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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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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가에 ‘폭탄’이 날아온다

등록 2004-07-23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원가연동제가 분양가 하락에 파괴력 발휘… 판교 ‘싼 아파트’에 시세차익 노린 청약수요 몰릴 듯 </font>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그동안 치열한 논란을 빚었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문제가 원가연동제와 채권입찰제 병행 실시, 분양원가의 주요 항목 부분 공개로 가닥이 잡혔다. 최근 열린우리당과 정부가 확정한 분양가 공개 방안은 ‘공공택지’에서 짓는 전용면적 25.7평(32∼33평형) 이하 아파트에 원가연동제와 분양원가 부분 공개를 적용하겠다는 것으로, 서민층이 입주하는 중·소형 아파트의 분양가를 떨어뜨려 내 집 마련을 국가가 도와주겠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쪽은 “전반적으로 집값을 떨어뜨린다는 의미도 있지만, 32∼33평형 이하 아파트에 입주하는 서민은 국가가 보호해줘서 싸게 들어가 살 수 있도록 해준다는 취지”라며 “33평형 이상 입주자 같은 그런 대로 살 만한 사람은 국가가 따로 도와줄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민영택지 분양가도 억제 압력

반면 공공택지가 아닌 ‘민간택지’에 건설되는 아파트는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고 시장 기능에 그대로 맡겨진다. 이유는 단순하다. 공공택지는 국가가 땅을 수용, 개발해 택지로 만든 뒤 시세보다 싼 감정가격으로 건설업체에 공급하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해 분양가를 규제할 수 있다. 그러나 민간택지는 건설업체가 스스로 마련한 땅이라서 그 땅 위에 짓는 아파트에 대해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간섭할 여지가 없다.

애초에 논란은 분양원가 공개를 둘러싸고 전개됐지만, 이번 대책의 메가톤급 폭탄은 분양원가가 아니라 ‘원가연동제’다. 원가연동제는 아파트 분양가를 택지비에 표준건축비(건설업체 적정이윤 포함)를 합친 가격으로 책정하는 방식으로, 공공택지에서 분양되는 전용면적 25.7평 이하 아파트에 적용된다. 표준건축비는 정부가 정하는 평당 건축비 상한선인데, 아파트 평수에 따라 각각 달리 정해진다. 이런 표준건축비가 분양가 상한선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건설업체가 폭리를 챙겨왔던 분양수익 중 상당 부분이 줄어들게 되고, 자연스럽게 분양가도 떨어지게 된다.

결국 원가연동제 실시는 공공택지의 경우 분양가 자율화에서 사실상 ‘분양가 규제’로 돌아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건설업체들이 분양원가와 상관없이 주변 시세를 기준으로 ‘이 정도 가격이면 팔리겠다’ 싶으면 멋대로 분양가를 책정했으나 이제는 가격을 규제받게 된 것이다. 표준건축비는 공공택지에 공급되는 아파트에만 적용되지만 민영택지에 짓는 아파트의 분양값 과다 책정도 억제하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 강교식 수석전문위원(정책위원회)은 “표준건축비를 정해놓고 분양가를 규제하는 방식이 다시 부활한 것”이라며 “원가연동제로 시장가격보다 싸게 분양받을 수 있어서 당분간은 공공택지의 중·소형 아파트로 수요가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원가연동제를 적용받는 아파트는 연간 주택건설 물량(약 50만가구)의 15~20% 정도인 8만∼10만 가구가 될 것으로 추정되는데, 정부는 원가연동제를 적용받는 아파트의 경우 단기적으로 분양가가 지금보다 20∼30% 정도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연간 아파트 건설 물량 중 공공택지 아파트는 60% 정도로, 서울에는 공공택지가 거의 없다. 원가연동제가 적용되는 아파트는 판교·김포·파주·동탄 신도시 등 ‘2기 신도시’가 될 공산이 크다. 정부는 이르면 내년 3월부터 분양될 판교 신도시 분양분부터 원가연동제를 적용할 예정이다.

원가연동제가 적용되는 아파트는 그동안 건설업체가 가져간 과도한 분양 수익 중 일부가 이제 당첨자들의 프리미엄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따라서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 청약통장 가입자들이 대거 몰려들 것으로 보인다. 분양 시장은 벌써 판교 신도시로 관심이 온통 옮겨가고 있다.

