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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자도 인간이다”

등록 2004-07-14 00:00 수정 2020-05-03 04:23

논란의 핵폭풍 휩싸인 2기 의문사위 한상범 위원장 단독 인터뷰… “법치주의는 전력 차별 안해”

▣ 글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 사진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지난 7월9일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한상범 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사무실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건물 입구를 지키고 있는 전경들이었다. 전날, 집 앞에서 보수단체들의 집회가 벌어지는 통에 평소보다 늦게 퇴근해야 했다는 그는, 이날 아침에는 “빨갱이 한상범 물러가라”는 구호까지 들었다며 쓰게 웃었다. 이어지는 협박으로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는 처지에 놓였지만, 한 위원장은 여전히 차분하고 고집스러웠다. 헌법학자(동국대 법대 명예교수)로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라는 헌법의 최고원리에 충실하고, “법 앞에서 차별하지 않는다”는 법치국가의 ‘상식’을 말하는 그에게 이번 판단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필연적이었다.

- 비전향 장기수들이 민주화운동 관련성이 있다고 결정한 근거는 무엇인가.

= 일부 언론이 “간첩이 민주인사냐”는 식으로 선동하고 있지만, 우선 분명히 할 것은 우리가 이들을 민주인사라고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민주화에 기여, 또는 관련성이 있다고 말했다. 사람인 국민이 나라의 정책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에 깔린 이념은 사람 존중이다. 법치주의나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은 전력이 어떻다고 해서 차별하지 않는다.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의미는 권위주의 통치 시절, 기본권이 압살당하는 것을 바로잡는 데 기여한 것을 포함한다. 빨갱이든 흰둥이든 노란둥이든 이들이 사상·내심의 자유를 압살하는 전향제도에 대해 목숨을 건 저항을 했고, 결국 전향제와 준법서약서 폐지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성을 인정한 것이다.

-그래도 이들은 남한 체제에 편입되기를 거부하지 않았나.

= 공산주의자도 인간이고, 더군다나 간첩죄로 이미 처벌을 받는 중이었다. 1평 독방에 갇혀 있던 이들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전력을 말하자면 남파간첩 출신인 김창순씨는 북한문제연구소장이고 라는 역저를 냈다. 지리산 빨치산 출신인 이태는 민주산악회 간부 활동을 하고, 자신이 빨치산 활동하던 것을 바탕으로 이라는 책도 냈다. 심지어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노동당원으로 빨치산 활동을 했던 엄민영이라는 이는 박정희 쿠데타 뒤에는 내무장관과 주일 대사까지 지냈다. 이런 사람들도 대한민국에서 다 포용했다. 심지어 육사 생도대장으로 남조선노동당 비밀군사책을 한 박정희는 대통령까지 지내지 않았는가.

그러나 지난 1기 의문사위는 같은 사건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들이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이 있었고, 사망 당시 대한민국의 존립·안전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가하려는 의사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의문사위의 입장이 달라진 이유를 물었다.

- 1기 의문사위의 결정이 2기에서 달라진 이유는.

=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필요했다. 정말 고문에 의해 죽었는지, 흉악범을 들여보내서 때려죽였는지를 증명해야 했다. 결국 북송된 비전향 장기수들로부터 서면 답변을 받고, 함께 수용됐던 강제 전향 장기수들을 직·간접적인 참고인으로 택해서 증언을 들었다. “1기 때는 이런데 2기 때는 왜 이러냐”는 식의 단정적인 질문을 처음 받은 것이 아니다. 재판에도 오판이 있고, 이를 막기 위한 삼심제가 있다. 더군다나 이런 사건은 아주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애매했던 부분이 정밀 조사를 통해 확인된다면 얼마든지 의견을 바꿀 수 있다. 또 각종 전향 강요의 실상을 파악하고 전향을 강요하는 이론적·제도적 배경, 전향제 폐지에 이 사건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등의 사실 확인 과정도 필요했다.

한 위원장은 결정 과정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번 사건이 가장 마지막에 결정됐으며, 결정 또한 4 대 3으로 인정돼 막판까지 팽팽한 의견 대립이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한 위원장은 “법리에 충실하게 해석했고 위원들이 나름대로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한 위원장은 논란의 여지를 인정하면서도, 논란의 이면에 의문사위 자체를 흔들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하고 있었다.

- 일부의 격렬한 대응을 어떻게 보나.
= 간첩, 빨치산이 민주인사냐며 반발하고 있는데, 본래 뜻이 어디 있을까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반공정신이나 애국의 충정일 수 있지만, 사실 의문사위 자체를 반대하는 세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처음부터 일부 수구·기득권 부류는 의문사위 설치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까지 낸 상태다. 의문사가 일어난 독재정권의 포악상이나 모순 구조는 단순히 특정한 시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제하 친일파의 기득권이 해방 후 독재세력의 문제로 얽히면서 우리 사회에서 50년을 지배해왔고 과거청산까지 뭉개고 있다. 최근의 상황에 대해 내가 받는 인상은 개혁에 반대하는 기득권층의 반발이라는 것이다. 지금 친일 진상 규명 문제까지 나오고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이 쟁점화되는 상황이다. 이들은 의문사위부터 빨갱이라는 트집을 잡아 공세를 취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를 애호해서 애를 쓰는 입장에서 나온 움직임이라면, 자유민주주의의 방식답게 토론이나 논쟁으로 정리할 문제다.

주제는 자연스레 과거 청산의 문제로 이어졌다. 일제 잔재 청산을 필생의 과업으로 여겨온 학자로서, 그는 우리 사회의 제반 모순 구조의 뿌리가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이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의문사라는 정치 학살도 결국 이 구조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강조했다.

- 과거 청산에 있어 의문사위의 의의는 무엇인가.
= 지금도 과거 청산 입법이나 관련 기구는 꽤 있다. 그러나 과거 청산에 회의를 느끼는 수구세력의 견제를 많이 받아왔다. 하지만 의문사위는 권한이 전혀 없는데도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몸으로 때우면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그동안 우리가 개혁에 있어 터부시되는 이색 지대가 있었다.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와 안기부, 기무사의 전신인 국군 보안사령부 등이다. 이런 이색 지대 안에 의문사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이것을 피부로 느끼면서 ‘국가 속의 국가’로 남아 있는 이색 지대를 뚫기 위해 노력해왔다.

한 위원장은 3기 위원회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찌케칼을 쥐고 청룡도를 쥔 폭한과 싸우는 꼴”이었지만, 3기에서는 조사관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길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의문사위에는 하루 종일 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직원들이 진땀을 흘리는 동안에도, 고지식해 보이는 위원장 휘하에서 2기 위원회는 차근차근 마무리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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