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지방 재보궐선거 현장르포 집중분석… 부산 · 전남의 민심은 왜 그들을 꼴보기 싫어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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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5 재보선’의 후폭풍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부산과 경남·전남·제주 등 4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완패하는 등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든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김혁규 전 경남지사 총리 기용 방침 철회와 조기 전당대회 소집 논란 등 ‘책임 논쟁’에 빠져들었다. 반면 총선 참패 51일 만에 뜻밖의 결실을 얻어낸 한나라당은 청와대와 여당을 향해 쓴소리를 퍼붓고, 정치적 사망을 선고받았던 민주당도 모처럼 혈색이 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날 때면 언제나 그랬듯이, 정치권은 낮은 투표율과 한나라당 압승으로 요약되는 재보선에 담긴 유권자들의 참뜻을 읽어내는데는 인색하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집착하는 ‘제 논에 물 대기’식 논쟁에만 몰입하는 것이다.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을까.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그렇게 목청을 돋울 수 있을 만큼 총선 이후 51일 동안 환골탈태한 것일까? 선거전 초반부터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던 부산시장과 전남지사 선거전을 밀착 취재해 그 속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되짚어본다. -편집자 |


▣ 부산= 글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 광주= 글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부산◀ “게도 구럭도 다 잃은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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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율 33%. 허남식 한나라당 후보 62.3%, 56만6700표 득표. 오거돈 열린우리당 후보 37.7%, 34만3110표 득표. ‘빅매치’가 예견됐던 부산시장 선거는 한나라당 허 후보의 압승이었다.
6월5일 밤 10시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싱거운 승부’가 현실로 굳어지자, 부산시 연제구 연산5동 경동빌딩 4층의 오거돈 후보 선대위 사무실은 좌절과 회한의 외침들이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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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대 38% 득표는 내 딸을 데려다놔도 나온다 아이가. 이건 전략의 문제가 아니다. 호남 사람을 후보로 내놓으면 몰라도, 부산 사람이면 오거돈이 아니라 건물 수위를 데려다놓고 적당히 홍보물만 돌려도 이 정도는 나온다 아니가.” 오 후보의 선거를 총괄 지휘한 이정호 선대위 기획단장은 절망적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제 누가 부산서 우리당으로 나오겠는가”
“이제, 누가 부산에서 우리당 후보로 나오려 하겠는가. 우리로서는 더 이상 좋은 후보를 낼 수는 없을 기다.” 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부산시장 선거전에 합류했다는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1비서관도 긴 한숨만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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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 미치겠다, 미쳐. 이놈의 부산 좀….” “이제 그만 확 내버려 뿔자. 정성을 들이면 뭐하겠노. 부산 시민이 알아주지 않는데.” 사무실 곳곳에서는 열린우리당에 적대적인 지역 정서에 대한 원망과 넋두리가 마구 뒤섞였다.
인물과 이력, 여론지지도 등에서 한나라당 허남식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평가됐던 오거돈 후보를 영입하는 데 성공한 열린우리당 부산시당은 선거전 내내 ‘멋진 한판 승부’를 자신했다. 선거전 막판까지 자체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안에서 우세를 지켰고, 부산지역 총장 7명의 선대위 참여와 2천여명의 지역 경제인이 열린우리당 지지 성명을 발표하는 등 분위기도 좋았다. 이호철 전 비서관 등 선대위 핵심 관계자들은 “부산 주류사회 출신으로 열린우리당이 부산에서 내세울 수 있는 최선의 인물을 발탁한 결과”라며 끝까지 기대의 끈을 놓지 않았다.
