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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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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과 함께 테러 응징한다”

등록 2004-07-22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쿠르드 철권 통치자 바르자니 한국 언론 최초 인터뷰… 치안 악화되면 한국군이 전투에 나설 수도 </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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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 최초로 아르빌을 통치하는 쿠르드민주당 대표 마수드 바르자니를 만났다. 산속 요새에 은둔하여 외신도 접촉하기 어렵다는 바르자니. 그는 한국군이 자신들과 함께 테러에 대항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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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빌= 김영미/ 분쟁취재 전문 프리랜서 PD

한국군이 파병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자치지역인 아르빌의 최고 지도자 마수드 바르자니(58) 쿠르드민주당(KDP) 당수는 지난 7월14일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군이 재건 및 평화유지 활동뿐 아니라 유사시 저항세력에 맞선 전투활동 등에 나설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파문이 예상된다. 그는 “이라크의 치안 상황이 아주 나쁘다. 한국군이 치안도 담당하는가”라는 질문에 “물론 우리와 한국군은 테러리즘에 대해 완벽하게 협력할 것이다. 테러리즘은 국제적인 현상으로 쿠르드 지역뿐 아니라 어디든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군과 같이 대항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꼭대기 요새에 은둔한 지도자

쿠르드의 강력한 지도자이며 아르빌을 지배하는 집권당 총재인 바르자니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는 외신들 사이에서도 인터뷰하기 힘든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한달에 한두 군데 외신 인터뷰에 응하는 게 고작이다. 또 그는 아르빌에서 ‘리틀 사담’으로 불릴 만큼 철권 통치자로 유명하다. 그는 쿠르드족 군대인 페슈메르가를 세운 아버지 무스타파 바르자니에 이어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산에서 태어나 게릴라로 한평생을 싸우면서 보냈다. 그는 사람들 앞에 잘 나서지도 않는다. 한국에서 ‘파병지 선정 협상단’이 왔을 때도 만나기를 거부했다. 미군도 그를 만나려면 산꼭대기 그의 집으로 헬기를 몰고 찾아가야 한다. 그런 그를 한국 취재진으로서 처음 만나기 위해 적지 않은 공을 들여야 했다.

아르빌 시내에서 차를 타고 동쪽으로 30분 거리에 살라아딘이라는 곳이 있다. 페슈메르가의 본거지인 살라아딘의 산꼭대기에 자리잡은 중세시대 요새 같은 곳에 바르자니 게스트 하우스가 있다. 삼엄한 검문을 4번이나 거친 끝에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다. 바르자니는 접견실에 페슈메르가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 평생을 게릴라로 산에서 전투를 한 사람의 이미지가 아닌 천진난만한 소년 같았다.

1시간가량 인터뷰하면서 느낀 것은 답변이 무척 짧다는 점이다. 그는 요점만 말했다. 도중에 필자가 “내 질문이 실례되는 것이 있느냐. 이렇게 짧고 간단하게 말하니 당황스럽다”고 웃으며 말하자 그는 “이것이 바르자니 스타일이다. 난 누구에게도 길게 말하는 것이 싫다. 마음에 안 들어도 할 수 없다”며 역시 짧게 답했다. 강인한 이미지와 거친 성격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먼저 희생당한 고 김선일씨 가족에게 애도를 표했다. 그는 “우리는 이런 범죄에 반대하며 희생자의 가족에게 우리의 슬픔을 전한다. 한국인들에게 이런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이라크에서 소수이며, 우리는 한국군을 환영하고 도울 것이라는 뜻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군의 역할에 대해서는 “재건 사업을 벌이고 우리 경찰이나 보안군을 훈련시킬 것”이라며 “한국군에게 해를 입히려는 테러리스트들의 시도가 있겠지만 우리 페슈메르가가 그것을 막아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군과 우리는 이곳의 테러리스트들을 응징할 것이다. 이에 우리는 한국군과 완벽하게 협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바르자니는 또 “쿠르드 지역은 치안 상황이 좋지만 모술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안사르 알 이슬람’이나 ‘안사르 알 수나’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에 동조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해 이곳의 치안이 언제든 악화될 수 있음을 내비쳤다.

