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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경제뉴스는 계속된다

등록 2004-07-09 00:00 수정 2020-05-03 04:23

경제지표에서 읽어낸 장기불황의 조짐… ‘수출’로 ‘내수부진’ 메운 경기 상승선도 한계점

▣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지난 5월 초순의 주가 급락이 불러온 ‘경제위기론’은 종합주가지수가 750선 안팎에서 안정되면서 조용히 수그러들었다. 애초 위기론을 설파한 이들의 목적은 총선 뒤 일던 ‘개혁’ 분위기를 뒤엎으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위기의 근거로 주가만을 지나치게 앞세우다 보니 그 토대가 무너져버린 것이다. 그런 만큼 잠시 가라앉은 위기론은 앞으로 여러 형태로 재연될 소지가 다분하다. 물론 위기론은 그 자체로는 해로울 것이 없다. 위기에 대한 경고야말로 위기를 막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위기론’들이 과연 우리 경제에 대한 올바른 진단에 바탕을 두고, 올바른 처방을 내리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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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각종 경제지표들은 우리 경제가 심각한 병을 앓고 있으며, 병세가 호전되기보다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뒤 회복세 최근 꺾여

특히 6월29일 발표된 ‘5월 산업활동 동향’은 한국 경제가 회복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또다시 하강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종합적인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4월에 이어 5월에도 떨어져 두달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동행지수란 여러 경제지표들을 종합해 현재의 경기 상태를 수치로 나타낸 것으로, 순환변동치는 경기의 상승과 하강을 쉽게 볼 수 있도록 동행지수를 고쳐 만든 것이다. 수치가 커질 때는 경기가 좋아지는 것이고, 낮아질 때는 나빠지는 것을 뜻한다. 향후의 경기전환 시기를 예고해주는 선행지수 전년동월비도 두달 연속 떨어졌으며, 특히 하락폭이 전달보다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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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경기 순환을 가장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로 보면 지난해 8월께 바닥을 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경기는 외환위기 뒤인 1998년 8월을 저점으로 상승을 시작해 2000년 8월 고점에 이르렀다. 이어 2001년 말까지 하강하다 한동안 상승세를 보였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의 경기 상승은 정부의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호전된 것이었을 뿐이다. 건설경기 부양과 신용카드 버블로 늘어난 국내 소비는 해외의 나쁜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를 호전시켰으나 그 효과는 지속되지 못했다(동행지수 순환변동치 추이 그래프 참조).

결국 신용카드 버블 붕괴와 함께 경기는 급격히 나빠졌고 2003년 8월까지 경기 하강이 이어졌다. 하지만 정부가 올 들어 경기 회복을 자신했던 것은 2003년 8월을 저점으로 경기 회복세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올 3월까지만 해도 경기 회복세는 뚜렷했다. 그러나 최근 회복세는 다시 꺾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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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 금리 인상 조짐… 내수 침체 부추길 듯

최근의 경제지표 악화는 해외경제 여건이 빠르게 호전되는 가운데 빚어지는 일이어서 우려가 더욱 크다. 통계청의 ‘5월 산업활동 동향’ 보고서는 종합경기지표가 나빠지는 것이 내수 침체에서 비롯한 것임을 보여준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경기 회복세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수출이 내수 침체를 극복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더는 수출만으로 내수 침체를 극복하지 못하는 국면이다. 통계청은 수출용 생산자 제품 출하가 5월에도 지난해 같은 달보다 28.7%나 늘었다고 밝혔다. 반면, 내수경기를 보여주는 도소매 판매는 5월 들어 지난해 5월보다 2.2%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내수용 소비재 출하도 4.6% 감소했다. 설비투자가 소폭(1.3%) 늘어났지만, 건설경기가 후퇴하는 것도 5월 종합경기지표를 나쁘게 만든 요인이다.

오는 7월 말께 나오는 6월 지표도 좋아지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수출은 6월에도 크게 늘었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6월 중 수출액은 218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9.6%나 늘었다. 하지만 조업일수를 기준으로 보면 수출증가율에는 착시가 있다. 지난 5월에는 조업일수가 22.5일로 일평균 수출액이 9억3천만달러였다. 6월에는 조업일수가 24.8일이어서 총수출액은 늘었어도 1일 평균 수출액은 8억8천만달러로 감소했다. 수출증가세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경기 회복을 더디게 하는 내수 침체는 6월에도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는 지난 6월에 모두 9만1580대가 국내에서 팔렸는데, 이는 지난해 동기(10만1870대)보다 10.1% 줄어든 것이다. 특히 5월(9만1235대)보다도 0.4% 감소해 내수 침체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6월 백화점 매출은 현대백화점이 3%, 신세계백화점이 5% 늘었으나, 한 백화점 관계자는 “이는 영업일수의 증가에 따른 것으로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기업과 소비자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는 더욱 나빠지고 있다. 지난 6월2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조사결과는 향후 6개월 동안의 소비지출 전망지수가 1분기 조사 때의 111에서 102로 하락해 지출을 늘리겠다는 소비자들의 의지가 다시 꺾였음을 보여준다. 한국은행이 2900여개 업체를 대상으로 6월 초 실시한 기업경기조사에서도, 7월의 제조업 업황전망 기업경기실사지수(BSI)가 6월의 82에서 78로 떨어졌다. 이런 흐름은 지난해 8월 이후 시작된 회복세가 꺾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경기 회복세가 가시화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물가가 오르고, 금리 또한 상승 요인이 생기고 있는 것은 내수 회복에 대한 기대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9% 올랐다. 연말로 갈수록 상승률이 올라가는 물가의 특성상 올해 소비자물가는 4%대에 이를 전망이다. 한편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7월1일 연방기금 금리를 연 1%에서 1.25%로 올려 금리 인상에 시동을 걸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지 않더라도 전세계적인 금리 하락 기조가 상승 기조로 돌아선 것만은 틀림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내수 소비가 늘지 않는 상황인데도, 물가 상승 속에 금리 인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우리 경제는 과연 언제쯤 회복될 수 있을까? 일부에서는 회복은커녕 ‘더블딥’(이중침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우선 수출의 지속 가능성이 의문시되고 있다. 수출은 내년 초까지는 호조세가 이어질 수 있겠지만, 내년 하반기께는 주력수출품인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 등 정보기술(IT) 제품의 공급 과잉으로 가격 하락이 예상된다. 반도체와 음향통신기기를 제외하면 지난 5월 13.5% 늘었던 산업생산지수가 3.5% 증가로 뚝 떨어질 만큼 이들 품목이 현재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주력수출품 내년 하반기엔 공급 과잉 예상

LG경제연구원 송태정 부연구위원은 ‘경기 회복세 다시 꺾이나’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통계청이 매월 발표하는 선행지수 전년동월비를 보면 올 2월에 최고점을 찍고 3개월 연속 완만하게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과거 8차례의 평균 선행시차인 12개월을 감안하면 실제 경기 정점은 내년 2월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번 회복기는 내수가 본격적으로 살아나지 않은 상태에서 한 사이클이 마감될 것이라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내수 부진이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버블에 꽉 붙잡힌 채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우울한 그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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