경쟁 상대인 한나라당 허남식 후보의 선대위 관계자들조차 인물 발탁과 선대위 구성 및 운영, 선거 캠페인 전반에서 열세였다고 인정하며, 개표 직전까지도 “3~5% 안팎의 초박빙 승부”를 예측했던 만큼 무참한 패배의 원인을 부산 지역의 친한나라당 정서 탓으로 진단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한나라당 부산시당 핵심 인사들은 “별로 잘한 것도 없는 우리가 이 정도의 일방적인 승리를 얻은 것은 정말 뜻밖”이라며 “단순한 지역정서 이상의 뜻이 담겨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솔직히 선대위 출범도 늦었고, 그나마 안상영 전 시장 때부터 선거운동을 해온 ‘캠프팀’과 부산시당 중심의 공조직 사이의 내분과 갈등으로 2명의 대변인이 서로 다른 성명을 내는 등 제대로 된 선거운동도 못했다. 신문광고전이나 이슈 선점에서도 밀렸다. 선거전 중반에는 우리가 유일하게 월등히 앞섰던 정당지지도까지 오차범위인 2% 안팎으로 좁혀졌었다.” 한나라당 부산시당 핵심 관계자는 온갖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허 후보가 오 후보를 무려 24.6% 차이로 따돌린 배경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는 “결국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전 원내대표의 장관 자리 다툼, 고건 전 총리의 장관 후보 제청 거부, 김혁규 지사의 국무총리 지명을 둘러싼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의원의 갈등 등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잇따른 패착이 분위기를 확실히 반전시켰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탄핵 기각 이후 업무에 복귀한 노무현 대통령의 ‘묻지마식 동진정책’과 오만, 4월 총선에서 원내 과반을 확보한 열린우리당이 보여준 과거와 다름없는 정치 행태에 대한 부산 시민들의 분노와 견제 심리, 열린우리당 지지층인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 포기가 선거전의 판세를 가른 핵심 원인이라는 진단이다.
김혁규 카드의 역효과
부산지역 열린우리당의 핵심 관계자들 상당수도 허 후보쪽의 이런 분석에 상당 부분 공감을 표시한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부산 연제 지역구에 출마했던 노혜경씨는 “총선 때 열린우리당에 적지 않은 표를 던진 부산 시민들이 이번에는 대구·경북 지역 유권자들보다 우리당에 더 인색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며 “총체적으로 정치 의식의 역사적 연령이 다른 각 지역을 전국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어젠다를 확립하지 못한 채, 특정 지역의 발전을 위해 선거를 치르는 것처럼 보인 우리의 전략적 실패”라고 진단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부산에 아펙을 줘 제주를 잃고, 영남발전특위나 부산발전론으로 호남소외론을 부추겼지만, 정작 부산에서는 다수당에 대한 불안심리가 발동한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말을 이었다.
152석의 집권 여당다운 통합적인 정치 행보나 전국적 전망 없이 그저 부산시장과 경남지사직을 얻기 위해 조급증을 부리는 듯한 ‘묻지마식 동진정책’에 근거해 6·5 지방선거를 이끈 것이 부산은 물론 다른 지역에서 패배한 핵심 원인이라는 진단이다.
