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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성주간’은 보이콧당했나

등록 2004-07-09 00:00 수정 2020-05-03 04:23

여성부의 야심찬 행사기획에도 언론들 의도적 외면… 출입기자 자문위원 겸임 둘러싼 반발

▣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7월1~7일 열린 제9회 ‘여성주간’ 행사가 올해엔 ‘스텔스형’으로 치러졌다. 올해 여성부는 복지부에서 보육 업무를 이관받으면서 ‘여성의 사회참여와 보육’이라는 중요한 주제하에 야심차게 행사를 기획했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은 이를 ‘의도적으로 외면함으로써’ 소리소문 없는 조용한 잔치로 만들었다. 와 등 몇몇 일간지가 정식으로 행사 보도를 한 것 외엔 대부분의 언론이 보육과 관련한 기획기사를 준비하거나 짧은 단신으로 행사 소개를 대신했다. 지난해 8회 행사 때만 해도 대부분의 일간지가 여성면의 머리기사나 상자기사 정도로 대접을 해줬던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도드라진다. 여성부에 출입하는 한 기자는 “집단 보이콧까지는 아니어도 대부분의 출입기자들이 여성부의 활동을 홍보성으로 보도하지는 않겠다는 심정적 동의가 드러난 것”이라고 전했다.

왜 에 자꾸 물을 먹냐?

왜 여성부와 기자들이 이처럼 ‘불편한 관계’가 됐을까? 사건의 시작은 6월 중순 여성부 출입기자들이 함께 출입하는 동료 기자가 해당 부처의 정책자문위원을 겸하고 있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문제 삼으면서부터다. 여성부는 지난해 7월 권익증진·대외협력·차별개선 등 4개 분과에 학계·여성계·기업계·언론·문화계 등에서 50명을 위촉해 제3기 여성정책자문위원단을 출범시켰다. 이 과정에서 출입기자인 문경란 여성전문기자를 언론계를 대표하는 정책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문 기자와 함께 3기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한 언론인은 지영선 논설위원, 임영숙 주필, 이옥경 편집국장 등 3명이었다.

여성정책자문단은 여성부의 주요 정책을 자문하는 기구로 정책의 취지와 방향 등에 대해 사업 입안 때부터 자문을 맡기도 하고, 그동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하는 동시에 민간의 여론 주도층으로서 정책을 홍보하고 알리는 역할을 한다. 정식 회의는 분기별로 한 차례 정도 열리지만 분과에 따라 상시적인 회의가 열리기도 하고, 때에 따라 개별적으로 의견을 구하기도 한다. 조진우 정책총괄과장은 “여성부는 신생부처로서 정책자문위원단의 활동이 긴요한 곳이다. 어떤 사업을 구상할 때는 먼저 자문위원 명단을 훑어보면서 이들로부터 의견을 구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여성부 기자 가운데 출입기자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전해들은 몇몇 기자들은 이전부터 공보관 등을 통해 해당 기자의 자문위원 해촉을 개별적으로 요구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응답을 얻지 못하자 6월16일 3명의 출입기자가 지은희 여성부 장관을 면담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권력기관인 정부와 이를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이 서로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뜻의 의견서를 제출하며 해당 기자의 즉각적인 해촉과 장관의 공식 사과, 재발방지 방안 마련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또 의견서 말미에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여성부 자료를 안 받겠다”고 덧붙였다. 지 장관은 “미처 그런 부분을 세밀히 살피지 못했다”고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으나 “문 기자를 개별적으로 해촉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느냐”고 망설였던 것으로 전한다.

