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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돈은 지하로 흐른다

등록 2004-05-28 00:00 수정 2020-05-03 04:23

[기획연재 | 지금은 남북경협시대 4회]

<font color="maroon">고속성장 이면의 어두운 그림자… 금융시스템 부실과 공무원 ‘커미션 문화’가 발전 저해 </font>

호치민= 글 · 사진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베트남의 고속성장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금융 시스템의 부실과 사회 전반, 특히 관리 사회에 만연한 ‘커미션’ 문화다. 호치민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이한철 관장은 “베트남이 향후 5년 이상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일정한 단계에까지는 이르겠지만 선진적인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 이상을 넘어가기 힘들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라고 말했다.

개성공단이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상태에서 기우일 수는 있지만, 특히 공무원들의 부패 문제는 미리 방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공단 조성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베트남의 개방과 경제발전이 하나의 모델로 연구대상이 된다면, 그 이면의 그림자 역시 가벼이 여길 수 없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뜯기느니 벌금이 낫다”

베트남의 커미션 문화는 어느 정도일까. 한 업체 지사장은 “베트남은 되는 것은 되고 안 되는 것도 되는 이상한 사회”라면서 이렇게 전했다. “한번은 컨테이너를 선적하는데 서류에 작은 실수가 있었다. 담당관리는 벌금이 100만원 정도인데 10만원 정도 주면 눈감아주겠다고 노골적으로 얘기했다. 서로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면서.”

투자 유치부터 공장 설립까지 원스톱 서비스로 지원한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 공장 운영 단계에서는 관공서를 상대하는 일이 적지 않은데 손벌리는 곳이 많고 베트남 사회 전반에 커미션 문화가 만연해 있기 때문에 이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라는 것이 베트남 한국 주재원들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 업체들의 대처 방식도 갖가지였다. 오래 전 사업체를 베트남으로 옮긴 한 업체 대표는 “낯설지 않은 방식이어서 오히려 편하다”고 했고, 다른 업체 관계자는 “차라리 벌금을 맞는 게 습관적으로 뜯기는 것보다 낫다”며 정공법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커미션 문화가 견딜 수 있는 감기 수준이라면 금융 시스템의 부실은 당장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중병에 해당한다. 1975년 종전 이후 사유재산 몰수의 경험이 있는 베트남 사람들은 대부분 은행보다는 집에 개인 금고를 두고 있다. 저축으로 만들어진 자본이 기업의 투자로 이어지고 이윤을 창출하는 선순환구조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해마다 해외에서 베트남으로 송금되는 10억달러가량도 한번 은행에서 나가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지하경제의 규모를 아무도 짐작하기 힘들다. 베트남 현지 주재원들은 이 부동자금이 최근 몇년 사이 계속된 부동산값 폭등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꼽고 있다. 주식이나 채권 등 금융시장에서 돈을 굴릴 수단이 없다 보니 유일한 투자처가 부동산이라는 것이다.

사유재산 몰수의 경험과 지하경제

대표적인 곳이 남사이공 푸미흥이다. 탄투안 공단 투자에 성공한 대만 자본에 호치민시의 토지 제공으로 개발된 이곳 30평형대 아파트는, 지난해 분양 초기만 해도 3만달러(3600만원가량) 수준이었으나 최근에는 1억원 이상을 웃돈다. 호치민 근교의 주택값은 20만~30만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2003년 베트남 1인당 국민소득이 460달러 수준(호치민시는 1680달러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이상과열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1천달러 이내의 오토바이를 힘겹게 구입하는 호치민시의 ‘보통’ 시민들과는 다른 신흥 부자층이 개방 이후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호치민시의 한 주재원은 “한때 동양의 파리라고 불렸던 호치민은 2000년대와 1970년대가 공존하고 있다”며 “아직은 큰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지만 계층간 소득수준 격차 심화는 향후 베트남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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