모술 저항세력은 대중적 지지 받아

아르빌에서 북쪽으로 1시간 거리의 모술은 지금 치안 상태가 말이 아니다. 지난 7월14일 유세프 카슈몰라 니나와주 주지사가 피격돼 사망했다. 여기서 니나와주는 모술을 말한다. 니나와주에 모술이 속해 있다. 한국군이 배치될 아르빌주와 불과 강을 하나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다.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저항세력의 활동이 왕성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 모술 거리에서는 미군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모술에는 1개 사단이 들어와 있는데도 말이다. 이제 미군들도 저항세력들에 진저리를 내고 있다. 이들도 더는 “길이 없다”(No way)고 말한다. 한 미군 병사는 “지옥이 따로 없다. 아마 내가 어릴 때부터 상상하던 지옥이 바로 모술일 것”이라며 넌더리를 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이곳 저항세력들이 대중적 지지 기반까지 확보했다는 점이다. 〈APTN〉의 모술 통신원인 모하메드는 “모술 시민들은 저항세력들을 사랑한다. 사망한 유세프 주지사도 모술 사람들이 좋아했던 사람이고 또 그의 가문인 카슈몰라는 모술 사람들이 대단히 존경하는 가문이다. 하지만 미군에 대한 감정이 너무 상해 있기 때문에 미군들과 같이 다니는 것을 보고 아마 사람들의 마음이 돌아선 것 같다”고 말했다. 모술에 있는 저항세력들이 모술 시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확보하고 있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AP〉는 익명을 요구한 미군 당국자의 말을 따 “저항세력이 이라크 민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또 의 모술 특파원인 무산나는 “이제 모술은 저항세력에 함락당했다는 표현이 옳다. 아주 평범한 시민들도 저항세력에 협조할 태세다. 미군은 이라크에서 모술만은 점령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더구나 최근에 김선일씨를 살해하고 외국인 인질 사건을 벌이고 있는 ‘유일신과 성전’이 살해했다고 주장한 불가리아인의 목이 없는 주검이 모술 시내 한복판을 가르는 강에서 발견되었다. 따라서 이런 모술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르빌은 언제까지나 안전을 장담할 순 없다. 바르자니는 “쿠르디스탄의 치안 상황은 좋지만 이곳도 전세계적인 현상인 테러리스트의 위협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쿠르드족 가운데서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동조하는 자들이 있지만 우리는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을 체포했다”고 말했다.

키르쿠크에 대한 미련 못 버려

아르빌 사람들은 바르자니를 “쿠르드의 지도자, 쿠르디스탄의 대통령”이라고 부른다. 그의 말이 곧 법이라는 말조차 나오고 있다. 그런 바르자니가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이 “키르쿠크는 우리 땅”이라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키르쿠크가 이전 한국군의 파병 예정지였음을 기억할 것이다. 올 초 키르쿠크를 취재하면서 그곳은 기름 위에 떠 있는 땅이라는 것을 알았다. 기름이 강이 되어 흐르고 어디든 파면 기름이 쏟아지는 그야말로 노다지 땅이다.

미국의 부시조차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땅이다. 하지만 사담 후세인 시절 아랍 주민들이 이곳으로 많이 옮겨오면서 본래 그 땅에 살던 쿠르드 사람들과 터키계 사람들이 쫓겨났다. 쿠르드는 물론 아랍도 터키도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신경전을 벌이는 땅이자, 미국도 양보할 수 없는 곳이 키르쿠크다. 아르빌에서 남쪽으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최대 유전도시이다. 바르자니는 키르쿠크에 대해 “모든 역사적인 사실을 볼 때 키르쿠크는 당연히 쿠르드족의 땅이다. 이민족들이 자기들 땅이라고 주장한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이라크 임시정부의 틀 안에서 키르쿠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쿠르드족이 사담 정권 이후 딱 한번 키르쿠크를 점령한 적이 있다. 1991년 후세인 전 대통령이 걸프전쟁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 바르자니는 쿠르드 군대인 페슈메르가를 앞세워 키르쿠크를 ‘접수’했다. 겨우 11일간이었지만 키르쿠크 전 지역을 점령했다. 하지만 군대를 재정비한 후세인의 군대와 두달간 싸우는 악전고투를 했건만 바르자니는 다시 아르빌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후세인 군대를 지휘한 사람이 이자트 알두리 장군이다 그는 지금도 키르쿠크 어딘가에 숨어서 저항세력을 지휘하고 있는 걸로 알려진다. 미군은 그의 목에 엄청난 현상금을 걸고 찾고 있다. 바르자니는 여전히 과거의 아픈 경험과 함께 이라크 최대 유전지대인 키르쿠크를 잊지 못하고 있다. “키르쿠크는 쿠르디스탄의 심장”이라고 강조하는 그를 보니 “이라크 임시정부의 틀 안에서 키르쿠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말은 순전히 외교적 수사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이라크 군대 필요 없다”

