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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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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과 사업을 바꿀 것인가

등록 2004-08-06 00:00 수정 2020-05-03 04:23

아르빌에서 사업 모색하는 위험한 한국인들… 1억원 현상금 걸린 교민들 안전대책 마련 시급

▣ 아르빌= 김영미/ 분쟁취재 전문 프리랜서 PD

한국군이 아르빌에 들어오자 갑자기 한국인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처음 그들은 시내 곳곳의 호텔에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모여 있었다. 하지만 아르빌의 치안 상황을 염려한 한국 정부는 그들 모두를 자이툰 부대 주둔지 텐트로 불러들였다. 교민들은 일반 호텔에 머물 수 없고, 경호 지원을 받지 않고는 시내를 다닐 수 없다는 한국 정부의 지시 때문이다. 이렇게 모여든 교민이 아르빌에만 8월1일 현재 28명에 이른다.

지난해 4월 미군의 바그다드 함락 이후 가장 인기를 끌었던 위성수신 텔레비전은 현지 한국 기업에 엄청난 매출을 안겼다. 이뿐만 아니라 담요나 전자제품, 중고차, 지금은 휴대전화까지 한국 제품은 이라크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가 높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재미를 보려는 한국 사업가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건설부터 인터넷 사업까지 각종 아이템을 들고 갖가지 위험과 무더운 날씨 등을 아랑곳하지 않고 맨몸으로 뛰어들어 이라크 전역을 쏘다니고 있다.

자이툰 부대 거주하는 교민 28명

그들 가운데는 한달에 100만달러가량 매출을 올리던 가나무역도 있었고, 지불보증이 확실한 미국 기업의 하청으로 들어온 오무전기도 있었다. 하지만 두 업체 모두 인명피해를 보는 불상사를 겪어야 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라크는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사업가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이라크에 오지만, 여기는 아직 그럴 환경이 안 된다. 안일하게 생각했다간 큰코다치는 게 오늘날 이라크의 현실이다.

한국에서 온 사업가들에게 “위험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면 십중팔구는 “그런 것 따지면서 어떻게 사업을 하느냐. 그리고 본인은 군대 시절도 겪었고 해서 이런 것은 문제가 안 된다”라고 말한다. 한국 사람 특유의 호기도 있지만 본인에게 직접 닥치지 않는 한 위험을 미리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은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무리하게 위험한 모술이나 티크리트 등도 거침없이 다니곤 했다. 그래서 나온 결과가 오무전기 직원이 탄 차량에 대한 총격 사건이나 김선일씨 피살 사건 들이다. 그리고 이들 업체는 이라크에서 비교적 돈버는 재미를 봤지만 나중에는 인명피해로 엄청난 타격을 입어야 했다.

흥미로운 현상은 그럼에도 아르빌에 적잖은 기업인들이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벌써 28명이나 되는 비즈니스 관계자들이 머물고 있다. 이들 대다수는 아르빌에 주둔하는 한국군과 관련된 업체들에 소속돼 있다. 식당 주방장 일을 맡은 최아무개씨는 “여기는 모든 게 불편하다”면서도 “일단 여기에 온 이상 그냥 떠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맡은 바 역할은 다하고 떠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아르빌 정부와 손잡고 무슨 사업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들어온 사람들도 있다. 한국에는 아르빌에서 사업할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한다. 이들은 위험천만한 암만~바그다드 경로를 피해서 터키 국경을 넘어 아르빌로 들어온다. 그리고 아르빌은 바그다드에 견주어 안전할 거라는 기대를 하고 온다. 아르빌이나 이라크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모험을 하다시피 이곳에 와서 현지인들과 사업을 벌이려 한다.

그러나 이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누군가 필자에게 이라크에서 사업을 벌이고 싶다면서 의견을 구한다면 “지금은 안 된다”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라크는 아직 전쟁 중이기 때문이다. 70년대 중동 붐 이후 사막에서의 한국인들의 사업 진출은 지금도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라크와 인접한 쿠웨이트나 사우디아라비아 교민들에게 이라크는 기회의 땅으로 비칠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곳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1년 전에 아르빌에 왔다는 김아무개씨는 “이곳이 위험한 것을 왜 모르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생계 문제도 있고, 전재산을 투자한 상황에서 그냥 떠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앞으로 신변안전에 더 신경쓰겠다는 말은 잊지 않았다. 그 밖에 “어쩔 수 없이 왔다”며 “맡은 일만 마치면 당장이라도 떠나겠다”는 전기업체 직원도 있었다.