“원가 공개보다 연동제가 강력한 효과”

판교 신도시의 32∼33평형 이하 아파트 분양값은 당초 예상치(주변 분당신도시 아파트값 등을 감안할 때 평당 1200만∼1300만원)보다 크게 낮아져 평당 800만원 안팎이 될 전망이다. 판교 신도시 분양가가 800만원대로 떨어져 평당 400만원 정도 시세차익이 생긴다면 30평형 당첨자의 경우 앉아서 1억2천만원을 한순간에 벌게 된다. 따라서 양도세(양도차익의 9∼36%)를 실거래 가격으로 물린다 해도 복권처럼 서울과 수도권의 모든 투자 수요가 판교의 중·소형 아파트로 한꺼번에 몰려들 가능성이 크다. 판교 신도시에 지어지는, 원가연동제가 실시되는 중·소형 아파트는 총 1만9600가구(18평 이하 9500가구, 18~25.7평 1만100가구)다. 정부는 판교 신도시 입주자의 청약 자격을 무주택자 여부, 소득수준, 가구원 수 등을 고려해 엄격히 제한하고 입주 뒤 일정 기간 동안 전매를 금지할 방침이다.

일부에서는 “원가연동제로 분양수익이 줄어들면 건설업체들이 공공택지지구 내 25.7평 이하 아파트 용지 매입을 꺼릴 것이고, 이에 따라 중·소형 아파트 공급이 오히려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민간업체가 스스로 발굴하는 민간택지는 규모도 작고 도로, 공원, 학교 등 기반시설이 부족하다. 따라서 비록 원가연동제가 적용되더라도 입지 좋고 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공공택지에서 집 지어 파는 사업을 민간업체들이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부와 여당은 원가 공개와 관련해 공공택지에서 짓는 25.7평 이하 아파트의 경우 택지비·건축비·설계감리비·옵션비용 등 분양가의 주요 항목을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분양가를 떨어뜨리는 효과 측면에서는 분양원가 공개보다 원가연동제가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국토연구원 김근용 연구위원은 “시민단체가 요구한 원가 공개가 집값을 100원 떨어뜨릴 수 있다면, 원가연동제는 집값을 500원가량 더 많이 떨어뜨리는 효과를 내는 제도”라며 “건설업체의 회계장부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원가 공개 요구는 소비자의 알 권리 욕구를 충족할 뿐 분양가를 떨어뜨리는 효과는 적다”고 말했다. 여당과 정부가 원가 공개를 비켜가기 위해 도입한 원가연동제가 분양가를 낮추는 데 오히려 더 큰 파괴력을 갖고 있다는 것인데, 건설업체쪽에서 보면 ‘기업비밀 보호’를 앞세워 원가 공개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다가 뜻하지 않게 직격탄을 맞은 격이다. 분양원가 공개 대상 항목은 나중에 구체적으로 정해지겠지만, 업체가 공개한 내역이 맞는지 그른지를 따지기 시작하면 끝없는 논란이 벌어지고 결국 소송이 봇물을 이룰 가능성도 있다.

투기 거품은 대부분 걷힐 것

채권입찰제는 채권을 가장 많이 사겠다는 민간업체에 택지를 공급해주는 것으로, 공공택지에서 짓는 32∼33평형 이상 중·대형 아파트에 적용된다. 따라서 서민층과는 별 상관이 없다. 32∼33평형 이하 아파트와 달리 중·대형 아파트는 건설업체가 마음대로 분양가를 책정해 팔되 개발이익 중 일부를 정부가 채권으로 환수해 저소득층 임대아파트 재원으로 쓴다는 것이다. 특히 업체의 채권 매입(할인) 비용이 예전보다 추가로 더 들기 때문에 인기지역의 중·대형 아파트는 채권값만큼 분양가가 더 오를 수도 있다.

정부와 여당이 내놓은 이번 방안은 공공택지에서 새로 분양되는 중·소형 아파트에 국한된 분양값 대책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전체 아파트값 동향은 어떻게 될까? 지금은 “정부가 건설업 중심으로 경기를 띄우기 위해 기존의 강력한 집값 안정 대책에서 후퇴할 것이다”는 말이 시장에 퍼지면서 집을 팔지도 사지도 않은 채 눈치보며 힘겨루기 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이제 공공택지의 원가연동제 아파트에만 관심이 집중되면서 다른 분양시장에서는 청약 수요가 급격히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너나 할 것 없이 엄청난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는 판교만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공택지 신규분양 아파트에만 몰리다 보면 민간택지 분양 아파트는 큰 타격을 받게 되고 기존 아파트 수요도 줄어들 게 뻔하다. 특히 2주택 이상 청약통장 가입자의 경우 판교 등지에서 1순위 청약조건을 갖추려면 집을 한채만 남겨두고 팔아야 하기 때문에 매물이 쏟아지고 자연스럽게 집값이 완연한 하락세에 들어설 공산도 크다. 국토연구원 김근용 연구위원은 “재건축 개발이익환수제가 이미 발표됐고 종합부동산세가 내년에 실시되는 등 지난해 발표된 10·29 대책의 시스템이 다 갖춰져 내년부터 본격 가동되기 때문에 투기 수요에 의한 거품은 대부분 걷힐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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