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 놓고 ‘조 · 동’과 대립하는 여권…‘어정쩡한’ 한나라당 전면에 부상시키려는 전략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논쟁이 격렬해지고 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운동 과정으로 돌아간 듯한 인상이다. 당시엔 논쟁의 주체가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였고, 두 축을 중심으로 찬성과 반대 여론이 결집됐다. 그런데 이번엔 양상이 좀 다르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등 여권과 등 일부 언론사가 전면에 등장했다. 한나라당은 반대 여론을 적극적으로 조직하거나 해법을 제시하기보다는 어정쩡한 태도로 반대 여론에 편승하고 있는 형국이다.
여론 악화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감
격발 장치는 7월8일 노무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반대론=퇴진운동’ 발언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인천 지역 혁신발전 5개년계획 토론회에서 “행정수도 반대 여론을 주도하는 기관을 보면 서울 한복판인 정부 청사 앞에 거대 빌딩을 가진 신문사”라며 “이것(행정수도 반대론)을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 운동, 퇴진운동으로 느낀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의 앞선 보도는 합리적인 태도가 아니며 언론개혁 문제를 둘러싼 정서적 전선과 일치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6월17일), “대통령 흔들기의 저의도 감춰져 있다”(6월18일)는 이전 언급보다 강도가 한껏 높아졌다.
다음날 양정철 청와대 국내언론비서관은 ‘조선·동아는 저주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라는 제목의 장문을 통해 두 신문을 적시하면서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한 1970년대 이후의 보도 태도를 비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행정수도 구상을 밝혔을 때 “과밀 서울 분산 위한 대수술” “박 대통령의 일대 영단” 등의 제목으로 보도했고, 특히 지난해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의 국회 통과 과정에서 침묵했던 두 신문이 돌연 보도태도를 바꾼 것에 설명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7월11일엔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이 “마치 학교를 안 나오던 학생이 갑자기 학교에 와서 여태껏 진도 나간 것은 무효이니 새로 이야기하자는 것과 같다”고 했고,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기득권 세력의 정권 흔들기”라고 가세해 ‘변주’를 이어갔다. 해당 신문사는 여러 면을 할애해 역공을 펼치면서 “현 정부가 ‘국민’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이렇듯 정부와 여당이 전방위 공세를 취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여론 악화를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행정수도 이전이 첫 삽을 뜨기 전에 좌초할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현 정부의 중점사업 전반이 어긋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짙게 배어 있다.
특별법 재의결 때 충분히 검토했어야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행정수도 이전은 단일 사안이 아니라 수도권 규제 완화, 지방 발전 등 국가 균형발전 전략의 핵심고리”라며 “이것이 무력화되면 남은 임기 동안 노무현 정부는 허수아비가 될 수밖에 없다”고 절박감을 표시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전개될 언론개혁과 친일 청산 국면에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여기는 일부 신문사들이, 행정수도 이전 논란을 소재로 참여정부 국가발전 전략의 한 고리를 허물어 식물정권을 만들려는 속셈으로 분석하고 있다.
공세 전환의 또 다른 배경은, 여권이 현재의 논란을 ‘민주주의 시스템의 위기’로 인식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여야 합의로 의결정족수 3분의 2 이상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근거로 이전대상 기관과 후보지 선정 등 이미 추진되고 있는 정책을 다시 거꾸로 되돌릴 수 없다는 주장이다. 김병준 실장은 “국회가 통과시킨 법을 대통령이 무효화하면서 국민투표를 하자고 하는 것은 탄핵감이자 헌정 체계 문란”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같은 이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여권이 반대 여론을 확산하는 일부 언론사를 향해 총공세를 펼친다고 해서 반대론자들이 갑자기 입장을 선회하거나 주춤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립각을 분명히 세움으로써, 사실상 반대에 가까운 재검토론 카드를 내걸고 반대 여론이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한나라당을 전면에 부상시키기 위한 전략일 가능성이 크다. 국회 차원에서 다시 논의하려면 특별법 폐기 법안을 먼저 제출하라는 천정배 대표의 요구나 국민투표는 국회 차원에서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는 김병준 실장의 언급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나라당이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신행정수도의 성공적인 충청권 이전을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던 총선 공약을 180도 뒤집어야 하는 곤란한 처지에 빠지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국가의 장기적인 비전에 관한 정책인 만큼 결코 불리한 싸움이 아니다. 이젠 판이 커져서 천도니 국민투표니 하는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를 놓고 논쟁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참여정부의 비전을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다. 조선·동아 등 일부 신문과 한나라당을 중심으로한 반대론자들은 수십년 동안 제기돼온 수도권 과밀과 지역간 불균형 심화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공론의 장에서 반대나 재검토만을 외치면 궁색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국회 안 특위가 됐건 장외 공방이건 간에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거듭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한 차례 부결 끝에 특별법을 재의결하면서 행정수도 이전 비용이나 효과 등 최근 제기되고 있는 쟁점이나 중·장기적인 국가발전 전략을 꼼꼼히 따졌더라면 재연되지 않았을 문제들이다. 당시 재의결은 무기명 비밀투표로 진행돼 반대에서 찬성으로 입장을 바꾼 의원들이 누구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전향 이유는 분명했다. 4·15 총선을 앞두고 충청권 표심 때문이었다. 법안 내용보다는 정략 때문에 입장이 오락가락한 것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정부가 국민적 합의 없이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하기 위해서는 정략에 의해 졸속 심의를 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이 선행돼야 이치에 맞다. 가 7월10일 1천명을 상대로 한 전화 여론조사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10명 가운데 8명이 ‘충분한 검토나 국민 합의를 거쳐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는데 국회, 특히 한나라당은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이 조사에서 찬성과 반대는 각각 37.9%와 55.3%였다).
여권 강경대응에 자성의 목소리도
하지만 ‘진도에 불만이 있는 학생들’이 적지 않은 점은 정부와 여당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반대 여론이 늘어가는 추세인데다, 수십 차례 토론회를 거치고 법 통과로 정당한 합의 절차를 이미 거쳤다는 항변이 그다지 힘을 얻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대 여론을 주도하는 일부 언론사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만으로 여론을 되돌리기는 불가능하다. 계획 단계(2004~07년 하반기)부터 탄력을 받지 못할 경우, 건설 단계(~2011년)와 이전 단계(2012년 이후)까지 중요한 계기점마다 돌부리에 차일 수밖에 없다. 여권 일각에서는 최근의 강경 대응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도 고개를 들고 있다. 한 관계자는 “국민들의 절반 이상이 반대한다면 이는 일부 언론 탓으로만 보기 힘든 측면이 있다”며 “그동안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토 균형발전 전략을 논리적으로 홍보하고 국민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자성해볼 대목도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처럼 시민 탓을 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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