 너무나 맛있어서 바닥에 남은 부스러기까지 열심히 핥았다. 물론 꿈속에서 말이다. 나는 아직도 혀 위에 깻가루가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은 것만 같아, 윗니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하지만 점은 수박씨처럼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밖에 나갈 수도 없고 친구들을 만날 수도 없으며 연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평생 집안에 갇힌 채 바깥을 그리워하는 생활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갑자기 왈칵 울음이 쏟아졌다. 문득 옛 친구와의 중요한 약속을 못 지킬 수도 있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초등학교 동창인 지환과 10년 만에 만나기로 했던 것인데. 난 차마 그 징그러운 점들을 내보일 수 없었다. 그 친구는 나를 짝사랑했던 아이였고 난 그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약속 취소를 하기 위해 전화를 들어 ‘나야. 오늘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셔서…’라고 말하려다 너무 뻔한 핑계인 것 같아 그만두었다. 머리도 나쁜 주제에, 순발력까지 없는 나. 이제 심지어 점투성이가 되어버린 나는 완전히 자신감을 상실하고 말았다. 적당한 핑곗거리가 없었기 때문에 난 결국 외출 채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옷장에서 두꺼운 터틀넥 스웨터와 바닥까지 내려오는 긴치마를 입었다. 양말도 두겹이나 신었고 빨간 털목도리와 장갑 세트, 작은 챙이 달린 까만 야구모자와 심지어 선글라스까지 착용했으니 내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난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얼굴에다 파우더를 열심히 발라서 점이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분을 바른 얼굴은 마치 화강암처럼 굳어 있었다. 나는 최고로 무더운 여름날 그렇게 어색한 복장으로 거리로 나섰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점이 거의 드러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나는 뒤뚱뒤뚱거리며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을 찾아갔다.
아파, 깨강정이 날 아프게 해
나는 뚱뚱한 몸을 벤치에 거의 눕히다시피 해서 앉았다. 조금 두리번거리고 있으려니까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역삼각형으로 생긴 얼굴에 새하얀 피부, 까만 눈동자의 남자는 많이 낯이 익었다.
“혹시 구슬이니?”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흰 와이셔츠를 손으로 팔랑팔랑 부채질하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살짝 바람이 불자, 땀에 젖은 등이 갑자기 서늘해졌다. 그는 피고 있던 담배를 땅에 떨어뜨리고 사정없이 비벼끄며 말했다.
“나 지환이야.”
그가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그는 나의 두꺼운 장갑에 손을 갖다대며 크게 웃었는데, 그때 이 사이로 치아교정기가 보였다.
“대체 이 한여름에 혼자 한증막 놀이 하니? 그 선글라스는 또 뭐야? 오랜만에 만난 친구 얼굴 구경 좀 해보자.”
그가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내 선글라스에 손을 대려 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피하다가 엉덩이로 그를 깔아뭉개고 말았다.
“미,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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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지환이 밑에서 바둥대는 바람에 난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고 모자가 벗겨졌다. 장난기가 많았던 지환은 때를 놓치지 않고 내 선글라스를 벗긴 뒤 통쾌하게 웃었다. 나는 바닥에 누워서 햇빛에 반사되어 까맣게 빛나는 지환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교정기를 달고 있는 그의 입은 거대한 철골이 달라붙은 타일같이 보였다. 나는 그의 치아교정기가 고장난 로봇처럼 보였다. 로봇은 당장이라도 굉음을 내며 날 할퀼 듯이 번뜩였다. 난 그 금속 물체가 너무 무서워서 눈을 꼭 감고 말았다. 제발, 제발, 나를 놓아줘.
그때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주위로 몰려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어떤 꼬마가 신나 죽겠다는 목소리로 외쳤다.
“괴물이야, 엄마. 점박이 괴물!”
그 철들지 않은 쇳소리는 나의 심장을 두 줄로 할퀴어버렸다. 나는 두더지처럼 땅이라도 파고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수치스러웠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으로 도망쳤다. 아무도 보지 않는 지하의 숲을 달렸다.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채. 결국 난 어떤 몸과 부딪쳐 다시 한번 나뒹굴고 말았다. 이미 장갑 한짝은 달아났고 목도리도 다 풀어져 목에 대충 걸쳐진 상태였다. 숨이 심하게 차오른데다, 더위마저 날 미칠 듯이 아프게 만들었다. 아니, 실은 나의 깨강정이 날 아프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바닥에 움츠린 채 신음하고 있을 때 나직한 목소리가 내 의식을 깨웠다.
“구슬아, 괜찮니?”
지환이었다. 난 문 닫힌 약국 앞에 엎드려 있었다. 그는 나를 벽에 일으켜 세워주고 자신도 내 옆에 앉았다. 나는 내 점이 다시 부끄러워졌기 때문에 무릎을 끌어당겨 고개를 푹 숙였다. 지환은 나의 고개를 살짝 들어올리고 한없이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난 지레 겁을 먹고 말했다.
“징그럽지?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온몸에 점이 생겨버렸어.”
“아니. 나도 네 심정을 알 것만 같아.”
그의 치아교정기 로봇이 나에게 점점 다가왔다. 지환은 교정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도 부끄러웠어. 이것 때문에. 꼭 치아 감옥에 갇힌 것만 같아. 날 좀 감옥에서 꺼내줄래?”
치아교정기 로봇은 끽끽 소리를 내며 내 입가로 바짝 다가왔다. 지환은 뻣뻣해진 내 목 뒷덜미를 잡은 뒤 눈을 감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난 긴장이 풀려 그가 하는 대로 몸을 맡기고 말았다. 그와 나의 입술이 살짝 닿는가 싶더니 어느덧 그의 입이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처음은 늘 아픈 것일까? 치아교정기 로봇과의 첫 키스는 서늘할 정도로 뜨거웠고 또 많이 아팠다. 난 꿈속에서 달콤한 깨강정을 핥았던 것처럼 그의 입술을 핥았다.
내 치마 위로 물컹한 액체가…
1분 정도 지났을까. 입술에서 아리고 시큼한 맛이 느껴졌다. 우린 서로의 입을 떼고 살짝 눈을 떴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지환은 입이 온통 피범벅이 된 채 약간 벌리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심하게 저려왔다. 갑자기 내 치마 위로 물컹한 액체가 뚝 떨어졌다. 벌겋게 번지는 그 핏물은 내 입술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난 기계적으로 손을 입술에 갖다댔다. 손끝에서 마치 찢어진 붕대를 만지고 있는 느낌이 났다. 내 잇몸은 치아교정기가 밀고 지나가 움푹 파였고 그 사이로 핏물이 고여서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환의 입은 핏물을 가득 머금은 채 가느다란 선을 그리고 있었다. 입술이 너무나 아파오는 순간, 나는 난데없이 깨강정이 생각났다. 무수히 많은 깨알들이 붙어 있는 그 촌스러운 과자가 말이다. 나의 입은 애타게 깨강정을 찾고 있지만 난 그것이 정말로 배가 고파서인지, 입술이 아파서인지, 손가락이 저려서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는 욕구불만이 가득한 사람처럼 미친 듯이 깨강정이 먹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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