그런 그가 얼마 전 크게 분노했다. 이라크 새 정부 총리인 알라위가 새 국가보안법의 적용 대상이 쿠르드 지역이라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에는 계엄령 선포 등 국가 위급시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여러 가지 제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새 정부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쿠르드 지역에 우선적으로 게엄령 선포를 고려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쿠르드 지역에 대한 아랍권의 견제로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르자니가 발끈했고, 지난 7월10일 결국 알라위 총리가 아르빌을 방문해 결정을 보류하면서 가까스로 진화되었다.

하지만 바르자니는 이번 인터뷰에서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모든 자치정부는 스스로 그 지역을 통치한다. 우리에겐 이라크 군대가 필요 없다. 임시정부가 발표한 국가안전법은 남부나 이라크 중부에만 해당될 것”이라고 말해 임시정부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안 그래도 새 정부 주요 각료들이 대부분 아랍계로 채워져 불만이 많던 그였다. 아르빌은 이처럼 여러 가지가 얽히고설켜 복잡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중동에서는 드물게 이슬람 성직자가 기를 펴지 못하고 사는 곳이다. 정치권력을 잡은 바르자니가 그렇게 만들었다. 하지만 부족장들과 바르자니의 관계는 원만치 못하다. 미군을 도와 사담 후세인을 몰아낼 때만 해도 부족장들은 바르자니를 밀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가 미군을 도운 대가를 제대로 챙겨오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바르자니는 이들이 못마땅하다. “한국군이 부족장들과는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한국군은 그들과 소통할 필요가 없다. 오로지 쿠르드 정부하고만 협상하면 된다”고 말했다.

한국 병사들도 현실 알아야

한국이 바르자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한국군이 그가 무소불위로 통치하는 아르빌로 파병되기 때문이다. 한국군이 좋으나 싫으나 그를 대해야 한다. 문제는 그가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쿠르드 자치정부(KRG)의 최고위직인 총리는 그의 조카 니케르반 바르자니이고, 그의 아들이 정보부와 비서실을 장악하고 있다. 그는 산꼭대기 요새에 있으면서 조종한다. ‘스몰 바르자니’는 총리, ‘빅 바르자니’는 바로 바르자니를 일컫는 말이다. 그의 허락이 없으면 아르빌에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는 게 이곳 사람들의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신문 편집장은 “그는 올해 기자 2명을 감옥에 넣었다. 그에 반대하는 내용의 기사를 썼기 때문이다. 아르빌의 어떤 기자도 그를 나쁘게 쓰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도 바르자니 기사를 쓸 때는 아주 조심한다”고 귀띔했다.

이제 한국군의 파병이 초읽기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한국은 아르빌에 대한 정보가 없다. 아주 가까운 곳에 모술과 키르쿠크가 있다는 지리적 위치나, 철권 통치를 하고 있는 바르자니 정권을 상대해야 하는 것도 아주 불투명한 파병의 미래를 보여준다. 지금이라도 한국 장병들에게 정말 위협이 무엇인지 알려줘야 한다. 이곳에서 정작 위험한 것은 ‘열사병이나 독사, 독꽃’이 아니라 아슬아슬한 현실이다. 외신들도 그렇게 인터뷰하기 힘들다는 바르자니를 만나는 데 성공했으나 오히려 마음이 더 무거워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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