아르빌 정부, 자본 유치 위해 불안 숨겨

한국 사람 대다수는 바그다드에 비해 아르빌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터키 국경을 넘어온다. 하지만 아르빌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아르빌 정부는 안전하다고 큰소리를 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어디까지나 바그다드에 비해 조금 낫다는 정도일 뿐이다. 아르빌 정부 치안정보국의 파잘 미라니 국장은 “바그다드에서는 하루에 수십명이 죽는데 우리는 몇명 죽지 않는다. 폭탄 사건도 겨우 두번밖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그의 주장으로 아르빌 치안의 안정성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지난 2월에 일어난 아르빌 당사 폭탄 사고는 아르빌 주지사를 비롯해 312명의 사상자를 낳았고, 한달 전 일어난 폭탄 사고는 문공부 장관까지 부상을 입히는 큰 사고였다. 이라크에 안전지대는 더 이상 없다.

아르빌 정부가 이곳 치안의 안전을 주장하는 것은 아르빌 정부가 현재 심각한 경제난에 처해 있다는 점과 무관치 않다. 이 와중에 치안이 불안하다고 인정하면 다른 나라 자본을 유치하기가 더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 아르빌 공항은 프랑스나 영국 등에서 자본을 유치해 완공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한국군이 아르빌에 주둔하자 이번에는 한국 정부나 기업들의 투자 유치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이런 판에 아르빌의 치안 불안을 정부가 인정한다면 누가 아르빌에 투자를 하겠는가. 그래서 안전하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한국 기업인들에게 손짓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 중인 이라크는 그 무엇도 보장해줄 수 없다.

현재 한국군 주둔지 건설를 맡고 있는 업체 관계자나 개인 사업 목적으로 아르빌에 들어온 교민들은 자이툰 부대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텐트에 비좁게 마련된 침대에서 자고 자이툰 부대원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 날은 무덥고 화장실과 세탁 등 호텔에 견주면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밤 10시까지는 부대로 복귀해야 하고, 하루에 두 차례 이상 부대에 이상 유무를 보고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가 크게 제한받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불안한 치안 속에 호텔에 개별적으로 숙박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다들 불만 없이 따르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교민들이 한국군 주둔지에 머무는 일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다들 돈벌러 이곳에 온 탓에 아르빌 정부 인사들을 저녁 늦게 만나야 하는 경우도 있고, 각자의 개인 볼일들도 있었다. 호텔보다 불편한 잠자리와 시설을 감수해야 하는 것도 고역이다. 그래서 잡음이 많다. 자유롭게 살던 민간인들이 군인의 통제를 따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민간인들을 통제해야 하는 한국군들의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생전 해본 적이 없는 영사 업무를 봐야 하고, 교민들의 나이가 다들 많은지라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 매일 명단을 챙기고 불편 사항을 해결해야 한다. 혹시 밤 10시가 넘어서 들어오는 교민이 있으면 잠도 못 이루고 늦도록 기다리는 일과가 반복되고 있다. 이런 마찰들을 겪다가 지금은 조금 사정이 나아졌다. 양쪽이 서로 잘 조율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곳은 하루 앞 치안 사정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교민들도 자이툰 부대의 규칙을 잘 따르고 가능한 한 서로 피곤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번주부터는 교민들의 경호를 위해 쿠르드 군인인 페슈메르가를 투입할 예정이다. 한국 교민 1명당 2명의 페슈메르가 군인과 차량을 제공해 교민들의 신변을 보호한다.

아르빌-바그다드 영사 업무 공조 안 돼

그렇다고 교민 관리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이툰 부대나 한국 대사관에서 파악할 수 없는 한국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르빌 시내는 좁아서 돌아다니는 한국인이 있으면 금방 눈에 띈다. 하지만 이라크 전역에는 어쩌다가 파악이 안 되는 한국인들이 더러 있을 수 있다. 그런 한국인들이 있다면 위험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이라크의 국경은 개전 이후 거의 무방비로 열려 있다. 그래서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이라크로 들어올 수 있다.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는 이라크에 출입국 기록은 거의 남지 않는다.