실제, 열린우리당은 부산시장 후보 선정 단계부터 이런 논란의 싹을 틔웠다. 당시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과 노혜경씨 등은 낮은 투표율이 예상되는 재보선의 성격상 개혁 성향 후보를 전면에 내세워 총선 이후 열린우리당 지지 성향이 뚜렷해진 20~40대 초반 젊은 유권자의 투표율을 높이는 전략을 채택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조경태, 조성래씨 등 부산지역 열린우리당 총선 출마자 다수는 “지역 정서를 고려할 때 개혁과 열린우리당을 전면에 내세우면 패배가 자명하다”며 한나라당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오거돈 부산시장 직무대행을 영입했다. 그리고 ‘부산발전론’이라는 지역 색채가 뚜렷한 선거전술을 전면에 내세웠고, 개인의 이력과 인물우위론을 내세운 오 후보도 “나는 우리당에 입당한 게 아니라 부산발전당에 입당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열린우리당의 색깔을 탈색하기 위해 부산지역 대학총장 7명을 선대위에 참여시키고, 이영 전 부산시의회 의장 등을 전면에 내세웠다. 아울러 부산지역 경제인과 문화인의 지지 성명을 이끌어내는 등 이른바 ‘여론주도층 상층부에 대한 세몰이’를 핵심적인 선거 전략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이런 세몰이 전략은 실패로 판명됐다. 열린우리당의 다른 한 총선 출마자는 “정당 이미지 탈색 전략은 개혁 성향의 전통적 지지층에게 정체성 혼란과 오 후보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켜 투표에 참여할 이유와 동력을 상실시켰다”며 “반면, 한나라당 부산시당과 시민들 밑바닥에는 오히려 여권이 지역사회에 ‘줄세우기를 강요하고 분열을 부추긴다’는 반발 정서를 불질렀다”고 진단했다. 열린우리당의 전통 지지층을 강고하게 묶어세우는 대신, 우리당에게 표를 던질지 여부조차 불투명한 한나라당 지지자들을 표적으로 한 선거전을 펼치면서 ‘게도 구럭도 다 잃는’ 선거전을 치렀다는 것이다.
‘부산발전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실제, 일부 영남권 총선출마자들의 “영남특위 구성” 발언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APEC) 회의 부산 유치 공치사 발언 등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으로 구체화되면서 전남지사와 제주지사 선거전에까지 지역주의 광풍을 몰고 왔다는 게 중론이다.
한편, 열린우리당 부산시당이 이번 선거의 핵심 전술로 채택한 허남식 후보의 ‘동성여객 게이트 연루설’과 노무현 대통령이 영남권의 인심을 얻기 위해 띄운 김혁규 전 경남지사 총리 기용 카드의 역효과도 패배 원인으로 지목된다.
“네거티브 캠페인, 선거 무관심”
오 후보 선대위는 인물우위론을 부각하기 위해 선거전 초반부터 허 후보가 동성여객으로부터 198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허 후보쪽에서 오 후보의 부동산 투기 및 재산 형성 의혹을 제기하는 맞불작전으로 받아치면서 선거전은 일찌감치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변질됐다. 부산지역의 다른 한 총선출마자는 “결국 시민들에게 ‘그놈이 그놈’이라는 혐오감을 부추겼고, 선거전을 무관심으로 이끄는 역효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노 대통령이 강한 집착을 보인 ‘김혁규 총리 카드’도 안상영 전 시장의 죽음과 김혁규 전 지사의 배신을 연결한 한나라당의 선거전술에 더 유용하게 활용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은 김혁규 전 지사의 총리 기용설에 맞서 선거 초반부터 “목숨을 바쳐 한나라당과 신의를 지킨 안 전 시장의 남은 임기를 지켜달라”는 ‘안 시장 유지 계승론’을 전면에 내걸었다. 특히 김혁규 총리 기용을 둘러싼 열린우리당 내부의 논쟁이 가열되자, 허 후보 진영은 신문광고 등을 통해 ‘김혁규냐 안상영이냐, 허남식이냐 오거돈이냐’고 외치며 배신론을 확산시켰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오 후보 진영은 뚜렷한 대응책을 찾지 못한 채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이와 관련해 오 후보쪽 선대위 핵심 인사는 “김혁규 카드는 영남지역 정서를 달랜다는 긍정론과 배신론 확산으로 해악이 된다는 추론이 무성했을 뿐 실제 선거에는 전혀 활용되지 못했다”며 “그저 주머니 속에서 썩는 쓸모없는 카드였다”고 진단했다. 실제 김 전 지사는 13일간의 부산시장 선거운동 기간 동안 단 한 차례도 부산 땅을 밟지 못한 채 논쟁만 불러왔다.
결국, 부산시장 선거전은 강고한 지역정서와 열린우리당의 패착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예정된 패배를 향해 줄달음질쳤던 것이다.
