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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코스는 왜 무너졌나

등록 2004-07-16 00:00 수정 2020-05-03 04:23

[지구촌경제]

<font color="darkblue">올리가키에 대한 푸틴의 견제로 쓰러진 러시아 거대 석유기업 </font>

▣ 왕윤종/ SK 경영경제연구소 경제연구실장

10만명의 직원과 러시아 전체 석유 매출액의 20%를 차지하는 러시아의 거대 석유기업 유코스(Yukos)가 34억달러에 달하는 추징 세액 납부 최종 기한을 넘김에 따라 사실상 파산에 직면하게 되었다. 러시아 신흥재벌 계층을 지칭하는 올리가키(Oligarchs)의 정치력 확장에 대한 푸틴 정권의 견제로 비롯된 유코스사의 위기는 2003년 10월 횡령 및 탈세 혐의로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가 체포된 이후 정치적 타결로 결말이 날 것으로 기대됐다. 즉, 2004년 5월27일 법원 판결로 확정된 유코스사에 대한 탈세 추징금에 대해 유코스사의 40% 지분을 보유한 호도르코프스키가 자신의 지분을 포기할 의사를 밝힘에 따라 유코스사의 회생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희망이 보였다. 또 러시아 재무부의 고위 관료들이 세금 추징금의 재조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결과는 러시아 검찰이 유코스사에 대해 2001년 추징 세액뿐만 아니라 2002년, 2003년의 추징 세액까지 납부해야 한다고 몰아붙임에 따라 파산은 예정된 것임이 밝혀진 셈이다.

청산보다는 국유화 시도할 듯

올해 초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집권 2기의 푸틴 정권은 유코스사를 청산하기보다는 국유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코스사의 파산 과정을 지켜본 서방의 투자자들과 신용평가기관은 푸틴 정권이 개혁을 명분으로 신흥재벌 길들이기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실제로 언론 재벌인 블라디미르 구진스키에 대해서는 정치적 타협을 통해 형사처벌을 기각했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푸틴 집권 2기의 내각에 대해 정책마비 상태에 처했다고 강도 높은 비난을 퍼붓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러시아 정부의 유코스 사건 처리는 선택적 법 집행의 단적인 사례”라고 비난했다. 1990년대에 진행됐던 러시아 국영기업의 민영화 과정과는 반대로 유코스사와 같은 민영기업이 국유화로 치닫는 현 상황은 러시아에서 시장경제가 정착되기가 어렵지 않은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유코스사가 청산이나 국유화 중 하나로 결말이 나겠지만 당장은 러시아 금융시장에 큰 충격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 러시아의 경제 상황은 사상 초유의 고유가로 초호황을 구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유코스사의 수출 중단에도 불구하고 다른 회사의 물량으로 수출에 큰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1998년 말 국가부도 위기 사태까지 경험했던 당시의 상황과는 달리 적어도 거시지표상으로 현재 러시아 경제는 양호한 상태다.

푸틴 정부 불투명한 정책 도마 위에

러시아에서 급격한 자본 유출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현 푸틴 정부가 계속해서 불투명한 정책으로 일관할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은 불확실성을 회피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있다. 푸틴 정권의 과제는 자신의 집권에 유리한 방향으로 기업을 길들이기보다 러시아 경제가 더 투명한 법질서에 기초하여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고유가의 반사이익에 의존하기보다는 러시아에 투명한 시장경제 체제가 정착되도록 하는 것이 러시아 경제를 발전시키는 초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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