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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국 공장’ 쓸어간다

등록 2004-08-06 00:00 수정 2020-05-03 04:23

중국 지방정부의 한국기업 유치 경쟁… 국내 상공회의소까지 이전 돕는 행태에 제조업 공동화 우려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중국 등 해외로 공장을 옮기는 국내 기업이 급증하면서 제조업 공동화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하루 평균 12개 국내 기업이 보따리를 싸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 통계를 보면, 올 들어 지난 6월까지 대중국 직접투자는 홍콩(108억달러), 버진아일랜드(38억달러), 한국(35억달러), 일본(29억달러), 미국(24억달러) 순으로 나타났다. 홍콩은 중국의 특별자치구이고 조세피난처인 버진아일랜드의 투자 규모에는 대만 등 각국 자본이 섞여 있기 때문에 개별 국가로 치면 사실상 대중국 투자 1위는 한국이다.

“설명회 너무 많아 효과없을 지경”

이런 중국행 러시 현상의 뒤편에는 국내에서 중국 투자유치 활동을 공세적으로 벌이고 있는 중국 지방정부 파견 공무원들이 있다. 지난 4월, 중국 지린성 옌지시 인민정부가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개최한 옌지시 투자설명회에는 국내 중소기업인 200여명이 참석했다. 옌지시 당서기와 옌지시장까지 찾아온 이 자리에서 투자유치 계약도 몇건 체결됐다. 옌지시는 현재 서울 용산구 남영동에 ‘연길시 인민정부 한국주재사무소’까지 차려놓고 투자유치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 옌지 투자가이드 팸플릿도 제작해 안산 반월·시화공단, 인천 남동·주안공단 등에 입주한 중소기업에 뿌리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경인지역본부(남동·주안공단) 안보광씨는 “최근 중국의 한 지방정부가 주최한 중국투자 설명회가 인천시의 협조 아래 인천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이뤄지기도 했고, 한국에 파견된 중국 지방정부 공무원이 투자설명회를 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해서 우리가 중국 투자를 희망하는 기업체 사장들을 모아준 적도 몇번 있었다”며 “중국의 여러 성·시 등 지방정부에서 공단에 하도 많이 와 투자유치 경쟁이 붙었다”고 말했다. 중국 각 지역에서 파견나온 공무원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서 투자유치를 권유해온 터라 웬만한 공단에 입주해 있는 중소기업 사장치고 투자유치 설명회에 안 가본 사람이 드물다. 투자설명회 초청장도 날마다 날아온다.

특히 안산 공단지역에는 산둥성 등에서 파견나온 중국 공무원이 아예 상주하고 있다. 안산상공회의소 국제통상팀 관계자는 “중국 투자유치를 위한 한국사무소를 안산에 설치하고 싶다는 문의가 중국 여러 지방정부로부터 자주 오고 있다”며 “중국 투자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중국쪽 공무원이 안산상의를 직접 찾아오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설명회가 계속 열리고 있기 때문에 중국 투자에 관심이 있든 없든 많은 중소기업 사장이 한두번쯤 설명회에 참석했을 것”이라며 “투자설명회가 너무 많이 열려서 이제는 설명회가 투자유치에 별 효과가 없을 정도”라고 전했다. 중국쪽 파견 공무원들이, 여러 중소기업 사장들을 모아놓고 투자유치를 독려하는 것보다는 중국 투자에 관심을 보이는 특정 기업들을 집중 공략하는 쪽으로 투자유치 전략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또 그는 “우리나라에 파견나온 중국 공무원들을 보면 열정적으로 투자유치 활동을 펴고 있다”며 “애초에 꼭 중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중소기업 사장이 투자설명을 듣고 난 뒤에 결국 중국행을 결정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중국 공무원들의 투자유치 작업은 집요하다. 안산상의에 따르면 지난해 안산지역의 235개 업체가 주로 랴오닝성과 산둥성쪽으로 중국 투자를 했는데, 지리적으로 가까운 탓도 있지만 랴오닝성과 산둥성에서 파견나온 공무원들이 안산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투자유치 활동을 벌였기 때문이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중국의 각 지방정부 공무원들은 옌지시처럼 서울·수도권에 현지사무소를 차려놓고 투자유치 활동을 조직적으로 벌이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톈진시·다롄시·칭다오시 등도 투자유치 활동을 위한 한국대표처(주재사무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옌지시 한국주재사무소 안동걸(34) 대표는 “서로 경쟁상대이기 때문에 중국의 다른 성 또는 시에서 나온 투자유치 파견공무원들을 따로 만나본 적도 없고 연락도 않고 지낸다”고 말했다.

