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보수세력의 중심축을 자임해온 한나라당은 주한미군 감축이란 민감한 현안에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정체성이 모호한 정권이 들어서다 보니 북한이 주장해온 대로 미군 철수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발언이 몇번은 나올 법한 상황이지만 차분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보수언론과 주거니 받거니 식으로 안보 불안을 부풀려온 구태도 재연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일부 보수언론의 ‘안보 공백’ 논란에 거리를 두면서 착실히 득점 포인트를 쌓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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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주한미군 차출과 감축 문제가 논란이 되자 5월22일 박진 의원 등을 당 특사 자격으로 미국에 보냈다. 박 의원은 방미 기간 동안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리처드 롤리스 국방부 부차관보 등을 만나 미국쪽의 움직임과 한국 정부의 대응 등에 관해 독자적으로 조사 활동을 벌였다. 박 의원은 귀국 뒤 “이라크 내 상황 악화로 주한미군 재배치가 가속화되고 미군 감축이 예상보다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다”며 당시 미국 언론에서 거론되던 1만2천명 감축설에 대해서도 “미국 군사 전문가들로부터 예상 가능한 수치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당 지도부에 보고했다. 정부 여당으로부터 구체적인 정보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독자적인 외교라인을 이용해 조사 활동을 벌인 것이다. 박 의원의 보고 내용에는 ‘한-미 동맹 이상 징후’ 등도 포함돼 있었지만, 주요한 내용은 그 뒤 정부의 공식 발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사 활동의 덕분인지 주한미군 감축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뒤 한나라당 지도부의 공식 반응은 “국회 차원의 청문회와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6월10일 상임운영위 회의에서 “주한미군 감축에 대해 정부는 주둔군 재배치 차원이라고 주장하지만 주한미군 감축의 일방적 통보 등 일련의 사태로 볼 때 한-미 동맹관계가 와해되고 있다”며 “당 차원의 조사와 함께 필요하면 청문회를 거쳐 문제를 파헤쳐야 한다”고 밝혔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이에 앞서 6월8일 “주한미군 감축과 한-미 동맹의 진상을 파악해 철저한 대책을 만들고 국민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국회 국방위와 통일외교통상위 연석 청문회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로 국회 개원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지만, 개원 뒤 본격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사실 국정조사와 청문회는 16대 국회에서도 수차례 제기됐던 상투적인 방식이긴 하다. 특히 청문회의 경우,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생산적 논쟁보다는 여야 사이에 또 다른 정쟁의 장이 돼왔다는 점에서 결과를 낙관하기는 쉽지 않다. 당내 스펙트럼의 폭이 여당에 비해 좁고 당론과 다른 입장을 피력한 쪽이 고진화 의원 등 극소수에 그친다는 점도 음미해볼 대목이다.
한나라당이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 것인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내놓은 바가 없다. 하지만 국회 의석 분포상 여당의 협조를 끌어내기 쉽지 않은 국정조사 보다는 청문회가 유력해 보인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미국과 유럽 등 정치 선진국에서 정착돼 있는 정책청문회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천정배 원내대표가 선거 당시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이어서, 미국과의 협상 카드 노출 등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면 성사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기에 따라서 정책청문회가 아니라 미군 감축에 따른 국민들의 안보 공백 우려를 줄이고 향후 대책에 관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논의하는 자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는 “국민들이 미군 감축이 안보 공백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만큼, 전력의 손실은 어느 정도인지, 대체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구체적으로 따져보고 미군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함께 도출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유연해진 한나라당의 태도에 대해 당의 한 관계자는 “노무현 정권 들어 시기나 규모에 변화가 왔을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미군 재배치에 따른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점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외교안보 문제에 정통한 한 의원은 “미국 정부의 주한미군 감축 의지가 워낙 확고하다는 것을 우리 나름대로 확인했다”며 “보수층의 요구가 있다고 과거처럼 무작정 강경한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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