▶전남◀ 있는 표마저 까먹는 과정의 연속!
“이번 선거는 대통령을 만들어본 조직과 군수를 만들어본 조직간의 대결이다. 질 수 없는 싸움이다.” 박준영 전남도지사 당선자(민주당)쪽 선거사령탑을 맡았던 이낙연 의원이 선거운동 초기 당직자들을 격려하며 운을 떼자, 한 당직자가 말을 받았다. “대통령을 업은 쪽과 대통령이 없는 쪽의 싸움이라 모른다.”

이 한 토막의 대화는 이번 전남지사 보궐선거의 한 단면을 반영한다. 실제 중앙당을 광주로 옮겨놓은 것 같은 민주당이 모든 당력을 집중한 반면, 열린우리당은 투표일까지 ‘설마 지기야 하겠느냐’는 안이한 생각에 젖어 있었다. 4·15 총선 이후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데다 전략·홍보·조직 등 선거운동은 품에 있는 표마저 까먹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힘있는 여당 도지사가 예산을 많이 따와 지역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민화식 열린우리당 후보쪽의 전략은, 호남소외론 앞에서 맥을 추지 못했다.
민주당, 영남발전특위를 부각시키다
전남 국회의원은 모두 13명. 지난 4·15 총선에서 여수·순천 등 전남 동부권을 중심으로 열린우리당이 7곳을 차지했다. 민주당은 목포와 무안·신안, 영광·함평 등 서부권 5곳만을 지키는 데에 그쳤다. 산술적으로 보면 의원 수에서 7:5(나주·화순은 무소속 최인기 의원)로 유리하고, 당시 비례대표 정당투표도 46.7%:33.8%였다. 총선 결과가 그대로 이어졌다면 해보나마나한 선거였다. 그런데 이번 전남지사 보궐선거에서는 민화식 후보의 득표율이 35%에 그친 반면, 박준영 당선자의 득표율은 57.6%였다. 선거운동 돌입 직전 최종 여론조사에서 민 후보가 10~20%까지 앞섰던 만큼 최소한 박빙의 승부를 기대했던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충격적인 결과인 셈이다.
왜 이런 결과가 빚어졌을까. 36%의 낮은 투표율이 의미하듯 전반적인 무관심 속에 치러진 전남지사 보궐선거의 최대 쟁점은 호남소외론이었다. 4·15 총선 직후 김혁규 총리 카드로 시작된 ‘서운함’은, 노무현 대통령과 조경태 의원을 비롯한 영남권 인사들의 만남에서 나온 영남발전특위로 극에 달했다. 총선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본색을 드러내느냐는 인식이 팽배했다. 6월2일 신기남 의장 등 당 지도부가 대거 광주로 내려가 “영남발전특위는 실체가 없다”며 민주당이 정략적 차원에서 제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화를 시도했지만, 급속히 번져가는 불길을 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6월5일 화순군 화천초등학교에서 투표를 마치고 나온 박도석(57)씨는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노무현 대통령을 누가 만들었소. 호남에서 전폭적으로 밀어줬고 위기에 처했을 때도 구해주고 했는디 그라믄 안 되지라. 사람들이 ‘이번에는 민주당을 찍어줘야 된다’고 합디다.” 민주당은 선거 초반 호재로 등장한 영남발전특위를 최대한 부각시켰다. 호남소외론은 여러 가지 버전이 번져갔다. 광주고 출신인 신일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구속과 처벌, 이후 군과 검찰의 인사에서 “호남 별이 수십개 떨어졌다” “호남 출신 검사들이 승진을 못하고 옷을 벗었다”는 식의 ‘구전홍보’가 먹힐 토대가 됐다. 열린우리당의 ‘힘있는 도지사론’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호남을 홀대하는데 여당 도지사가 된들 무슨 힘이 있겠느냐”는 벽에 부닥쳤다.
