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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일꾼’들, 한국 ‘명품’ 사다

등록 2004-05-28 00:00 수정 2020-05-03 04:23

[세계의 국경을 가다 마지막회- 북한 · 중국 · 러시아]

<font color="maroon">남한-북한-중국 무역이 가장 성행하는 단둥… 부동산 붐에 ‘묻지마 관광’도 유행 </font>

▣ 단둥= 글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단둥은 북한-중국 무역이 가장 성행하는 곳이다.

단둥 거리 곳곳에서 북한 상점을 볼 수 있고, 북한 사람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북한 상점은 북한의 ‘무역일꾼’들이 물건을 조달해가는 조그만 ‘물류 기지’다. 이들은 단둥에서 중국산 가전제품이나 의류 등을 싸게 구입한 뒤 북한에서 온 무역일꾼들에게 넘긴다. 단둥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중조우의교는 이런 물건을 운반하는 트럭들로 넘쳐난다. 최근 북한의 무역일꾼들은 단둥에 진출한 한국인 상점에서도 물건을 사간다. 북한의 당 간부나 국영기업체, 군인 간부 등 이른바 특권 계층들이 ‘고가’의 한국 상품을 즐겨 찾기 때문이다.

“한국 상표 떼지 말고 그냥 달라”

단둥에는 1200여명의 한국인들이 진출해 있는데, 대부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 한국을 떠난 사람들이다. 단둥에서 의류상점을 경영하는 홍아무개(37)씨는 “지난해 여름부터 한국 상품을 찾는 북한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한국 상품은 북한에서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통한다고 한다. 홍씨는 “물건을 거래할 때 ‘(한국) 상표는 뗄까요’라고 물으면 떼지 말고 그대로 달라고 한다. 평양에서는 한국 상표가 달린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2002년 경제자유화 조치 이후 배급제도가 축소돼 서민들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다. 단둥 한인회 관계자는 “이곳에서 사업차 만나는 북한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김일성 주석 시절보다 살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한다”고 말했다.

북한 무역일꾼들은 북한산 명태와 장어, 꽃게 같은 수산물을 가지고 와서 한국인 상점에서 한국산 가전제품과 의류로 바꿔간다. 이런 물물교환 말고 현금 거래가 이뤄지기도 하는데, 이때 사용되는 돈은 미국 달러다. 한 한국인 상인은 “물물교환보다 현금 거래가 더 많다. 북한의 공식적인 외환은 유로인데 실제로는 달러가 더 많이 통용되고 있다. 최근 북한의 암달러상들이 ‘달러 사재기’를 하는 바람에 큰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단둥에서 이뤄지는 북한-중국, 북한-조선족, 북한-한국 상인 무역 규모는 단둥시 전체 무역량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크다. 조선족 회사인 단둥해외공정유한회사 정덕성 경리는 “단둥은 지정학적으로 무역에 아주 유리한 곳이다. 이곳 사업가들은 남북한 경의선 철도 연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물류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지면 단둥은 상하이 못지 않은 대도시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기대감이 반영된 탓인지 단둥은 최근 부동산 붐이 크게 일고 있다. 시내 곳곳에 대형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있는데, 25~30평 최신형 아파트가 우리 돈으로 3천만원 정도 된다. 한 한국인 상인은 “지난해 말부터 한국인들이 아파트를 많이 구입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파트 200채를 한꺼번에 구입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단둥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부동산 중개업소가 2개나 있다. 단둥의 아파트는 외국인도 여권만 있으면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셴양과 단둥에는 조선족을 상대로 북한 관광을 주선하는 여행사들이 성업 중이다. 이곳에는 ‘코리안드림’이나 한국과의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조선족들이 많기 때문이다. 조선족을 상대로 한 북한 여행상품은 3박4일의 평양 관광과 1일 코스의 신의주 관광이 있다. 하지만 최근 인기 상품으로 떠오른 것이 무박1일 코스의 ‘묻지마 관광’이다. 이 관광은 단둥에서 북한-중국의 공식적인 ‘월경 업무’가 끝난 밤에 출발한다. 관광객들은 자동차로 중조우의교를 건넌 뒤 신의주의 북한 술집으로 안내된다. 그곳에서 관광객들은 잘 훈련된 여성 접대원들의 시중을 받으며 색다른 ‘음주가무’를 즐긴 뒤 새벽에 단둥으로 되돌아온다. 최근에는 조선족 사업가들이 사업 파트너인 한국인 사업가들을 이 관광에 초청하기도 한다. 셴양에서 만난 한 한국인 사업가는 “올 초 사업차 이곳에 왔을 때 한 조선족 사업가한테서 제안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북한 음식점 꽃 같은 ‘동무’

북한이 이런 음성적인 관광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북한의 경제 사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산업은행 김명식 셴양지부장은 “묻지마 관광은 조선족 여행사와 중국 공안, 그리고 북한 경비대의 ‘내통’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그만큼 북한 정부가 외화를 벌어들이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단둥의 명소 중 하나가 북한 음식점이다. 북한 음식점은 맛으로도 유명하지만, 매일 한 차례씩 열리는 ‘여성 접대원 동무’들의 공연이 진짜 볼거리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춤과 노래, 악기 연주를 배웠기 때문에 공연 실력이 수준급이다. 일부러 공연을 보러 오는 손님도 많다. 단둥 시내 중심가에 있는 청류관에서는 전연화(23)씨가 단연 스타였다. 평양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올 초부터 이곳에서 3년 기간의 ‘의무 복무’를 시작한 전씨는 빼어난 미모에 가창력이 뛰어났고 중국어도 유창했다. 그런데 이 청류관의 스타는 취객들이 거는 ‘수작’에 응대하는 솜씨 또한 재치가 있었다. 취재팀의 통역을 맡은 조선족 청년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 독한 중국술에 취기가 오른 기자가 그녀를 불러 말을 건넸더니 그녀의 대답이 상상 밖이었다. “이 친구 맘에 들어요? 이쪽은 접대원 동무에게 반한 것 같은데.” “어케 마음속에 있는 얘길 쉽게 하나요. 꽃은 나비가 고마울 따름이지.” “….” 조선족 통역도 흔치 않은 미남 청년이었다. 그가 “상당히 미인이십니다”라고 인사를 건네자, 그녀는 “면전에서 하는 말은 못 믿어요”라고 웃으며 사뿐히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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