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새롭게 밝혀낸 것들… 이라크 대사관, 4월에도 김천호 사장에게 5만달러 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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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이라크 주재 한국 대사관이 고 김선일씨 피랍 소식을 확인한 직후 무장 납치세력과 협상에 나섰으나, 친미 성향의 이라크 현지인들로 협상팀을 꾸리는 바람에 협상에 실패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런 주장은 감사원 현지 조사단이 김선일씨 석방 협상에 나섰던 이라크 현지인 변호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와 감사원의 최종 조사결과가 주목된다.
친미파 이슬람 당원들로 협상단 꾸려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선병주 변호사는 지난 7월11일 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주이라크 한국대사관은 지난 6월21일(한국시각) 의 김선일씨 납치 방송 직후 ‘이라크 이슬람당’ 당원들로 팀을 꾸려 김씨 석방 협상에 나섰다”며 “그러나 이라크 이슬람당은 무장세력들 사이에서 친미세력으로 알려진 정당이었기 때문에 협상 제안은 곧바로 거절당했다”고 밝혔다. 선 변호사는 또 “김씨 석방 협상에 관여한 이만 변호사가 감사원 현지 조사에서 이같이 진술했다”고 덧붙였다. 이라크인 여성변호사인 이만 변호사는 이라크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무장세력과 ‘인맥’을 쌓았고, 가나무역의 법률 자문을 맡았던 인연으로 김씨 석방 협상에 관여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만 변호사는 또 “김씨가 살해되기 직전인 6월22일 이라크 대사관에 파견된 국가정보원 관계자에게 ‘협상 시한을 연장하기 위해 한국 정부에 파병 방침을 수정하도록 제안하자’고 했으나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만 변호사의 진술에 따라 주이라크 한국대사관과 국정원의 김씨 피랍사건 대처능력에 대한 감사원의 집중 조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만 변호사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이라크 현지 대사관의 정보수집 기능에 큰 구멍이 있었다는 결론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파병 결정으로 교민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현지 대사관이 기초적인 정보에 어두웠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중대 과실’이기 때문이다.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라크 대사관은 물론 석방협상에 관여한 외교부 고위 관계자들도 문책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라크 이슬람당은 무장세력들에게 ‘미국에 협조하는 매국노’로 인식돼 당 고위 간부들이 살해 협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지난 5월30일 이라크 이슬람당 고위 당직자인 카흐탄 카젬 알 루바예가 무장세력에 의해 살해되기도 했다. 선 변호사는 “이만 변호사의 진술은 주이라크 한국대사관이 얼마나 현지 정보에 소홀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김천호 사장을 희생양으로 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만 변호사는 김씨를 납치한 단체가 극단적 보수주의 성향의 무장단체로 김씨를 납치한 이후 몸값을 요구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단체가 김씨 석방 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한국군 파병 철회가 유일한 것이었다고 이만 변호사는 밝혔다. 선 변호사는 “팔루자 지역의 무장단체들은 외국인을 무작위로 납치한 뒤 미군과 연루된 정황이 드러나야 억류했는데, 김씨는 피랍 초기에는 억류될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만 변호사는 김천호 사장의 부탁을 받고 ‘수나모술렘’이라는 이라크 종교단체를 통해 무자헤딘 지도자 압두알라 알 자랍을 만나 김씨의 석방을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만 변호사는 또 현지 무장단체 사정을 잘 아는 이라크인을 동원해 별도의 협상 루트를 가동했다고 감사원 조사에서 진술했다.
선 변호사는 “6월18일 정부의 이라크 파병 발표가 있기 전까지 김씨 석방은 매우 낙관적으로 진행됐는데, 파병 결정이 이라크 현지에 방송된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며 “이라크 파병 발표 이후 이만 변호사가 김천호 사장한테 전화를 걸어 ‘한국 정부가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고 불같이 화를 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사람을 죽이려 한다”
한편, 이라크 주재 한국 대사관은 고 김선일씨가 피랍 중이던 지난 6월10일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한테서 1만5천달러를 빌리기에 앞서 지난 4월에도 5만달러를 빌린 사실이 있다고 선 변호사는 밝혔다. 선 변호사는 “김 사장은 지난 4월 주이라크 대사관의 서기관 부탁을 받고 5만달러를 대사관 운영자금으로 빌려준 뒤 돌려받은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며 “김 사장은 구체적으로 대사관이 그 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한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별다른 담보 없이 무이자로 대사관에 돈을 빌려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사장이 주이라크 대사관에 두 차례나 거액을 빌려준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김 사장과 대사관의 ‘관계’에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선 변호사는 “김 사장은 임홍재 대사는 물론 다른 대사관 직원들과도 사적인 교분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며 “금전 거래의 대가로 특별히 대사관쪽의 도움을 받은 것도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선 변호사에 따르면 김 사장은 가나무역을 운영하면서 이라크에 진출한 한국인 사업가나 선교단체, 비정부기구(NGO) 등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 특히 이라크는 전시 상황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금융거래가 불가능한 상태인데, 국내 민간인들이 금전적인 도움을 요청했을 때 김 사장은 담보 없이 거액을 선뜻 빌려줬다. 김 사장의 이런 ‘선행’이 한국 대사관에도 알려져 두 차례나 대사관과 김 사장의 ‘금전거래’가 성사됐다는 것이다. 외교부는 ‘1만5천달러 거래설’이 확인된 지난 7월8일 “분쟁 지역에선 제때 은행에 다녀올 수 없을 경우 현지 한국인 기업가들로부터 급전을 빌리는 관행이 있다”며 “이라크에서는 계좌이체가 안 돼 영사가 2∼3주에 한번씩 암만의 은행에 가 현금을 인출하는데 당시엔 그럴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분쟁 지역이라도 대사관이 현지에서 사업을 하는 업체로부터 두 차례나 거금을 빌린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가나무역은 주이라크 한국 대사관과 컨테이너 가건물 신축공사 계약을 맺은 업체다. 주이라크 대사관이 김 사장에게 두 차례나 거액을 빌린 ‘급박한 사정’은 과연 무엇일까. 감사원이 이런 의문을 명쾌하게 풀어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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