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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의 엄청나게 웃긴 개그

등록 2004-06-03 00:00 수정 2020-05-03 04:23

박일수씨 분신 부른 조선업종 불법파견, 아무리 조사해봐도 단 한건도 못 찾겠더라?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노동부는 지난 5월27일 조선업종의 불법 파견근로 행위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 등 국내 굴지의 조선업체 9개사와 사내하도급 115개사를 상대로 지난 3월8일부터 장장 52일간 54명의 공무원이 투입된 대규모 조사였다.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노동자 박일수씨 분신사망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조사였기 때문에, 그동안 정부 정책을 신뢰하지 않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조사결과가 나오기를 은근히 기다렸다.

“불법 파견 없이 조선소 돌아가나”

그러나 노동부의 이날 발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또 한번 크게 실망시켰다. 9개 조선업체 모두 불법 파견 행위가 단 한건도 적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부 엄현택 근로기준국장은 이에 대해 “조선업종은 최종공작물 완성을 위한 단계적 독립공정으로 이뤄져 있어서 원청업체의 통제가 예상과 달리 크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대중공업하청노조 조성웅 위원장은 “불법 파견근로 없이는 조선소가 굴러가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노동부의 이번 조사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었다”고 비난했다.

실제로 노동부의 조사가 부실한 흔적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우선 이번 조사기간 동안 조사대상 업체에서 버젓이 불법 파견근로 행위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삼성중공업에 따르면 거제조선소의 경우 400여명의 불법 파견 노동자가 고용돼 있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지난 4월 중순 노동부의 조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에서 실태조사를 했는데, 455명이 불법 파견 노동자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대우조선도 노동부 조사 직전까지 불법 파견근로 행위가 있었다. 금속산업연맹 송보석 조직1국장은 “지난 2월까지 대우조선의 2개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원청의 지시와 관리, 감독을 받으며 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불법 파견 여부를 정확하게 구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며 “하지만 이번 조사는 원칙에 따라 충실하게 진행됐다”고 해명했다.

노동부는 조사기간 동안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계를 만나 충분히 협의했고, 현장 노조 간부들과 하청 노동자들도 만나 철저하게 조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주장은 다르다. 노동계는 공동 조사를 요구했지만 노동부가 이를 거부했고, 조사가 시작되기 한달여 전에 이미 조사대상 업체 명단이 알려져 업체들이 미리 대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현장 조사과정에서도 하청노조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 단체는 철저하게 배제됐다. 현중하청노조 조 위원장은 “회사쪽이 하청업체 사장들과 미리 짜고 불법 파견 인력을 빼내거나 자료를 위조하는 등 충분히 대비했다”며 “정작 조사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하청노조는 현장 조사에서 완전히 따돌림을 당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사대상 업체들은 노동부의 조사가 시작되기 전에 대규모 ‘인력 정비’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우조선의 한 하청업체 노동자는 “지난 2월부터 조선소에 파견된 하청 노동자들이 대거 소속 회사로 복귀하기 시작했다”며 “이 때문에 노동부 조사기간에는 하청 노동자 수가 평소보다 크게 줄었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에서는 고 박일수씨와 함께 일했던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노동부 조사기간 동안 휴업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는 불법 파견 노동자였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조선업종에 대한 조사 계획은 이미 언론에 보도됐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며 “기업이 불법 행위를 시정하도록 하는 게 조사의 목적이기 때문에 미리 대비한 것은 큰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하청노조가 있다는 얘기는 언론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실체가 공인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노력했지만 만나기가 어려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대중공업 하청노조는 노동부 조사 한달 전인 지난 2월 박일수씨 분신사망 사건 직후부터 공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노동부는 민주노총의 공동 조사 요구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해명했다.

하청노조 따돌리고 회사쪽 자료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부가 회사쪽이 제시한 자료만 갖고 불법 파견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조 위원장은 “회사의 서류상으로는 불법 파견도 모두 합법적인 것으로 조작돼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의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는 8600여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53%에 이르는데, 회사가 제출한 자료는 비정규직이 2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돼 있다. 이처럼 비정규직 노동자 수부터 사실과 다른데 어떻게 회사의 자료를 신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노동부가 하청 노동자들의 실태를 조사하면서 원청의 정규직 노조에만 의존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조 위원장은 “정규직 노조는 하청 노동자들 문제에 매우 소극적”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조는 지난 박일수씨 분신사건 때 장례일정 등을 놓고 하청노조와 큰 갈등을 빚었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는 올해 정기 임단협에 비정규직 관련 문제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노동자협의회 관계자는 “아직까지 현장의 분위기는 비정규직 문제까지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규직의 처우가 개선돼야 비정규직도 좋아지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이번 조사가 부실했다는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장화익 비정규직대책과장은 “불법 파견을 적발하는 것 못지않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시정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이번 조사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비정규직 차별에 더욱 관심을 갖도록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노동부는 퇴직금 미청산과 임금 체불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부당하게 차별한 업체를 다수 적발했다. 하지만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는 사용자의 불법 파견근로 행위를 근절하지 못하면 비정규직은 물론 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도 큰 위협을 받게 된다. 금속산업연맹 송보석 국장은 “파견직 노동자의 경우 다른 비정규직과 달리 중간착취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는 파견업체 상당수가 영세한데다 난립돼 있어 경쟁적으로 임금을 내리기 때문”이라며 “이 여파는 장기적으로 다른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고스란히 미치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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