한국에는 현재 이라크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안일한 생각으로 돈벌 목적이나 선교 활동을 위해 이라크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교민들은 그나마 제도권의 보호를 받기도 쉽지 않다. 누구든 부득이하게 이라크로 들어오는 한국 교민이 있다면 우선 바그다드의 한국 대사관이나 아르빌의 한국군 부대에 신고를 하라는 것이 한국 정부의 방침이다. 더구나 한국인은 이라크에서 저항세력의 우선 표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들리는 소문에는 한국인에게 한국돈 1억원가량의 현상금이 걸려 있다고 한다. 김선일씨 사망 이후에도 한국군 파병이 강행된 탓이다. 이라크 전역에는 외국인 납치 소식이 연일 뉴스를 메우고 있다. 이렇게 위험한 시기에 아무 준비 없이 무작정 이라크행을 꿈꾸는 기업인이나 선교단체가 있다면 저항세력의 표적이 될 수도 있음을 감수해야 한다.

얼마 전 바그다드 교민 ㅎ씨가 사업차 아르빌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바그다드에서 아르빌로 오려면 바쿠바나 키르쿠크를 거쳐야 한다. 바쿠바는 그 교민이 아르빌로 오기 며칠 전 최악의 폭탄 사고로 60여명이 피살된 저항세력의 거점도시로 유명하다. 키르쿠크도 종족간 갈등과 미군에 대한 저항세력의 공격으로 하루도 사고가 나지 않은 날이 없는 곳이다. 이런 문제 도시들을 거쳐야 하는 위험한 상황인데도 그는 아르빌행을 강행했다. 물론 본인의 생업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겠지만 만약 사고가 난다면 누가 책임져야 한단 말인가. 그가 아르빌에 오던 날, 바그다드 대사관뿐 아니라 자이툰 부대 관계자들은 하루 종일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교민 관리의 일원화가 시급해 보인다. 현재 바그다드에서는 이라크 주재 한국 대사관이 교민관리를 하고 있지만 아르빌은 자이툰 부대가 담당한다. 바그다드와 아르빌의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고, 지금처럼 위험한 시기에 바그다드의 한국 대사관 직원이 아르빌까지 와서 영사 업무를 보기란 힘들다. 그리고 아르빌에 오는 한국인 기업인 대부분은 자이툰 부대와 계약을 맺은 협력업체인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자이툰 부대가 교민 영사 업무를 맡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점이 있다. 영사 업무가 두 군데서 진행되다 보니 혼선이 일어나고 있다. 가령 바그다드 교민이 아르빌로 오는 경우다. 바그다드에 신고를 하고, 아르빌에서 다시 신고를 해야 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신고를 하지 않으면 바그다드에서는 실종이, 아르빌에서는 미신고가 된다. 현재 바그다드의 한국 대사관과 아르빌의 자이툰 부대의 통신 사정이 썩 좋지 않다. 상호 긴밀하고 신속한 업무 협조가 힘든 셈이다.

그리고 자이툰 부대의 영사 업무 또한 매끄럽지 못하다. 영사 업무를 전문적으로 맡는 부서나 사람이 없는 탓이다. 본래 영사 업무란 외교적 지식이 있는 전문 외교관이 해야 한다. 지금 주둔지 건설에 바쁜 자이툰 부대가 임시로 영사 업무를 맡기에는 한계가 있다. 한국 대사관이 바그다드에서 아르빌까지 영사 업무를 위해 이동하기에는 매우 위험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본국에서라도 영사 전문 외교관을 아르빌로 파견해 교민들을 돌봐야 하지 않을까.

이라크에서 사업할 때 아니다

아르빌은 지금 50도 가까이 치솟는 열기와 미세 모래가 섞인 바람으로 숨쉬기도 힘든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그 속에서 이라크 사람들은 희망 없는 이 나라를 살아가고 있다. 직업을 갖지 못한 실직자들이 거리에 넘쳐나고 폭탄사고가 수시로 일어나며, 저항세력의 납치 행렬과 인질극 등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라크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한국 사람들은 힘든 환경을 잘 개척해 꿋꿋하게 성공해서 잘산다. 하지만 정말 이라크는 다르다. 사람이 우선은 살아 있어야 사업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은 이라크에서 사업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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