호남소외론은 ‘민주당 동정론’의 다른 얼굴이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역인사는 “내 자식이 못된 짓을 해서 회초리를 댔는데 너무 부상이 컸고 밖에 나가서도 쥐어터지고 다니니까 안쓰러운 마음이 생긴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결국 지역주의 극복 주장에는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의 지역주의 극복 방식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적극적으로 한 셈이다.
양쪽 후보 자질, 중대 변수로
이번 선거에서 양쪽 후보의 자질 문제도 표심을 가른 중대한 변수였다. 청와대 대변인과 국정홍보처장을 지낸 박준영 당선자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미지와 겹쳐진 반면, 해남군수 출신의 민화식 후보의 경우 적극적인 열린우리당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투표 하루 전날 여수시청 앞에서 만난 이태석(28)씨는 “총선 때는 꼭 투표해야 할 이유가 있었지만 요새 (집권세력) 하는 꼴을 보면 그러고 싶은 맘도 없다”며 “솔직히 누가 후보로 나오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은 선거 초반 높은 정당지지율을 바탕으로 정당간 대결로 끌고 가려 했지만, 막상 선거는 인물 대결 양상으로 진행됐다. 민 후보쪽 선본 내부에서조차 “TV토론 한번 할 때마다 지지율이 5%씩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약간의 ‘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태영 전 지사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급하게 선거를 준비하다 보니, 민주당은 총선 출마를 위해 전남에 주소지를 두고 있던 박 당선자를 긴급 투입할 수 있었던 반면 열린우리당은 제한된 인재풀에서 고르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민 후보는 천용택 전 의원, 조보훈 전 부지사, 고현석 곡성군수 등과의 경선에서 1위를 차지했다. 열린우리당의 경선은, 여론조사 방식의 국민선거인단 선정과 선거인단 사전 공개로 인해 당의 정체성과 상관없는 지역 토호들의 선전 가능성이 높은 방식이었다. 4·15 총선에서도 여러 차례 문제가 제기됐지만 아무런 보완 없이 시행됐다. 관선군수를 포함해 4개 군에서 6차례 군수를 지낸 민 후보의 탄탄한 인맥과 인지도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였던 셈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사실 열린우리당의 정체성과 맞아떨어지고 지역에서 바람을 일으킬 만한 후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중앙당 공천심사 과정에서 ‘총선 때 민주당을 도왔다’는 이유로 예선에서 탈락시켰다”며 “사실 이 지역에서는 기득권 세력이었던 민 후보가 신바람 나게 선거운동을 할 만한 캐릭터는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집권당 ‘절대지지층’은 얼마나 엷은가
게다가 열린우리당의 선거운동 조직은 ‘힘있는 여당 도지사’를 주장하기에는 너무 무기력했다. 민 후보가 경선 조직을 중심으로 선대본부를 꾸리자 열린우리당의 기층 조직에서는 “군수 선거 치르느냐”는 반발이 제기됐다. 일부 지역에서는 선거캠프와 지구당이 따로 놀기도 했다. 대부분 초선으로 정당 운영 경험이 없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조직적으로 선거를 치러본 노하우가 부족했던 점도 이런 혼란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올 들어 탄핵 정국과 총선, 그리고 6·5 재보선 결과로 이어진 호남 민심의 변화는, 2002년과 닮은꼴이다. 노풍이 거세게 불었다가 ‘김영삼 시계’ 이후 꺼져버린 과정과 흡사하다. 김혁규 총리 카드와 영남발전특위 논란은 제2의 김영삼 시계였던 셈이다. 전남지사 선거 결과는, 낮은 투표율로 온전한 민심으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 집권세력의 ‘절대 지지층’이 얼마나 엷은지를 보여줬다. 지역에 근거를 두고 있던 과거 집권세력의 지지층에 비해 충성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다. 하기에 따라 부풀었다 꺼지기를 반복하는 바람 같은 민심이 확인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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