성과급에 사활 건 파견 공무원

이들 사무소는 본국 지방정부와 수시로 연락을 취하면서 우리나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투자유치를 주도면밀하게 ‘기획’하고 있다. 안 대표는 “우리 사무소는 옌지시장 직속 부서라서 투자유치와 관련한 사항을 시장한테 직접 보고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체로부터 투자에 관한 문의가 오면 옌지시장과 직접 상의해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사무소 직원을 중국에서 더 데려오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며 “옌지시에 대한 한국 기업의 투자를 알선해줄 한국인 대리인을 여러 명 확보하는 것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인이 중소기업과 옌지시 중간에서 다리를 놔주고 투자유치를 성사시켜주면 그에 따른 보상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투자유치 활동을 벌이는 중국 공무원들은 유치한 투자액에 따라 일정한 인센티브를 받는다. 중국의 일부 지방정부는 유치한 투자액의 3%까지 해당 공무원에게 성과급으로 내주고 있다. 꽤 덩치 큰 투자건을 한두개만 성사해도 1년치 월급보다 더 많은 현금을 받기 때문에 사활을 걸고 투자유치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옌지시 안 대표는 국내 중앙언론사를 조만간 방문해 옌지시의 투자환경을 설명할 예정이다. 옌지시에 투자했다가 브로커한테 당했다는 언론 보도로 인해 국내 기업인 사이에 형성돼 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투자유치 임무를 띠고 한국에 파견된 중국 지방공무원들은 어떤 방식으로 영업을 하는 것일까? 물론 투자유치 팸플릿을 들고 무작정 한국의 여러 공단을 돌아다니는 건 아니다. 우선 이미 중국에 투자한 한국 중소기업 사장 등 개인적 루트를 통해 알음알음으로 알게 된 또 다른 국내 중소기업 사장들과 접촉하는 게 기본이다. 이들이 주로 찾아가는 곳은 지역상공회의소,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산업단지공단 등이다. 중소기업인 조찬모임이나 중소기업박람회가 열리면 빠짐없이 들러 명함을 돌리기도 한다.

또 얼굴을 튼 공단 내 중소업체 사장을 대동해 지역 상공회의소를 찾아가 협조를 요청하기도 한다. 이 때 지역 상공회의소는 중국 투자에 관심 있는 중소기업 사장들의 명단을 갖고 있다가 찾아온 중국 공무원과 연결해주곤 한다. 제조업 공동화에 대한 우려가 심각하게 퍼지고 있지만, 지역 상공회의소가 오히려 중국 공무원과 손잡고 국내 기업의 중국 공장 설립을 원스톱 서비스로 지원해주고 있는 격이다. 안산지역의 산업단지공단 관계자는 “지역 상공회의소 회장이 중소기업체 대표들을 중국 투자설명회에 데리고 가는 일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각 성·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상공회의소가 적극 나서서 중국으로의 공장이전을 돕고 있는 것이다.

중국 파견공무원들의 투자유치 활동은 치밀하고 집요하게 이뤄진다. 투자와 관련해 국내 중소기업 사장이 중국행 비행기를 타면 중국 공무원이 반드시 동승하게 마련이고, 귀를 의심할 정도의 파격적인 투자유치 제안을 던지기도 한다.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외국인투자기업 우대정책인 ‘2면3감’(이익발생 뒤 2년간 세금 면제, 그 뒤 3년간 세금 감면) 외에도 온갖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며 끈질기게 설득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중국 현지에 공장이 지어지고 가동될 때까지 허가 절차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도 중국행을 끝낸 중소기업 사장도 있다. 중국 공무원이 수행비서처럼 따라다니면서 일사천리로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다 해주겠다" 약속에 막상 옮겨보니…

그러나 중국 투자에 대한 중소기업 사장들의 인식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서부지역본부(반월·시화공단) 이행만 과장은 “중국으로 이미 진출한 사장들한테서 들려오는 얘기 가운데 나쁜 소식이 점차 늘고 있다”며 “모든 것을 다 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막상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니까 태도를 바꿨다거나, 공장을 유치해놓고 한 1년 지난 뒤에 갑자기 아파트 지을 땅이라면서 나가달라고 하는 중국 지방정부도 있다는 불만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중국에 최악의 전력난이 닥치고 중국발 원자재값 급등 파동이 터지면서 중국행을 신중하게 바라보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이 과장은 “중국으로 간 기업 중에서 재미 못 보고 망하다시피 한 사장도 많은데, 사업을 접고 한국으로 되돌아오는 사장은 없고 거기서 흥하거나 망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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