해당 기자 “타 언론사에도 흔한 일”

출입기자들이 이처럼 ‘집단 행동’을 취하게 된 데는 문 기자가 여성부와 관련해 ‘단독’ 기사를 내면서 ‘주목’을 받은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문 기자는 보육료 문제와 관련한 기사를 다른 매체보다 앞서 단독으로 보도(2004년 6월11일치 ‘보육비 부모에 직접 지원’)한 것 외에도 노무현 대통령이 여성단체장 및 여성정책자문위원과 오찬간담회를 열어 발언한 내용을 기사화하기도 했다(2003년 11월21일치 ‘여장관들 잘하고 있어 기분 좋다’). 이 기사엔 행사 분위기의 생생한 묘사와 아울러 현재 여성부를 ‘가족여성부’ 또는 ‘여성가족부’로 만들겠다는 노 대통령의 구상도 담겼다.

한 출입기자는 “부장회의 자리에서 왜 에 자꾸 ‘물을 먹냐’는 비판이 일면서 그 자리에 있던 한 간부의 입에서 문 기자가 여성부 정책자문위원이라는 사실이 흘러나왔다. 출입기자가 부처 자문을 맡는 비상식적인 상황을 왜 동료 기자들이 눈감고 있느냐는 비판이 사내에서 쏟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기사를 물먹은 데 대한 반감 때문이 아니라 정부기관을 감시하고 비판할 출입기자에게 올바르지 않은 처사를 했기 때문에 문제제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출입기자는 “청와대 오찬간담회 기사는 정책자문위원이 아니었다면 취재할 수 없는 기사였다. 만약 본인이 기자가 아니라 정책자문위원의 역할로서만 그 자리에 참석했다면 다른 기자들에게 다같이 알려주거나 기사를 쓰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했다.

갈등은 해당 기자가 이 사실을 전해들으면서 더욱 확대됐다. 문 기자는 “만약 여성부가 이를 문제 삼아 해촉한다면 명예훼손 소송에 나서겠다”고 발끈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기자는 “정책자문위원이기 때문에 여성부를 옹호했는가는 기사를 보면 알 것 아니냐. (동료 기자들이) 이를 문제 삼는 것은 취재 경쟁 구조를 왜곡하는 일이다. 다른 언론사에도 논설위원·주필·부장들이 부처의 자문위원을 맡는 일은 흔하다. 그렇다면 ‘팩트’를 가지고 기사를 쓰는 현장 기자보다는 논조를 결정하는 이들이 자문위원을 맡는 것이 더 큰 문제 아니냐”고 반박했다.

여성부는 6월30일자로 3기 정책자문위원단을 서둘러 해촉하고 4기 정책자문위원단을 출범시켰다. 이 소식을 알리는 보도자료엔 “출입기자는 다시 위촉하지 않았다”는 설명도 달았다. 4기 정책자문위원단에는 임영숙 서울신문 주필과 아울러 전직 언론인 2명이 포함돼있다. 조성은 여성부 공보관은 “이제 새로운 정책자문위원단이 구성됐으므로 문제는 종료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둘러 새 자문위원단을 꾸린 데 대해 ”어차피 전임 위원단들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데다 기존 4개 분과에 1개 분과를 더 늘려야 하는 조직 개편의 필요성 때문에 다른 위원들도 함께 해촉하고 새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출입기자들은 문 기자를 홀로 해촉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 여성부가 ‘편법’을 써서 문제를 수습하려 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여성부는 지난해 7월18일과 23일 이틀에 걸쳐 정책자문위원을 위촉했기 때문에 이들의 임기 종료일은 7월17일과 22일이다.

출입처의 유혹 뿌리쳐야

언론인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가장 정확히 이해하고 반영하는 직무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정부나 연구기관의 정책과 의사 결정에 직·간접적인 자문을 맡는 사례가 흔한데, 이를 문제 삼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번 사건이 물 위로 드러나게 된 것은 하루하루 현장의 목소리를 실어내는 동시에 경쟁의 사슬에 얽혀 있는 ‘출입기자’라는 점 때문이다. 한 언론단체 관계자는 “기자라서 자문위원을 맡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어떤 부처든지 출입기자들을 정책자문위원 같은 자리에 임명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좋은 기사는 키우고 비판하는 기사는 보고 싶어하지 않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출입기자라면 좀더 양식 있게 판단해야 옳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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